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 하리망당한 어느 하루 >
文霞 鄭永仁 -
오늘은 명품(名品) 숲해설을 듣기로 약속한 날이다. 오후 1시 30분에 창경궁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요일에다 성당 미사도 다녀왔겠다, 2시간 전에 출발할 테니 집사람에게 11시 반쯤 간단한 점심을 부탁했다.
두 시간 전이면 널럴하겠다. 나는 소심하고 강박증이 있어서 바튼 시간에 대가면 불안해진다.
느긋하게 점심을 때우고 11시 20분쯤 떠나 종로3가역에서 환승할 요량을 했다.
종로3가에서 내려 핸드폰을 확인하니, 아니 이게 무슨 시츄에이션인가? 1시 20분이었다. 1시간 착오가 난 것이다. 점심시간부터 잘못된 것이다.
‘아뿔싸! 시간 계산 차이다. 집에서 11시 반쯤 출발해야 하는 건데…….’
마음이 다급해진다. 그냥 기차를 타고 갈 것인가, 택시를 탈 것이냐. 이럴 때일수록 우유부단한 성격인 나는 마련이 많다. 택시를 탔다. 그날따라 왜 그리 막히는지….
박 선생한테 전화를 하려고 하니, 온 메시지를 지워 버렸다. 그렇다고 전화번호도 저장 안해 놓았다. 지인 세 사람한 전화해도 안 받는다. 겨우 네 번째 가서야 통화할 수 있었다. 정문에 모여 마악 떠나려고 한다. 그때가 1시 55분쯤.
부랴사랴 택시에서 내리니 막 창경궁 정문으로 일행들이 들어가고 있다. 오늘 숲해설은 명품해설이기 때문에 꼭 들어야 한다는 소망은 이루어졌다.
꽁무니에 붙어 명품 해설을 듣는다. 얼마쯤 가니 신경을 써서 그런지 배가 살살 아프기 시작한다. 우리 집 내력으론 나도 뱃심 아주 약하다. 슬그머니 일행에게 얘기도 안하고 화장실에 가서 볼일을 급하게 보았다.
나와 보니 우리 일행이 온데간데없다. 창경궁의 숲길은 마치 미로와 같다. 사람들은 왜 그리 많은지…. 창경궁의 큰 연못을 한 바퀴 돌면 찾아도 찾을 길이 없다.
전화하고 그냥 갈 것이냐, 그게 문제로다. 두리번두리번 내려오다가 천만다행으로 우리 일행의 꽁무니가 보인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3년을 갈고 닦은 숲해설을 들으니, 어리벙벙하게 배운 나는 숲해설이 쉬운 일이 아님에 두려워지기도 한다.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어라! 겉주머니 어디에도 핸드폰이 없다. 식당에 되돌아가 우리가 먹던 자리를 아무리 뒤져도 감감무소식이다. ‘잃어버렸구나! 가슴을 치는데, 가슴 쪽 안주머니에 내 핸드폰이 있다.
‘내가 오늘 왜 그래?’
첫 단추를 잘못 꿰어서 그런가.
혜화 역에서 인천 쪽으로 가는 것으로 환승해야 하는데, 반대쪽 승강장으로 가다가 다시 인천 가는 승강장으로 가서 인천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오늘 일진이 이리도 나쁜가?’
깜빡 졸았다. 눈 뜨니 내가 내려야 할 부개 역을 한 정거장 지나 부평역이다. 다시 높은 계단을 허위적 올라 바로 서울행 기차를 올라탔다. 어라, 부개 역을 서지 않고 지나친다. 급행을 탄 것이다. 송내역에서 다시 내려 다시 부개역에서 내렸다. 확인에 확인을 해도 부개역이다.
마침 우리 집 가는 새마을 버스 579가 보인다. 날쌔게 올라탔다. 어라, 우리 집으로 가지 않는다.
“기사 아저씨, 이 버스 579번 아니에요?”
“이 버스는 559인데요. 다음번에 내리셔서 마트 앞에서 579 타세요.”
친절하게 말해준다. 버스의 뒷자리 번호 ○○9번만 보거 탄 게다.
579 버스 정류장에서 급한 전회를 받는데, 579가 휑하니 지나가고 만다. 내가 나에게 내는 화가 머리끝까지 무럭무럭 오른다.
에라, 몇 정류장 안 남았는데 걷자. 밤길을 걷는데, 어라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가을비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다. 그것도 굵은 비가 낙엽 함께 내리 쏟는다.
그것도 복이려니 하고, 온 비 다 맞고 집에 어렵사리 도착했다. 벨을 몇 번이나 눌러도 코빼기 인기척도 없다. 화가 머리끝까지 솟구친다. 현관문을 ‘쾅쾅!’ 두드린다. 그제야 집사람이 부시시한 모습으로 열어준다. 열이 치받친다. 나도 놀랄 정도로 꽥 소리를 질렀다.
“집안 구석에 앉아서 뭐했기에 사람이 와도 문을 안 열어! 도대체 집안 꼴이 뭐야?”
집사람은 놀라 눈을 똥그랗게 뜨고서 금따쓰다 말도 안하고 투덜투덜 궁시렁거리며 방으로 들어간다. 그 모습에 더 열이 솟구친다.
결국 나 자신에게 쏟는 화풀이기도 하다. 오늘의 내내 하리망단한 시리즈를 들은 아내는
“아니,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주먹질한 꼴입네다. 원 내가 내가 막혀…….”
하면서 도끼눈을 뜬다. 기름불에 물 붓듯이 하나 되레 사위어 가던 내 화가 부글부글 괄하게 타 오른다. 한동안 해댔다.
공자는 ‘불천노(不遷怒) 불이과(不二過)’라고 했다.
‘화는 옮기지 말고, 같은 허물을 두 번 범하지 마라.’
하리망당하고, 흐리멍덩한 하루를 내가 저질러 놓고 집사람에게 퍼부어 대다니…,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아내에게 그것도 버럭 소리를 질러대며 말이다. 이즈음 황혼이혼이 는다고 하는데,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꼴이다.
치매기가 있는 건가, 일진이 나쁜 건가, 재수가 옴 붙은 것인가, 하리망당하고, 흐리멍덩하고, 무엇에 씌웠나, 귀신에 홀렸나. 하여간에 오늘 하루는 황당한 것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명품 숲해설을 들어 마음이 한갓해진다.
나의 하리망당한 오늘 하루 때문에, 한동안 집사람은 도끼눈을 숫돌에 갈고 있을 것이다.
첫댓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오늘 저녁을 웃음으로 마감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요, 운동한다고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그 높은 계단을 남부역 , 북부역 오가며 10번 정도 뛰다싶이 오르내리고 귀가 하기도 한답니다. 운동 많이 하셨네요. 좋은 하루 셨습니다. 그 숲해설 언제 한 번 들어보고 싶네요. 홍릉사는 지인이 홀릉 수목원에 왔다 가라고 2년을 이야기 하는데 ....... 그 근처는 갔으면서도 홍릉수목원엘 못갔네요.
@@@ 홍릉수목원 @@@
한번 가 보시길. 넓지 않은 곳에 다양한 수목들이 즐비합니다.
가서 해설도 들으시고.
녜. 홍릉수목원은 제가 하던 한 문학사이트 이웃님께서 초대하셔서 몇 번 다녀오고 그 근처 경희대학교, 외국어대학교도 가고 .....이 곳에 사진도 올렸더랬습니다. 그런데 그 만남이 지속이 아니되니. 이분께서 김유정 문학관 가다가 원주 토지 문학관 가다가 , 친구 잔치 가다가 이따금씩 생각나면 놀러안오니? 보고싶다 ~~~~~ 이러고 문자를 보내신답니다. 이 분도 수필을 쓰시는 분이신데 참 진솔한 이웃이란 생각을 자주 합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