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때 작은아버지가 나를 불러서 보여준 소책자 이다.
책장을 넘기면서 하나 하나 설명을 해주신다.
선악과
화염검
에덴동산
그룹천사.......
생소했다..
재밌었다..
그러나 나는 그 나이에 그것이 성경연구를 하는 행위인지 몰랐다...
하지만 그것은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성경연구의 시작이었다..
그때부터 일주일에 한두번씩 그 소책자를 공부하는 시간을 작은 아버지와 가졌다..
그러면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난 더이상 애국가를 부르지 않았고..국기에 대한 경례도 하지 않았으며..
왕국회관에 다니는 나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뒤 나는
우리는 지상낙원에서 영원히 살수있다.
라는 빨간 서적으로 성경연구를 하고 있었다...
내나이 16세....
1991년 서울 잠실 지역대회에서 침례를 받고 정식 전도인이 되었다..
중학교 3학년의 나이었다..
사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 모든것을 이해한 상태에서...침례를 받았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회중 형들이 또는 한살어린 동생이 침례라는 것을 받았기 때문에..
경쟁의식에서 나도 받고 싶지는 않았을까? 하는 그런생각말이다..
여하튼 난 침례를 받았다..
이제 보조파이오니아도 할수 있게 되었다..
보조파이오니아도 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진학해야 했던 내게
교련은 큰 시련이었다..
회중의 서너살 많은 형이
방송통신 고등학교를 입학하며 이미 몇해전에 회중동생들에게
교련을 피하는 길을 열어놓았으므로
그냥 그렇게 방송통신 고등학교로 진로를 선택하였다..
대학교육? 고등교육은 세속에 물드는 악(?) 이었으며 세속적으로 출세하려는 길(?)정도의
아주 안좋은 인식속에서.. 방송통신고등학교로의 진학은 별로 어려운 어려운 일이 아닌 당연히 가야할 나의 길이었다..
이미 16세때 대학교육이란것은 나의 주변에 ,, 나의 머리속에는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중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은
나의 인생에 대하여 충고해 주시고 나를 거의 1년동안이나 설득하셨으나..
나에겐 우이독경의 소리였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입학하여
본격적으로 정규파이오니아를 시작하였다..
소위 영적인(?)일로 바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좋았다 ....모든것이...
회중의 형제 자매...호별..연설...대회..타회중의 형재자매들을 사귀는 기쁨. 개인연구...등등
풍요로운 청소년기였다..
행복한 청소년기 였다..
격려와 칭찬 그리고 영적인 목표를 확고히 한 상태에서의 인생행로란것..좋..았..다..
그렇게 4년여의 바쁘고 행복한 청소년기를 보내며...이제 중립을 지켜야하는 나이가 도래했다..
당연했다
나는 이사야 2:4절의 성서 진리에 근거한 확고한 믿음으로 군대는 가지 않을것이다..
당당히 집총거부를 하여
세상과의 중립을 , 전쟁을 연습지도 않으며 확고히 지켜낼것이다..
그래었다..
그리하여 1995년 10월 6일 나는 논산 훈련소
입소대 훈병으로 입소하게 된다...
개인적인 이유로 군훈련을 받지못하는 사람 일어서...
몇몇이 일어난다..
나도 일어난다..
이유는 ?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당당히 대답한다..자랑이라도 되는것처럼..
4중대로 편입되어
군복을 입고 군화를 신고 군대 짬밥을 먹으며 불침번도 서고..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1995년 10월 12일 아침
대대장의 호출이 있었다..
집총을 요구하였으나..나는 당당히 거절했다..
그리하여 논산 훈련소 영창으로 당당히(?) 입소한다.
헌병대 철창...
철창속에 하루종이 같혀있으니..파리도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바로앞 10cm 정도의 거리도 자유스럽게 나가질 못하는 신세가
처음엔 신기했다..
아 철창에있는 나를 파리도 무시하는구나..하는 별 희한한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저녁 , 안쪽에 있는 영창으로 이동되었다..
30명 남짓의 형제들이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울고 웃고 하면서 정을 나누고있었다..
그곳의 구호인 "반..성" 이라는 인사는 누구나 하였고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한 형제는 한명도 없었다..
기합도 함께 받고..철창도 함께 타고 , 엎드려뻗쳐와 토끼뜀으로 베게 뛰어넘기..
수양정좌도 함께 하며.. 그렇게 영창의 추억을 함께 쌓았다.
헤어질때는 울기도 했다.
생일이 12월 이라 헌병대의 배려인지는 몰라도
동기들은 모두 장호원의 육군교도소로 이감되는데
나는 동기들보다..50일 정도를 영창에서 더 보내게 된다..
일찍 넘어가면 소년교도소로 보내질것을 우려(?)한 배려였다..
왜 날 배려했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난 소년교도소를 가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난 영창에서 왕고참으로 50여일을 후배형제들과 생활하게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모든 기합의 조교가 된다. ㅎㅎㅎ
내가 하면..후임들이 쫒아 해야한다..
토끼뜀뛰며 베게 앞뒤로 넘기는 한 1미터 가까이씩 뛰면서
본을 보였나 보다..
그 후배들이 훗날 교도소로 넘어와서 내가 얄미워 죽을뻔했다는 말까지 했었다.
...
그렇게 동기들은 나보다 2달 먼저 육군교도소를 가게 되고..
2달 먼저 민간교도소를 가게된다..
난 동기들보다 꼭 2달씩 늦게 육군교도소와 민간교도소를 접하게 됬다..
2달정도의 육군교도소생활을 마치고..
.(그곳에서는 군용책상 만드는일을 했었는데...
지금 기억으로 나는 그곳에서 이감할때쯤에는 책상을 쌓는 일을 했던것 같다..)
나는 1996년 2월
서울 구로에 있는 영등포 교도소로 이감 되었다..
일주일간을 미징역(?)이라고하는 일반 방에 수감되었다..
4하 3방..
문앞에서 그안에 있는 사람들이 철창사이로 보인다..
팔에 문신이며..
아.......쫄았다..
그래도 육군교도소 보다 영창보다 덜 힘들다고 한 민간교도소가 아닌가 하여..
맘편히 방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좋다..
범죄를 하고 들어온 사람들인데...
그래도 챙겨주신다..
군에서 가지고온 양말 속옷 이런모든것들을 버리란다..
그리고 새것으로 다 주신다...
먼저 이방을 거쳐간 동기(형제)의 고향 형이 방장으로 있었기에
더욱 편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1주일 인가 2주일을 그방에서
재미있게 보냈다...
-------------여호와의 증인을 처음 접하게 되면서 중립의 초기 - 민간교도소 이감 처음까지..-------------
첫댓글 다음 편도 기대할게요...
근데 대게 자세히 적으셨네요..^6
ㅎㅎ 오랜만에 과거를 회상해 보는 시간이 되네요 ㅋㅋㅋ
오. 제 선배시네요^^ 나이로 보아 30대 후반에서 40전후이실거 같네요. 동질감 쩌네요.ㅋㅋ
99년도에 들어갓는데~
10년정도 후배시네요 ^^; 그런데 그 때 일들을 아직도 자세하게 기억하다니... 저는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때여서 그런지 가물가물합니다..
ㅎㅎ 저도 10년이 더 지나면 가물가물 할것 같습니다..
"자유애호자" 침례 동기시네요..당시 300명도 넘게 잠실체육관에서 침례를 받았었죠..청소년기 시절의 추억은 저와 비슷하시군요..저도 그 시절은 즐겁긴 했습니다
만물을 새롭게하노라..
이런걸보면 여증구원론은 급진적 진보사상같은걸까싶기도하고..
그런데 그 조직운영은 그냥 파시즘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