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즉통(窮則通) 통즉변(通則變)
올봄에 그간 살고 있는 아파트가 낡았음에도 이사를 가지 않고 눌러 살려고 리모델링을 마음먹었다. 주변에서 그렇게 주거 공간에 변화를 주어 살고 있다는 얘기는 건성으로 듣고 넘겨 남의 일인 줄로만 알다가 막상 내가 당하고 보니 리모델링이 만만한 일이 아님을 실감한다. 이삿짐센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세간들을 손수 묶어 치우고 스무날 남짓 원룸을 정해 난민처럼 지낸다.
생활이 불편한 임시거처에 잠시 머물면서 심신이 지치고 허약한 아내로부터 이런저런 핀잔을 듣기가 예사다. 일꾼들에게 음료수를 사다 나르며 인사를 나누고 살펴보라는 얘기도 빠지지 않았다. 실제로 시공업자는 수시로 전화가 와서 의논하고자 나를 현장으로 불러내어 틈을 내서 찾아가기도 했다. 저녁이나 아침이면 역시 그곳으로 가 일의 진척 상황을 둘러본 경우가 더러 있다.
며칠 전에는 시내 가구거리로 나가 리모델링 후 들여 놓을 새로운 가구들을 주문 제작으로 의뢰해 놓았다. 집을 비우면서 짐을 묶어 정리할 때 식탁과 의자가 낡아 삐걱거려 못 쓸 정도라 폐기 처분했다. 서가들도 새로이 마련해야 했고 내가 쓰는 책상도 마찬가지였다. 이참에 주로 아내가 쓰겠지만 그동안 없이도 지냈던 소파도 마련했더니 구매가가 상당한 금액으로 예상되었다.
아파트 리모델링과 겹쳐진 일로 가까이 지내는 벗이 텃밭을 가꾸라고 소개해주어, 그곳으로도 나가 보려니 몸과 마음이 더 바빠졌다. 이런 와중에 내가 즐겨가는 산행이나 강둑 트레킹을 못 나가니 생체 리듬이 헝클어지는 느낌이다. 나는 여기저기 모두 기웃거려 보고 싶은데 아내는 집안일에만 몰두하라고 닦달이라 며칠째 행동반경을 좁혀 멀리 떠나지 못하고 집 근처만 뱅뱅 돈다.
나는 어디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을 자처하는데 근래 아파트 리모델링과 예상하지 못한 텃밭 일로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 되고 말았다. 무릇 이 세상 유정물은 환경의 지배를 받으며 살면서도 환경에 적응해 살아가기 마련이다. 우리 인간은 유정물의 범주에서 가장 고차적인 복잡한 회로와 감각 체계를 가진 존재일 테다. 궁하면 통하고, 통하면 변이라 하지 않던가.
오월 셋째 화요일 아침이었다. 잠시 머무는 사림동 원룸을 나서니 창원대학 앞으로 흘러온 창원천에는 노랑꽃창포가 꽃을 피워 화사했고 물속의 송사리는 수면 위로 팔딱거리며 뛰어올랐다. 냇바닥의 물억새와 갈대는 묵은 그루에서 새움이 시퍼렇게 돋아나 세대교체가 이루어졌다. 천변 비탈에는 가뭄 속에도 잎줄기를 불려 키운 금계국이 노란 꽃잎을 펼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창원천 상류에서 퇴촌교를 건너 반송공원 북사면 수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올봄에는 비가 적게 내려 냇물은 실 가닥처럼 가늘게 흐르면서 고인 물웅덩이에 노란어리연이 동동 떠 자라 앙증맞은 꽃을 피웠다. 봄비가 오고 나면 냇가 수초에 알을 놓는 잉어들인데 강수량이 적었던 관계로 수정이 제대로 되었는지 궁금했다. 지귀상가를 지나 명곡교차로에 이르러 방향을 바꾸었다.
창원천으로 산책을 나서면서 봉암갯벌이 바라보이는 공단배후까지 내려가 보려다 명곡교차로에서 원이대로로 들어섰다. 느티나무 가로수가 그늘을 드리운 거리에서 명서동 주택지를 거쳐 도계동을 지나니 향토사단이 떠난 곳에는 높은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옛 창원도호부 자리였던 향교가 위치한 소답동으로 갔더니 2일과 7일이면 오일장이 서는 장날이었다.
장터 파라솔 아래 채소와 과일이 진열되어 있었지만 아침나절이라 손님은 없었다. 선도가 떨어진 생선 가게 앞에도 마찬가지라 장터는 활기가 없었다. 장터 구석 선짓국밥집으로 들어 맑은 술을 잔에 채워 비우며 요기를 해결했다. 점심 식후 약재를 파는 건재상을 둘러 농자재 가게로 가니 고구마 순을 사 가는 이들이 더러 보였다. 나는 식물의 영양제에 해당할 비료를 한 봉지 샀다. 22.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