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가 된 텃밭
아파트를 리모델링하면서 사림동에 임시 거처를 정해 한 주일을 넘겼다. 공사 기간이 두 주일이라 한 주 더 원룸에서 머물러야 한다. 이번에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세상 물정을 새롭게 알게 된 것도 있다. 공사장 인부들도 주말 이틀은 철저하게 안식을 하고 있었다. 주말은 임금이 비싸 고용주가 일을 기피하기도 했지만 아파트에서는 공사 소음 민원으로도 일을 할 여건이 못 되었다.
주말 이틀을 쉬고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된 오월 셋째 월요일 아침이었다. 아파트 리모델링 현장으로 나가보니 실내가 어수선해도 공사 진척은 순조로웠다. 오늘은 베란다와 현관의 페인트 도색이 이루어지고 전기 공사를 앞둔 날이다. 지난 한 주간 베란다 창틀 교체와 문짝을 비롯해 욕실이 개보수 되었다. 베란다의 타일은 시공되어 훤해졌고 낡은 씽크대는 철거되어 썰렁해보였다.
공사 현장에서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정기 점검이 예약된 치과에 들린 후 내 놀이터가 될 사파동 텃밭으로 향했다. 나는 어릴 적 시골에서 농사일을 거들고 자라 작물을 가꾸는 일이야 뭐든지 자신이 있다. 이번에 친구의 소개로 임대농업처럼 텃밭을 가꾸게 되었다만 그렇게 절실하거나 간절하지는 않다. 그저 여가를 활용하는 정도로 농작물을 꽃처럼 가꾸는 재미를 누려볼 참이다.
법원이 위치한 사파동의 변호사와 법무사 법률사무소 간판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니 창원축구센터였다. 산기슭으로 25호 국도가 통과하는 날개봉이 비음산으로 이어진 산자락은 신록이 싱그러웠다. 축구센터 부속 시설 실내체육관 뒤편 시청 공한지에 이런저런 인연으로 모여들어 푸성귀를 까꾸는 이가 수십 명 되었다. 그 가운데 나도 올봄부터 한 경작자가 되어 텃밭을 오르내린다.
사실 나는 텃밭에 얽매이기보다 산과 들을 누비면서 자연에서 절로 자라 채집한 들나물이나 산나물만으로 푸성귀는 자급자족을 하고도 남는다. 어제도 북면 양미재 구고사 언저리로 올라 벌깨덩굴을 뜯어와 꽃대감 친구에게 보내고 주점에서 전을 부쳐 먹기도 했다. 봄이 아닌 다른 계절엔 지인의 텃밭을 순례하면 푸성귀를 마련할 수 있어 굳이 텃밭에서 푸성귀를 가꾸지 않아도 된다.
농사를 잘 짓다가 힘이 부쳐 경작권을 내게 넘긴 할아버지에 대한 결례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텃밭에 잡초가 없이 말끔하게 해 놓아야겠다는 마음이다. 농사를 지은 수확물은 할아버지에게 먼저 보내고 지기들과도 나눌 참이다. 이미 몇 가지 채소 모종을 심어두었고 엊그제는 이랑을 일구어 서리태를 심어 놓았다. 콩은 씨앗을 싹 틔워 초기에 잡초만 제압하면 수월한 농사였다.
작년 가을부터 강수량이 유난히 적어 지속된 가뭄으로 농사에 지장이 많다. 상당 면적의 땅을 일구어 고구마 심을 이랑까지 마련해 놓았다. 언젠가 비가 오면 고구마 순을 구해 심을 작정이다. 고구마도 순을 심어 착근만 하고 나면 그 이후는 별로 관리하지 않아도 여름에 잎줄기를 따 먹고 가을에 뿌리를 캐면 된다. 참깨는 씨앗을 묻어 놓았고 야콘은 움을 틔운 순을 심어 놓았다.
텃밭으로 올라 내가 경작하는 구역을 둘러봤다. 오이를 비롯해 심어둔 채소 모종들은 수분 부족으로 생장이 더뎠다. 호박 모종도 활기를 잃고 시들어갔다. 참깨와 같이 심었던 옥수수는 싹이 트고 있었다. 흙을 일구어 이랑만 지어 놓은 고구마 심을 자리를 지나 쥐눈이콩을 심어둔 밭을 살폈다. ‘가뭄에 콩 나듯하다.’는 속담이 있는데 쥐눈이콩은 비가 흡족하게 와야 싹이 트지 싶었다.
텃밭에 나간 김에 며칠 전 준비해둔 상추와 쑥갓 씨앗을 심었다. 작년에 할아버지가 참깨를 심으면서 덮어둔 검정 비닐을 걷어내지 않고 재활용해 그 구멍에 작은 씨앗을 심어 놓았다. 씨앗을 묻어두고 수분 증발을 막으려고 검불로 덮어 가려주었다. 싹이 터준다면 장마 이후 여름에 쌈 채소를 먹을 기대를 해봤다. 웅덩이로 가 물을 퍼 날라 먼저 심은 채소 그루에 물을 주고 왔다. 22.05.16
첫댓글 심고 가꾸는 재미에
나누는 즐거움도 누리시겠습니다
내내 건강히 지내십시오 선생님!
회신 반갑고 감사합니다.
내내 건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