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왕국인 나사리 왕조의 보아브딜 왕은 스페인 국민의 국토 회복 운동에 굴복하여
평화적으로 이 성을 카톨릭 왕에게 건네주고 아프리카로 떠났다.
이 때가 1492년 1월, 바로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이 있던 해이다.
이로써 스페인은 1238년부터 시작된 약 8세기 간의 이슬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근대 스페인의 탄생을 보게 된 것이다.
알함브라는 아랍어로 "붉은 성"이라는 뜻으로 알함브라 궁전(La Alhambra)의
성벽은 2km이고 길이가 740m, 넓이가 220㎡에 달하고 있다.
나사리 왕조의 번성기였던 14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세개의 정원,
즉 맞추카의 정원, 코마레스의 정원, 그리고 라이온의 정원을 기본 축으로하여 설계된 정원 형식의 건축물이다. 내부는 왕궁, 카를로스 5세의 궁전, 헤네라리페 정원, 알카사바(성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곡가 프란시스코 타레가(Francisco Tarrega,1852~1909 스페인)
스페인의 기타리스트 겸 작곡가인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근대 기타의 아버지로 불릴 만큼 뛰어난 기타 연주가였다.
손가락으로 현을 퉁긴 뒤 이웃 현에 머물게 하는 ‘아포얀도(apoyando) 주법’을 비롯해
그가 기타 언어에 부여한 창조적 다양성은 에밀리오 푸홀, 미겔 리오벳 등 제자들에게 전수돼
20세기 음악 공간에서 기타의 영토를 두드러지게 넓혔다.
타레가는 작곡과 편곡에도 욕심을 내, 적잖은 기타 독주곡과 연습곡을 남겼고,
바하와 모차르트에서 하이든과 슈베르트를 거쳐 쇼팽과 바그너에 이르는 많은 작곡가들의 클래식 작품을
기타 연주용으로 편곡했다. 타레가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일 것이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 그라나다에 자리잡은 알함브라 궁전(La Alhambra)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 가운데 하나일 터인데, 타레가가 이 궁전에 헌정한 곡
역시 그 못지 않게 아름답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의 아름다움 밑에는 슬픔이 깔려 있는 듯하다.
이 곡을 듣고 있노라면, 그 슬픔은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기독교도들에게 내주고
지중해를 건너 달아나야 했던 이슬람교도들의 슬픔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기독교인인 타레가가 중세 이슬람인들의 마음을 자신에게 투입해 곡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알함브라 궁전은 13세기 후반부터 건축하기 시작해 근 100년이나 지난 14세기에야 완성을 보았다.
그래서 한때 이베리아 반도 전체에서 화려하게 꽃피웠던 이슬람 문명의 위대함을 뽐내고 있다.
그 시절의 시인 이븐 잠락은 알함브라와 그라나다를 다로강(江)에 허리가 감싸인 귀부인에 비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