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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살리는 루틴 계발하기
밤거리에서 우리의 미래를 보다
늦은 밤 산책하면 곳곳에 가득 쌓인 쓰레기를 유심히 살펴보곤 한다. 사람들은 어떤 물건을 샀다가 버리는지, 열심히 돈을 벌어서 물건 사고 또 무척 쉽게 버리는 건 아닌지. 봉투 속 일회용 용기에 담긴 먹다 남은 음식을 보면서, ‘이건 좀 심한데’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튀어나온다. 음료수가 가득 담긴 1회용 플라스틱 컵을 보면, 버릴 때 내용물이라도 비워야 한다는 사실은 학교에서라도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화가 나기까지 한다. 한국이 분리수거를 정말 잘하는 편이라고 하지만, 나는 한참 멀었다고 생각한다.
수박 껍질을 봉투에 담아 버리거나, 음식이 담긴 용기를 버리면 정말 대책 없다. ©김지환
생태 위기의 시대를 맞아 이젠 사물을 대하는 태도, 즉 대물 윤리도 고려해야 한다. 쓰레기 문제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심각하게 우리를 강타했다. 인간이 모든 걸 멈추자 자연이 회생하는 듯한 모습을 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비대면 상황에서 쓰레기는 더욱더 넘쳐나기만 했다. 그 무렵 쓰레기 박사 홍수열 선생의 등장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쓰레기는 분리수거가 가능하고, 어떤 쓰레기는 일반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는지 꼼꼼하게 일러 주는 모습을 보면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도 여러 번 생각하고 훈련해야 하는 일임을 절감한다. 이분 영상을 유튜브에서 들어 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이다.
마포에서는 쓰레기 문제가 삶의 문제로 다가와
요즘 마포구에서는 서울시가 추진하는 쓰레기 소각장 추가 건설 전면 백지화가 주요 이슈다. 사실 마포구는 온갖 기피 시설의 집결지였다. ‘당인리 발전소’로 불렸던 ‘서울화력발전소’가 있고, 지금은 생태공원으로 거듭난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도 있었다. 이젠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지만 마포 일대 사람들은 난지도 매립장에서 흘러나오는 냄새로 고생을 많이 했다. 서울시에 대한 마포구의 반발을 님비로만 보기 어려운 데는 이런 배경도 한몫한다. 마포구에서는 분리수거를 잘하면 소각장을 추가로 건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며, 분리수거에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마포구는 주민센터마다 ‘오늘의 분리수거’라는 플라스틱 배출함이 설치되어 있고, 우유 팩을 가져가면 휴지로 바꿔 주는 등 주민센터를 중심으로 쓰레기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합정동 주민센터에서는 폐건전지와 폐식용유 그리고 폐의약품까지 수거하는 공간을 따로 두고 있다. 주민센터의 이런 시도를 매우 고무적인데, 이처럼 처리하기 애매한 또는 더욱더 잘 처리해 줄 해당 거점 수거지가 잘 조성되면 자원 순환을 통한 쓰레기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합정동과 망원동 일대의 거점 수거 지역을 쭉 펼쳐 보면서, 장을 보거나 산책하는 루틴을 계발해 보면 어떨까?
합정동과 망원동 일대의 자원순환 지도
마포구 전역에 있는 ‘오늘의 분리수거’는 페트병당 10포인트를 주며, 이는 나중에 다양한 용도로 쓸 수 있다. 현재는 이와 관련한 제휴 업체가 많지 않지만, 더 활성화되면 다양하게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주민센터에서 우유 팩을 비롯한 종이 팩을 가져가면 1.5킬로그램당 휴지 1개로 교환해 준다. 이 우유 팩은 폐지와 별도로 분리수거해야 하는데, 종이 팩 재활용률은 20퍼센트도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동네 곳곳에는 폐형광등과 건전지만을 수거하는 공간이 배치되어 있는데도, 폐형광등을 분리수거로 내놓든가 깨서 종량제 봉투에 넣는 경우가 많다.
곳곳에 수거 공간이 있음에도 폐형광등과 폐건전지는 엉뚱한 곳에 버려진다. ©김지환
합정동 주민센터에 있는 페트병 수거함 ‘오늘의 분리수거’. 이 수거함은 마포구 곳곳에 있다. 주민센터에서는 종이 팩을 휴지로 교환해 주고 폐식용유, 폐건전지, 폐의약품을 수거한다. ©김지환
망원역 근처에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는 책이나 옷을 비롯해 쓰지 않는 깨끗한 물건을 잘 받아준다. 여기에 기증할 것은 정말 쓸 만한 물건이어야 한다. 무언가를 버리듯이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옷은 찢어지지 않은 깨끗한 것으로 잘 빨아서 건네야 한다. 그런데 기증받은 많은 물건이 판매하는 데 적절치 않다고 한다. 가게 한 편에는 물건을 사서 담아가는 데 쓰는 쇼핑백이 쌓여 있다. 쇼핑백도 집에서 넘쳐나는 물건 중 하나다. 분리수거일에 그냥 내놓기보다는 깨끗한 것을 골라 ‘아름다운 가게’에 두면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아름다운 가게 망원점. 아름다운 가게 입구에는 쇼핑백이 쌓여 있다. 집에 쇼팽백이 생기면 모아 두었다가 여기에 갖다 둔다. ©김지환
망원역을 기준으로 울림 두레생협은 성산점과 망원점이 있다. 여기서는 주로 종이 팩과 멸균 팩을 받는다. 테트라팩으로도 불리는 멸균 팩은 사용량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재활용 공정이 종이 팩보다 복잡하고 수거하는 곳이 상대적으로 적다. 종이 팩이나 멸균 팩은 매우 질 좋은 휴지나 키친타월로 재생할 수 있다. 잘 씻고 말려서 펼쳐 놓았다가 생협을 찾거나 근처로 산책할 때 갖다 두면 좋다.
울림 두레생협 성산점(왼쪽)과 망원점(오른쪽). 생협에서는 우유 팩과 멸균 팩을 수거한다. ©김지환
망원시장 건너편 제로웨이스트숍 ‘알맹상점’은 주로 용기에 담겨 있지 않은 제품을 판다. 용기를 가져오지 못한 손님을 위한 용기도 비치되어 있다. 따라서 플라스틱이나 유리병 등도 모으는데, 상점에서 멸균 소독을 하지만 깨끗하고 사용하기 편한 용기를 가져가야 한다. 가능하면 용기에 붙어 있던 상표도 깨끗하게 제거하는 것이 좋다. 알맹상점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일은 그 자체로 자원 소비를 최소화하는 일이다.
알맹상점에는 일반 분리수거로 순탄치 않은 몇 가지 품목을 수거하는데, 한 편에 각종 품목이 모여 있다. 입구 쪽에선 깨끗한 텀블러를 모아 새로운 용처를 찾아주는 수거함이 있다. 종이 팩과 멸균 팩도 수거한다. 매장을 찾는 손님이 가져온 팩들이 한데 모이니 한가득이다. 양파망은 잘 모아서 한 농가에 보낸다. 사기로 된 컵과 그릇들도 있다. 이것들을 분쇄해서 화분을 만드는 곳이 있다고 한다. 폐카트리지와 폐토너 그리고 브리타 필터, 이어폰 줄을 비롯한 각종 전선도 모은다. 커피박도 우리 일상에서 어마어마하게 나오고 있지만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아니라 일반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하지만 그러자니 찝찝하다. 시골처럼 집 근처에 밭이나 뜰이 있으면 쭉 뿌려 둘 텐데, 도시에 그런 집이 몇 곳이 있겠는가. 알맹상점은 깨끗하게 잘 말린 커피박은 수거해서 비료 만드는 곳에 보낸다.
블로그에서 이렇게 모인 순환자원을 환산한 양을 월마다 발표하는데, 그 양이 무척 많다. 알맹상점이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자원을 순환하는 데 숨통을 틔워 준다. 그러한 노력에 부응해 수거하는 것을 갖다 둘 때 더 신경 쓸 필요가 있다. 커피박도 바짝 말리고, 그 외 것도 깨끗하게 처리해서 갖다 두어야 한다.
알맹상점 입구에 있는 텀블러 기부함. ©김지환
알맹상점 입구 앞의 소박한 자원순환센터. 자신이 쓰지 않는 물건을 나누는 공간으로, 알뜰살뜰하게 서로 필요한 물건을 공유한다. 여기에 물건을 놓는 것도 일정한 기준이 있다. 올 때마다 이엠 활성화액을 내놓는데, 관심 있는 많은 분이 가져가서 잘 쓴다고 한다. ©김지환
알맹상점 안에는 일반 분리수거로 처리하기 힘든 품목들을 아주 꼼꼼하게 모으고 있다. ©김지환
생태 문화를 만든다는 것
‘문화’는 아주 쉽게 말해 ‘삶의 양식’을 뜻한다. 엄청나게 뜨겁고 끈적끈적한 여름을 보내며, 기후위기를 절감한다. 이젠 우리 삶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난감하다. 이른바 ‘짜치다’는 말로 우리의 작은 노력이 생태 위기를 넘어서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겠냐는 패배의식도 만만치 않다. 경제적으로 봐도 가계보다 기업이 더 큰 환경 위험 요인으로 작용할 테고, 더 큰 시스템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문제제기를 할 수도 있다. 이 또한 틀린 말은 아니며 충분히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커다란 차원은 커다란 차원에서 끊임없이 문제를 풀어 가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작더라도 일상에서 꾸준히 해 나가는 일이 중요하다. 그 과정이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일일 텐데, 사실 자기가 구입한 물건을 끝까지 책임져서 온전히 처리하는 것이 몸에 배는 일이 대세가 된다면 ‘문화’는 하나의 강력한 토대로 구축될 것이다.
생태적 삶은 가장 많이 이야기되고 가장 잘 실천되지 않는 부분이라는 자조적 이야기도 있다. 환경 생태에 관한 그럴듯한 이야기는 많이 해도, 아주 자잘한 일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지루하고 귀찮고 불편하고 심지어 궁상맞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그 궁상맞음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문화가 선택 사항이 아니라, 우리의 생존과 직결된 것을 어쩌란 말인가. 아주 거칠게 그려 본 동네의 자원 순환 지도는 그나마 가시적으로 우리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이끌어 주는 거점으로 여겨진다. 요즘 전 세계가 한국에 많은 관심을 가지며 K-컬처나 K-콘텐츠가 엄청난 영향력을 자랑한다. 영화, 드라마, 가요, 음식 같은 K-컬처뿐만 아니라 생태 문화 또한 시대를 선도하는 ‘찐’ K-컬처의 영역으로 자라 잡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김지환(파블로)
마포에서 나서 한강과 와우산 자락의 기운을 받으며 살아왔다. 역사를 공부했고 그중에서도 라틴 아메리카 역사를 한참 재미있게 공부했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이 지역 이야기는 가슴을 뜨겁게 한다. 여전히, 좋은 책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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