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컬처 ] 표지 모델
이 잡지의 표지 모델은 당신이 생각한 것과 조금 다르다
“Do not judge the book by its cover.”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마라. 직역하자면 표지만 보고 책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 되겠다. 겉모습,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그 안에 담긴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나? 특히 책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책에 관해서 만큼은 다르다. 세상의 모든 출판물 중 표지가 제일 중요한 책, 바로 패션 잡지이다.
보통 잡지를 구매하는데 사람들이 고민하는 시간은 3~5초. 그 안에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화려하고 감각적인 표지가 필수다. 이를 반영하듯 표지는 언제나 당대 최고 모델의 전유물로 인기와 성공 여부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동시에 잡지 표지는 미(美)에 대한 무의식적인 인상을 남기는데, 그것은 그대로 하나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잘록한 허리와 쭉 뻗은 다리, 풍성한 바스트를 자랑하는 금발의 백인 여성. 그동안 많고 많은 잡지가 재생산해온 아름다움의 정의다. 물론 그들은 매력적이고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아름다움의 전부일까?
최근 패션계는 불문율처럼 답습된 미의 기준을 벗어던지고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는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마르지도 하얗지도 않고 때로는 성별 논란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1. 더해져서 더 아름답다
2016년 여름, 미국의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터'는 비키니 특집호의 주인공으로 애슐리 그레이엄을 내세웠다. 키 175cm에 몸무게 77kg, XXL 사이즈. 유명 플러스 사이즈 모델인 그녀는 마르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답고 섹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증명해 보였다. 이후 맥심, 코스모폴리탄, 보그의 표지에도 연달아 등장하며 플러스 사이즈의 매력을 뽐냈다.
|
2. BLACK is Beautiful, too
미국 및 유럽에서 잡지 전면에 흑인 모델이 등장한 건 꽤 오래된 일이다. 영국판 보그에 첫 흑인 모델이 등장한 게 1966년. 미국판은 그보다 몇 년 후인 74년 첫 흑인 모델을 내세웠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2008년 이탈리아 보그가 내놓은 표지만큼 이슈가 되지는 못했다.
|
2008년 7월, 보그의 편집장 프란카 소자니는 흑인 모델을 쓰면 잡지가 팔리지 않는다는 편견에 대항, 표지를 넘어 잡지 내부까지 전원 흑인 모델로 채워 보였다. ‘A Black Issue’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해당 호는 출간된 지 72시간 만에 미국과 영국에서 모두 품절되었으며, 역대 최다 판매량을 기록했다.
|
3. 난 이제 더 이상 OO가 아니에요
2015년 7월 미국의 잡지 ‘Vanity Fair’의 표지를 장식한 모델은 어딘가 낯설었지만, 동시에 친숙했다. 신인은 아니지만, 얼굴이 처음 알려지는 것도 아닌 모델. 자신을 케이틀린이라 불러달라 말한 그의 원래 이름은 브루스 제너.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자 방송인으로 킴 카다시안의 양아버지이기도 하다.
|
케이틀린은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전환 수술을 감행하고 당당하게 자신이 원하는 길을 걸어갔는데, 화보를 통해 이러한 변화를 카메라 앞에 공개하며 또 한 번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외에도 또 한 명의 성전환 모델 Andreja Pejic 역시 'Model of the Year’란 칭호를 받으며, 2016 마리끌레르 스페인 호 표지를 장식했다.
|
플러스 사이즈와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그리고 성 소수자. 이들은 그동안 늘 일반적인 아름다움에서 배제되어왔다. 뚱뚱한 사람은 항상 놀림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으며, 보통 체격을 가진 사람이더라도 늘 아름다워지려면 날씬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많은 여성이 섭식 장애를 겪기도 하며 자신의 신체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그 점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고 그 아름다움을 자신 있게 내보이는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등장은 여성들의 숨통을 틔워준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플러스 사이즈 모델의 등장 이후 여성들이 마른 몸에 대한 강박을 덜 가지게 되었다며, 미디어에서 일반적인 몸을 더 보여줄 때 신체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이나 성 소수자도 마찬가지다. 일반적인 미디어에서 유색인종은 백인보다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으며, 성 소수자는 정체성을 밝히는 순간 아름답기보다 특이하다고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선망의 대상이 되는 모델이 된다는 건 부정에 가까웠던 그들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일상 속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줄 수 있다. 일종의 롤 모델이자 선례가 되는 것이다.
매년 ‘the Fashion Spot’은 잡지와 런웨이 등에서 모델들의 다양성에 관한 자료를 발표한다. 48개의 세계적인 패션 잡지를 기준으로 679개의 표지를 조사한 결과, 2016년 집지 표지 모델 중 유색인종은 전체의 30%에 달한다. 모델 수로 비교하자면 482명의 백인 모델이 표지를 장식하는 동안 흑인과 아시아, 라틴 등을 모두 포함해 197명의 유색인종 모델이 등장했다. 비록 절대적인 수치에서는 아직 확연한 차이를 보이지만, 그래도 그 비율은 2014년 17.4%, 2015년 22.8%를 기록하며 계속해서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플러스 사이즈나 트렌스젠더 모델도 긍정적인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비록 절대적인 수에서는 큰 차이가 없지만, 매년 다른 모델이 나타나 새로운 이슈 메이킹 중이다.
과연 올해 패션지에는 또 어떤 다양한 변화가 나타날까? 애슐리 그레이엄이 벌써 플러스 사이즈 모델 최초로 새해 첫 영국판 보그 표지를 장식한 사실을 고려한다면, 2017년 역시 충분히 기대할 만하다.
Images courtesy of Sports Illustrated, VOGUE, VANITY FAIR, marie claire
에디터 이은수, ⓒ ZUM 허브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