그대의 찬손 뤼브케의 흰손
1967년 3월 2일 오후
서대문구 충정로 삼거리 미동국민학교 일대
엄청난 동네 주민들이 몰려나왔고 나는 동네 조무래기 친구들과 신이나서 한쪽 귀퉁이에 앉아 있었다
대중교통까지 완전히 차단하고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고급 리무진행렬 그중 한대의 창문이 조금 열린 그 작은 틈으로 하얀 손이 삐죽 나와서 흔들며 쏜살같이 지나갔다
서독 리브케대통령 방한행렬이었고 다들 길거리에 서서 한두시간씩 기다려 뤼브케대통령의 하얀 손바닥만 1~2 초가량 본거다
뤼브케 독일 대통령 방한 기념 우표
이때가 한독 양국 역사상 처음으로 가장 가까웠던 밀월기였다
그리고 불과 몇달후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는 194명의 유럽지역 유학생 교민이 독일을 거점으로 간첩에 포섭되어 대남적화활동을 했고 서독에서 중앙정보부요원에 의해 납치 강제 송환되었다는 "동백림 사건" 발표했고 독일과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닫는다
2003년 9월 2일 조선일보 칼럼이다
제목 : 눈물 젖은 역사를 가르치라 통곡으로 대신한 애국가... 역사 비트는 非국민들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가 단상에 올라섰다 그순간 함보른탄광 광부들로 구성된 브라스 밴드가 애국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차츰 커지던 애국가 소리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목부터 목멘 소리로 변해갔고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에 이르러서는 울음소리가 가사를 대신해 버렸다 대통령 부부 300여명의 우리 광부와 50여명의 우리 간호사 모두가 고개를 박고 어깨를 들먹였다
밴드의 애국가 연주가 끝나자 박정희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고 코를 풀더니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여러분 만리타향에서 이렇게 상봉하게 되니 감개무량합니다...." 대통령의 준비된 연설은 여기서 몇구절 더나가지 못했다 이구석 저구석의 흐느낌이 통곡으로 변해갔기 때문이다 그러자 박정희는 연설원고를 옆으로 밀쳐 버렸다
"광원 여러분 간호사 여러분 가족이나 고향 생각에 괴로움이 많을줄 알지만... 비록 우리 생전에는 이룩하지 못하더라도 후손을 위하여 번영의 터전만이라도...." 결국 대통령은 연설을 마무리짓지 못했다 본인도 울어버렸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광부들에게 파고다담배 500갑을 선물로 나눠주고 돌아갈 차에 올랐다 차속에서 흐르는 눈물을 감추려 애쓰는 박정희를 보고 곁에 앉은 리브케 서독대통령이 자기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박정희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1964년 12월 10일 서독 루르탄광지대에서 있었던 일이다"
출처 : http://www.chosun.com/editorials/news/200309/200309020178.html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다 대통령이란 귀한 신분도 잊은 채 소리 내어 눈물 흘리자 함께 자리하고 있던 광부와 간호사 모두 울면서 영부인 육영수 여사 앞으로 몰려나갔다 어머니! 어머니! 하며 육여사도 함께 울면서 내 자식같이 한 명 한 명 껴안아 주며 “조금만 참으세요”라고 위로하고 있었다
광부들은 뤼프케 대통령 앞에 큰절을 하며 울면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한국을 도와주세요 우리 대통령님을 도와주세요 우리 모두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를 수없이 반복했다
뤼프케 대통령도 울고 있었다. … 호텔로 돌아가는 차에 올라 탄 박대통령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옆에 앉은 뤼브케 대통령은 손수건을 직접 주며 “우리가 도와주겠습니다 서독 국민들이 도와주겠습니다” 라고 힘주어 말했다"
< 김충배 전 육사 교장의 글>
"가난한 한국에 돈 빌려줄 나라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싶은 마음에서 우리와 똑같이 분단된 공산국 동독과 대치한 서독에 돈을 빌리러 대사를 파견.. 미국의 방해를 무릅쓰고 일억오천만마르크를 빌리는데 성공했다 그때 우리는 서독이 필요로하는 간호사와 광부를 보내 그들의 봉급을 담보로 잡혔다"
독일탄광을 방문한 박통부부를 맞은 동영상의 저 독일인은 뤼브케대통령이 아니라 방문했던 함보른탄광 사장이다
60년대 초
박통 내외가 독일을 방문했을때 가난한 조국의 대통령을 환영하러 독일 각지에 퍼져 일하던 광부 간호사들이 행사장에 모여 애국가와 함께 눈물바다를 이뤘다는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을것이다
평생 광부로 힘겨운 삶을 살던 그들이 대통령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환영행사장에서 애국가를 합창하다가 서로 얼싸안고 통곡했다는 감동적인 사연
그러나 한번 생각해보자
당시 그 광부들 그들이 정말 평생 국내에서 속칭 인생막장이라는 탄광에서 땀흘리던 가난한 광부였을까?
독일의 고도 성장기에 대표적인 3D업종인 광부로 일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광부를 선발했던것이고 신체검사를 해보니 제대로된 보호장구없이 탄가루 마시면서 일했던 열악한 우리 광산의 광부들은 독일기준으로 보면 당장 입원 요양을 해야할 진폐중환자들이었으니 전원 탈락할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탄광이 어떻게 생긴건지 구경도 못해본 명문대학출신의 당시 고급인력들이 몰려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엘리트인력이 선발되었다
"독일고시" 라고까지 불리던 시절이다
그런 세계최고수준의 광부중에 일부는 근로계약기간이 끝난뒤 귀국하지않고 독일정부와 국민에게 탄원해서 체류허가를 얻어 독일말을 배우고 독일대학에 진학해서 학위를 받고 의사가 되고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된다 (반값등록금을 요구할필요가 전혀 없었던 나라, 대학까지 무상교육이던 독일이었다)
"한민족은 역시 위대한 민족... 탄광 광부가 다른 나라에 가서 말을 배우고 공부해서 박사가 되고 의사가 되는 민족"
이것이 언론에 의해서 우리 스스로 감동하고 자화자찬하는 불편한 진실이다
광부는 그렇다치고 그럼 간호사는?
박통이 독일 방문했을때 환영행사장에서 육영수여사가 끌어안고 통곡했다는 간호사들은 과연 가난한 나라 와 집안을 위해 광부와 함께 먼 낯선 나라에 와서 시체나 닦는 고생을 해야했던 여성들이었을까?
박대통령이 독일을 방문한건 1964년 12월 10일이다
독일행 간호사 1진 251명이 비행기에 몸을 실은건 1966년 10월 2일이다
그럼 저 동영상속 한복차림의 여성들은 누구인가?
민간차원에서 혹은 개인적으로 유학 내지는 독일 병원에 취업하고 있었던 간호사들이다
우리는 1986년도에 이르러서야 해외여행자유화 조치를 단행한다
70년대중반까지도 해외여행이나 유학은 어지간한 중산층조차 꿈도 꾸지못할 문자그대로 꿈이었다
개인이 여권을 갖기 대단히 어려웠고 설사 외국의 초청장이 있다해도 항공료 체재비포함 일체의 모든경비를 부담하는 조건이 아니면 갈수 없었다 그 경비는 살던 집을 팔아도 모자랄 엄청난 거금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저 행사장의 광부나 간호사는 이땅에서 어렵게 살던 영세민 수준의 광부나 간호사가 아닌것이다
그리고 독일은 간호사가 시체닦는 일을 하지 않는다
당시 행사에 참여했던 어느 교민에 의하면
"광부 악단이 애국가를 연주하자 눈물을 보인 간호사들이 좀 있었다 박대통령은 연설을 마치고 담배를 나눠주고 떠났을뿐이다 뤼브케대통령은 그자리에 없었다"
독일대사관이 제공한 박대통령 독일방문 일정표에도 함보른탄광에서 광부와 간호원을 만난 그자리에 뤼브케대통령은 없었다 독일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당시 박대통령과 뤼브케대통령과는공식만찬이 한번 있었다"
김충배 전 육사교장은
"서독대통령이 없었다는 사실을 몰랐다 신구세대가 같이 가자는 의미이지 박대통령 미화는 아니었다"
조선일보 강천석 논설주간은
"당시 박대통령의 통역을 맡은 백영훈교수의 회고록을 읽고 자료를 모아 썼다 나중에 백교수가 전화로 뤼브케대통령이 그자리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장은
"뤼브케대통령이 그자리에 오지 않았고 의전실장이 있었다"
라고 말해 자신의 저서 "아우토반에 뿌린 눈물" 이 잘못되었음을 시인했다
근거자료 : http://www.sisapress.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26136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임금을 담보로 독일에서 차관을 들여왔다는 주장은 사실일까?
1961년 12월 13일 한독간에 1억5천만 마르크 개발차관협정에 따라 차관이 도입된건 사실이지만 그 차관협상은 5.16쿠데타 이전 장면내각에서 시작되었고 타결 일보직전에 5.16군사쿠데타로 중단되었던것이다
그러니까 박통 덕분에 도입한 차관이 아니고 일찍 들어와 소중하게 쓰여졌을 차관이 박통덕분에 오히려 늦어진것이다
근거자료: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11941.html
그리고 그차관은 서독정부가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한국경제를 원조하려던 장기개발차관으로 현지 은행에서 반드시 담보보증을 요구한 상업차관이 아닌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32개 후진국에 제공했던 차관이었다
독일정부는 그 차관을 상환하지 못하는 많은 후진국들을 2005년도에 아예 전액 탕감해주었다
독일정부와 국민은 가난한 노동자의 임금을 담보로 잡고 신체포기각서를 요구하거나 장기밀매하는, 또는새우젓배나 무인도로 사람을 인신매매하는 돈에 환장한 조폭사채업자가 아니다
기껏 인도적 견지에서 성심껏 도와줬더니 샤일록같은 수전노취급한다고 분노할지도 모른다
한독 외교관계를 고려해서라도 행여 그런 허무맹랑한 주장 함부로 하지 말라
순진한 국민을 눈물 콧물 범벅으로 만드는 저 신파조의 심금을 울리는 글을 보고 흘릴 눈물이 있으면 차라리 이걸 보고 흘리는게 낫다
뤼브케의 흰손이 아닌 그대의 찬손 (유지인의 영화 데뷔작이다)
요즘 연예프로를 보면 누구나 시청자를 웃겨야 뜬다 그래서 너도나도 웃기려 한다
참다못해 코메디안 김형곤은 이렇게 절규했다
"여러분! 코메디는 코메디안에게 맡겨 주십시오! 가수도 탤런트도 전부 코메디를 하면 코메디안은 뭘해먹고 살라는겁니까?"
소설은 소설가에게 맡기자
사족: 동백림사건까지 묶어서 쓰려고 했는데 글이 너무 길어지고 촛점이 흐려져 부득이 나눠서 두편의 글로 쓰겠습니다
첫댓글 망치부인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