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록도 역사의 산증인인 oo장로님을 통해 이들의 신앙야기를 들었다.
소록도에 교회를 지을 당시 4천여 명의 성도는 힘을 모아 건축기금 7만 원을 마련했다.
교우들은 굶주림 속에서도 금식으로 식량을 모아 팔아 건축헌금을 했고, 여자 성도들은 삭발해 교회 주춧돌을 쌓았다.
눈이 밝은 성도는 안내하고 눈이 어두운 성도는 손수레를 끌었다.
여자들은 세숫대야로 자갈을 퍼서 운반하고 자갈을 주울 수 없는 이는 몸에 수저가 붙은 의수를 끼워 자갈을 주워 담았다.
건축이 계속되는 동안 성도들의 손과 어깨에는 항상 피가 흘렀다.
당시 교회에 쌓인 벽돌에는 그렇게 성도들의 눈물과 피가 묻어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고 한다.
바라볼 곳도, 의지할 곳도 없는 소록도 성도들에게 기도의 의미와 깊이는 보통사람과는 차원이 다르다. 모진 고난이 부르심이 되어 결국 축복의 통로가 되었다고 간증 하시는 장로님 눈가에는 이슬이 맺혔다.
오늘뿐만 아니라 내일까지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드리며 천국의 소망을 부여잡은 소록도 성도들에게, 신앙은 ‘삶의 이유이자 목적’이었다.
소록도가 자랑하는 믿음의 유산으로는 김정복 목사님의 순교 정신을 먼저 꼽는다.
6.25 전쟁 당시 소록도 교회를 끝까지 지키다 순교하신 김정복 목사님은 지금도 소록도 신앙의 한 축을 이루며 이어지고 있다.
신사참배 반대로 옥고를 치른 고흥 길두 교회 김정복 목사님과 애양원 교회 손양원 목사님이 소록도 성도를 섬기고자 달려왔다.
결국, 김정복 목사님이 소록도에 남고 손양원 목사님은 애양원으로 가셨지만, 한센병으로 아픔을 겪는 성도를 극진히 섬기는 일이나 죽기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키신 모습이 매우 닮은 분들이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 길이 남을 큰 별이시다.
김정복 목사님의 기도 굴을 보고 싶었지만, 설명으로 만족해야 했다.
자료관을 관람하고 감금소, 해부소 등을 돌아보았다.
‘나는 사람이 아니올시다. 나는 짐승도 아니올시다.’ 라고 절규하는 어떤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첫댓글 "이렇듯 아름다운 섬 전체가 한센병 환자들의 병원이요 요양원이다.
슬픈 사연, 숱한 아픔이 녹아내려 만들어진 섬, 이보다 더 가슴 아린 아름다움이 또 어디에 있을까.
이 작은 섬에는 100년에 걸쳐 이어 내려온 소록도 성도들의 신앙 이야기
특히 오스트리아의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거릿 피사레크 수녀 간호사님의 이야기는 영혼의 울림으로 다가왔다.
낯선 나라의 작은 섬 소록도에서, 사십여년간 젊음은 물론 한 생을 다 바쳐 사랑을 실천하셨다. "
교수님! 사랑과 관심 감사합니다.
흐르는 멜로디가 마음을 더욱 가라읹게 합니다.
아름다우신 심성으로 소록도에 꽃나무를 심고오셨습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솔잎향님, 푸근하고 정다운 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보고 싶습니다. 자주 만날수 있도록 분발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