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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6년 여름
6월
에딘버러에서는 반에드워드파와 잉글랜드 사신간의 밀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애초에 반에드워드파는 스페인과 잉글랜드를 이용하여 에드워드를 제거하려고 했다.
일단 스페인군에게 뇌물을 주어 에드워드를 죽여달라고 했다. 아니,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격파시켜달라고 했다. 스페인군은 안에서 반역을 꾀하는 사람이 나타나자 기뻐하며 수적으로 우세하니 결코 걱정없을거라고 안심시켰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한 패배였다.
다음으로 반에드워드파는 잉글랜드에 사신을 보내어 요크에서 에드워드를 막아달라고 했다. 잉글랜드도 알았다고 했으나 그들은 군대를 오히려 남쪽으로 돌려 노위치를 점령하려 하였다.
반에드워드파는 이번에 파견된 잉글랜드의 밀사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도대체 왜 에드워드를 공격하지 않는 것이오? 에드워드는 잉글랜드에게도 적이지 않소?"
데이빗이 성난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러자 알렉산더가 소리없이 웃으며 손으로 목소리를 좀 낮추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잉글랜드 밀사가 말했다.
"미안하오. 하지만 에드워드의 군세가 강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오. 자칫잘못하여 우리군대까지 격파당하면 당신들이나 우리들이나 손해이지 않소. 기회를 기다리는것 뿐이오."
"런던까지 점령되고나서도 그런 소리를 할거요?"
"데이빗 왕자님."
노바므가 제지했다. 그러자 잉글랜드 밀사는 어이없다는듯이 웃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데인족들을 몰아내고 당신들의 조상들도 몰아낸 우리 잉글랜드의 저력을 너무 만만하게 보시는구려."
나지막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분명 가시가 돋혀있었다.
분명 1040년,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에 도착하여 잉글랜드 남쪽을 석권한지 50년. 잉글랜드는 이미 잉글랜드 남부에서는 영향력을 확실히하고 있는 상태였다.
"분명히 말해두겠는데, 에드워드는 확실히 없애줄 것이오. 그러니 보답이나 잊지 마시오."
말을 마친 잉글랜드 밀사는 일어서서 나갔다.
그가 나가는 모습을 본 데이빗은 알렉산더에게 말했다.
"형님, 형님은 저런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으시는겁니까?"
"어쩔 수 없지않은가. 우리로써는 잉글랜드의 도움이 절실하네."
"하지만... 이번에도 에드몬드를 죽일 때처럼 위장해서 에드워드를 죽이면 되지 않습니까?"
"그건 안돼. 무엇보다도 에드워드가 밖으로 나오는 일은 군대를 이끄는 때 이외에는 없어.
설마 에딘버러에 있는 군사들로 에드워드를 치자는건 아니겠지?"
"으윽..."
알렉산더의 차분한 반론에 데이빗은 설복당했다. 노바므는 데이빗을 진정시키고 자신이 생각한 계획 하나를 말했다.
"지금 에드워드 전하는 잔혹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백성들은 전하를 선망의 대상으로 봤지만 이제는 외경어린 대상으로 보고 있지요.
간단히 말해서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론부터 말하세요."
성격 급한 데이빗이 노바므의 말을 잘랐다. 노바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제 본론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많은 백성들이 오랜 전쟁으로 지쳐있다고 합니다.
특히 에드워드 전하가 이끄는 잉글랜드 원정군에 속한 병사들 중에서는 10여년간 고향땅을 밟지 못한 병사들도 있다는군요.
전하는 향수병 걸린 병사들에게는 그저 전쟁의 당위성을 주장하실 뿐, 현실적인 대안은 못내놓고 있으십니다.
더군다나 전하를 수행하는 기사들 중에서도 은근히 전하의 행동에 불만을 품은 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계속 전하를 위해 전쟁에 나서는가. 한마디로 두려워서 그렇고, 이 두려움을 없애면 에드워드 전하는 삽시간에 무너질 것입니다."
"...그래서 방법이 무엇이라는 것이오?"
데이빗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덴마크를 원조해서 군세를 늘리고, 스코틀랜드 지방 여기저기를 약탈하고 다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필시 에드워드 전하는 덴마크군을 요격하러 나오시겠지요. 하지만 요크는 조그마한 지방입니다. 덴마크군이 이기면 좋은 것이고, 져도 부대를 재편성하기 여의치 않을 것이니 이후 잉글랜드가 공격을 해오면 에드워드 전하는 반드시 패배할 것입니다. 그때를 노려서 우리가 전하를 공격하면, 반드시 죽일 수 있을 것입니다."
경청하고 있던 두 사람은 "흐음..."이라고 읊조리며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혹시 거기서 또 놓치기라도 한다면?
그들의 생각을 읽은 노바므는 말을 이었다.
"아, 물론 에드워드 전하 모르게 전하에게 불만을 품은 사람들을 우리편으로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전하의 바로 아래에서 전하를 향해 칼을 겨눈다면, 전하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겠지요."
일리있는 말이었다. 알렉산더는 당장 노바므에게 계책을 실현하라고 말했다.
1097년 여름
1년간 반에드워드파는 에드워드를 몰아내기 위해 배후에서 교묘하게 활동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에드워드는 1년간 요크에 머물면서 잉글랜드의 향방을 주시하고만 있었다. 그의 예상대로 잉글랜드는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었다.
이때 급보가 날아들어왔다.
드디어 에버딘에 주둔하고 있던 덴마크군이 에드워드를 향해 남하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에드워드는 혹시나 동생들이 에딘버러의 성문을 열고 덴마크군과 싸우면 어쩌나 걱정했으나 그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에드워드는 동생들이 상황판단을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정확히 말하면 동생들과 덴마크군 사이에는 밀약이 존재해 있었다.
3월
덴마크군은 드디어 요크 인근에 집결했다.
에드워드는 요격에 나섰다.
기사들은 덴마크군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지켜봐야한다고 주장했지만, 에드워드는 모든 병력이 요크로 집결해있으므로 만약 덴마크가 다른 성을 공격이라도 한다면 위험한 사태에 이를것이라 말하며 군대를 이끌고 요크 밖으로 나갔다.
에드워드군이 숫적으로 우세했지만 그의 부대 태반은 병력보충을 못받아 만신창이였다.
더군다나 그가 밖으로 나가자 요크 백성들은 조심스럽게 반란을 준비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쳐들어온 쪽은 덴마크였기 때문에 언덕에 포진하여 덴마크군의 공격을 수비하려 하였다.
그러나 덴마크 역시 에드워드의 위명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섯불리 공격을 감행하지 않고 있었다.
결국 에드워드가 공격명령을 내렸다.
덴마크군은 석궁병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에드워드는 처음 보는 무기의 관통력에 놀라면서도 귀족보병대에게 한층 더 빠르게 돌격하라고 명했다.
전투는 역시 에드워드의 승리였다.
그러나 에드워드는 이 전투에서 크로스보우라는 신무기를 보고는 무기기술을 개발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하지만 적임자가 없었다. 에드워드는 에드몬드가 잉글랜드군에 의해 죽은게 참으로 아쉬웠다.
에드워드는 할것이 많다고 생각했지만 자금도 없었고, 적임자도 없었다.
그의 '조력자' 에드몬드는 비명횡사한지 오래되었고, '보좌' 발렌스 또한 그 대신 전사했다.
에드워드는 자신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야속하면서도, 왜 이런 사람들이 나타나지 않는가, 라며 한탄했다.
반에드워드파는 덴마크군이 패배했고, 에드워드군의 피해도 예상보다 크지가 않자 실망감에 빠져들었다. 역시 그들이 믿을 것은 잉글랜드뿐이었다.
1098년 여름
에드워드는 덴마크군을 격퇴하였으나 다시 1년간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했다.
그는 병력도 보충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재정상태가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한가지 희소식이 있다면 드디어 에딘버러에서 스코틀랜드장창민병대를 편성할 수 있게 되었다는것 뿐.
그러나 후에 윌리엄 월레스에 의해 빛을 발하게 된 스코틀랜드장창병대는 이때까지는 아직 운용되지 않았다.
스코틀랜드는 또한 교황과의 외교관계가 극도로 나빠져서 우호도는 0 이 되어버렸다.
아직 독실함을 지키고 있던 신도들은 에드워드를 향해 저주를 퍼부었다.
다시 덴마크군이 스코틀랜드에 상륙했다.
이번 상륙장소는 에버딘이 아닌 요크였다.
에드워드는 평소같았으면 당장 요격에 나섰겠지만 이번에는 망설였다.
계속되는 출혈로 병력은 감소되었고, 충분한 보급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아쉬운대로 민병대는 징집할 수 있겠지만 그들의 전투력은 기대이하였다.
에드워드는 소위 말하는 피로스의 승리1) 에 빠져있던 것이었다.
이대로 공성전에 돌입해야 하는가?
아쉽게도 에드워드는 자신의 전투경험 속에서 수성을 치룬 기억을 찾지 못했다.
그의 장기는 회전이었다.
결국 그는 농성보다는 야전을 택했다.
기사들은 이번에도 만류했고, 에드워드는 아예 그들을 설득시키는 것을 포기, 근위대와 보병들을 이끌고 덴마크군과 싸웠다.
이전에, 에딘버러에 주둔하고 있던 해군은 덴마크 함선을 공격하기 위해 요크로 왔으나 오히려 패배하고 돌아가 가뜩이나 전쟁에 지친 병사들의 마음을 더 무겁게 했다.
그러나 전투가 벌어지기도 전에 덴마크군은 도주하여 함선에 올라탔다.
에드워드는 무슨 의도에서인지 의아했으나 일단 한숨 돌리게 되었다.
1098년 겨울 ~ 1099년 겨울
덴마크군이 간헐적으로 상륙과 후퇴를 반복하면서 에드워드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교황은 만약 덴마크군을 공격하면 파문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였다.
아무리 그가 기독교를 무시한다고 해도 이정도가 되면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러는 동안 1년이라는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고 사람들은 오랜만의 평화를 만끽했다.
서민들과 빈민들에게는 '켈트의 영광'보다는 당장의 식량이 중요한 법이었다.
반에드워드파는 이것을 노리고 서민들과 빈민들에게 빵을 주며 교묘히 에드워드의 행동을 비난하여 그들로 하여금 에드워드를 싫어하게 만들었다.
단기간에는 효과가 없었지만 1년쯤 되자 효과가 생기기 시작했다.
여기다가 에드워드가 덴마크를 공격이라도 한다면 금상첨화일텐데.
데이빗은 이렇게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것이 현실이 되었다.
1099년 겨울
결국 에드워드는 덴마크를 향해 공격하기로 결심했다.
기독교 신자들은 파문될 것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말했다.
그러자 에드워드는 자기를 따라가겠다는 병사들만 데리고 덴마크군을 공격하겠다고 말했다.
설마 덴마크를 공격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불구덩이에 집어넣겠냐는 것이 에드워드의 생각이었다.
결국 에드워드를 끝까지 따르겠다는 몇개부대만을 이끌고 덴마크군과 싸우기 위해 성을 빠져나갔다.
그러나 덴마크가 역습을 해왔다.
요크를 공격하기 위해 우회한 것이었다.
결국 요크에 남아있던 병사들도 에드워드와 합세하여 야전을 치루기 시작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은 전투에 임하기 전에 성호를 긋고 하느님에게 용서를 빌었다. 자의가 아니니 용서해달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다.
전투에서 이겼지만 이번에는 발리스타의 피해가 컸다.
후방에서 덴마크 지원군이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에드워드는 전방이 적을 다 격파하고 뒤에 있는 지원군을 격파하려고 하였으나 시간이 좀 늦어서 피해가 컸다.
이번에도 에드워드는 덴마크 왕자를 포함, 포로들을 모조리 죽임으로써 한층 더 잔인하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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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대 그리스 에피로우스의 왕입니다. 뛰어난 전술가로 한니발이 그를 알렉산더 다음으로 평가하기도 했지요.
'피로스의 승리'란 상처뿐인 승리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가 로마를 공격했을 때 항상 승리했지만 병력보충도 안되고 보급도 원활하지 않아 피해가 계속되었고 결국 후퇴를 하게 되자 붙여진 명칭입니다.
첫댓글 이제 런던행인가요?
아뇨. 정말 그래볼까 생각하기도 했는데, 너무 지나치죠. ㅎㅎ 지금 글 쓰고 있는데 시간이 나면 기다려주세요~ 얼마나 걸릴지는 예상을 못하겠습니다만 다음편이 에드워드의 최후입니다~
정말 지겨운 스페인과 덴마크로군요 --... 뭐 좀 할만 하면 와서 훼방을 놓으니
그러게말입니다.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