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엊그제 유튜브 삼국유사tv에 올린
글과 영상을 실어봅니다. 틈나실 때 땅콩삼아 보실 수도 있겠다는... .
문운과 건승하심을 빕니다. 꽃다운 봄철에.
갑내 두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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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만년 우리 역사에서 위대한 남북국시대를 열었던 개척자가 누구인가. 그것도 망한 나라의 고구려 유민으로서 5경 15부 62주의 사방 5천리 강역을 개척한 사람이 바로 대조영(大祚榮)이다. 국호를 발해라 하였으며 천통이란 연호를 썼다. 정효공주(貞孝公主)의 묘비에 보면 부모를 황제-황상-황후라 불렀음을 알 수 있다. 발해는 일본과의 교류에서 14번이나 오갔는데 국서에 발해는 고구려의 대통을 계승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또한 영토의 동일성이나 민족구성으로 보더라도 고구려의 유민으로서 말갈족을 통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민족 구성으로 보아야 한다. 언어가 문화가 같았다. 무덤 양식도 고구려와 다르지 않다. 돌을 쌓아서 유해를 묻는 적석총 무덤, 물론 토광식 무덤도 있었을 것이다. 성곽의 양식도 돌로 쌓은 석성이 대부분이 고구려의 그것과 거의 같다. 연구에 따라서는 온돌 문화를 든다. 지금도 우리처럼 아파트에 온돌을 접목시킨 나라는 한국이 대표적인 경우라는 것이다. 특히 대조영이 죽은 뒤에 시호를 고왕(高王)이라 하였다. 대조영과 고왕의 대응성에서 대조영은 고조영(高祚榮)으로 볼 가능성이 있다. 고구려를 세운 고주몽의 왕통이 고씨다. 주서(周書)에 백제 관명 가운데 달솔(達率)을 대솔(大率), 북사(北史)에서는 지방의 책임자를 대막불(大莫弗), 달리 달마법(達瑪法)이라 했다. 대구(大邱)의 옛 이름이 달구벌(達句伐), 강원도 고성(高城)의 옛 이름을 달홀(達忽)이라 하였다. 이로써 대(大)-달(達)-고(高)는 같은 의미소를 다르게 표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동북공정이라는 역사왜곡의 주장이 얼마나 반역사적인 억지 강변임을 가늠할 수 있다. 우리는 앞으로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영토를 되찾아 나섬에 조상들이 보였던 개척 정신과 화쟁의 자세로 올 날을 열어 꽃을 피워야 할 것이다. 마침내 홍익인간의 세상을 열어젖혀야 한다.
Daejoyeong(대조영) is the one who pioneered the era of south-north generation. It can be seen that the emperor's country, which was named the emperor, was Balhae(발해),an independent age, and vast territories, The tombs and castle styles built by stones are no different from those of Goguryeo(고구려). The national construction is also the Balhae built on the land of Goguryeo where the people of Goguryeo fell. In this sense, the name of the nation or of the court is likely to be the descendants of Gojumong(고주몽). In the future, we must open up this era of pioneering spirit and integration.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qDqRD_dbX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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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지배세력연구]를 한 임상선 박사의 분석에 따르면, 문헌에 등장하는 233명의 발해인 가운데, 성시는 62개이고, 이 가운데 대씨가 64명, 고씨가 39명으로 전체의 절반 정도가 됩니다. 대씨와 고씨는 엄연히 구분됩니다.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데, 굳이 대조영을 고조영이라고 하는 것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두 나라의 지리적 위치가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쉬 변하지 않는 온돌문화가 계승된 것이므로, 양국의 계승 관계 입증에는 보조적 자료에 불과합니다. 그보다 최진열은 [발해국호연구] 에서 발해의 국호가 고려였음을 밝혀주었는데, 이런 연구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관심 고맙습니다. 언어의 역사에서 고대 지명이나 인명의 변천 과정을 살펴봄에 있어 대응관계에 기반하여 음운이나 문법성을
유추하여 재구하는 방법이 일반적으로 원용됩니다. 제가 올린 글이 물론 하나의 이야기 수준입니다만. 합리적인 의심을 해서 이러한 개연성과 필연성을 찾아감이 연구자들의 몫이며 그 길에 연구자들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변증과정에서 개연성이 더 큰 가설이 살아남겠지요. 선생님의 의견을 존중은 합니다. 한 번 되짚어 볼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승하시고 문운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