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역사를 보는 눈/수 2:8-14
○ 두 정탐꾼과 기생 라합
8.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9.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10.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11.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 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
12. 그러므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하여 나의 부모와 남녀 형제와 무릇 그들에게 있는 모든 자를 살려주어 우리 생명을 죽는데서 건져내기로 이제 여호와로 맹세하고 내게 진실한 표를 내라 수2:18
13. (12절에 포함)
14. 두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치 아니하면 우리의 생명으로 너희를 대신이라도 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를 대우하리라
====================================================================================
눈이 보배라는 말이 있습니다.
잘 보면 큰 유익을 얻지만 잘못 보고 가까이 하다가 큰 손해를 많이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10만 명의 시각 장애자가 있습니다. 앞을 못보니 참 불쌍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불쌍한 사람은 건강한 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바로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두 회사가 아프리카에 신발산업으로 진출하려고 시장조사를 나갔습니다.
한 회사의 직원은 갔다와서 보고하기를 가보니까 아프리카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그러니까 우리가 거기 진출하는 것은 큰 손해일 것입니다. 그리고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다른회사 직원은 거꾸로 봤습니다 가 보니까 신발 신은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가서 신발이 몸에 어떻게 좋은지 잘 선전만 하면 큰 돈을 벌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곳에 진출해 많은 돈을 벌고 성공했다는 얘기입니다.
똑같은 것을 보지마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결과를 엄청나게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눈을 주신 것은 단순이 어떤 물건을 쳐다 보라고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것보다 깊은 기능이 눈 속에 숨겨 있습니다.
우리는 봄으로 가치를 판단합니다.
이건 귀한 거구나 이건 천한 거구나 구별할 줄압니다.
눈은 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합니다.
또 새로운 진리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집니다
우리는 보통으로 보지마는 그것을 깊이 본 사람이 있습니다 뉴톤입니다. 그는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만유인력의 법칙을 찾아냈습니다.
주방에서 주전자에 물을 끓이면 “덜컹덜컹”주전자가 벌떡입니다. 우리는 보통으로 봤습니다.
그러나 '와트'라는 사람은 그 수증기의 힘으로 주전자가 덜컹거리는 것을 보고 증기 기관차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렇게 눈은 단지 사물을 보고 아는 것 이상의 큰 기능을 갖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눈은 마음의 창과 같다고 했습니다.
눈이 밝으면 온몸이 밝아지고 눈이 어두우면 온몸이 어두어두진다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내가 고상하고 아름답고 좋은 것을 보면 나의 삶이 그렇게 되지마는 나의 눈이 부정적이고 어둡고 나쁜 것만 보면 나의 삶도 어두워지고 나빠진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에 대해 하겠습니다.
히브리 말로 눈은 아인인데 아인이라는 말은 샘, 원천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든 인간의 삶이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잘봐야 됩니다. 성경에도 영적생활 중에 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치고 있는데 신약성경에만 똑바로 봐라 잘봐라 이보란 말이 육백 팔십 번이나 나옵니다. 거기에 비해서 잘들어라 이 말은 사백 이십 오회가 나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을 달이주신 것은 단지 무엇을 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오늘 읽어드린 말씀의 배경을 잠깐 설명하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사백년 종살이 하다가 해방을 받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지금 가나안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그들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고 매일매일 광야에서 만나로 양식을 삼고, 하나님은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지키면서 그들을 데리고 지금 가나안땅 가까이까지 왔습니다.
40년 지도하던 모세는 죽고 그의 젊은 후계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됩니다. 장소는 귓띰이라는 곳까지 왔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제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야 되는데 그는 하나님께서 주시겠다 약속한 땅이지만 마음의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먼저 정탐꾼 두 사람을 여리고에 보냅니다. 한편 가나안족속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을 받고 지금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을 점령 하기 위해서 온다는 말을 듣고 그들은 간담이 녹았다고 성경에 기록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까 홍해를 육지처럼 갈라 놓고 하나님이 자기 민족을 건너게 하셨습니다. 바로 군대는 다 물속에 빠져 죽어습니다. 날마다 만나로 먹이면서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 지키는데 그 불기둥이 가나안 땅 자기들이 살고 있는 땅에 점점 가까이 오는 것을 그들이 보니까 그들의 간담이 녹을 수 밖에요. 특별이 여리고 성은 귀뜸에서 들어가면 첫 번 만나는 성입니다.
그러니까 여리고 백성들을 우리 여리고 성을 제일 먼저 쳐드려올 것이다 생각하고 군사를 풀어서 지키고 어떻게 해서든지 막아보려고 지금 긴장을 하고 있는 때입니다.
두 정탐꾼이 여리고 성에 들어왔습니다.
이 소식이 여리고 왕에게 들려 왔습니다. 그래서 군졸을 풀어서 잡으러 왔는데 그 두 정탐꾼이 마침 기생 라합의 집에 들어간 겁니다. 기생의 집은 여러 방을 가지고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여관처럼 잠자리를 제공하고 음식도 만들어팔고 때로는 몸도 쉬는 그런 집입니다.
그러니까 두 정탐꾼이 숨기에는 대단히 좋았지요.
군인들이 몰려왔습니다. 기생 라합은 무슨 생각에서 인지 두 정탐꾼을 옥상에 데리고 올라가서 물건을 말리는 심태 밑에 숨겨 줍니다.
그리고 군졸들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긴 왔었는데 나갔다고 빨리 쫓아가면 잡을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보낸 후부터 오늘 제가 읽어드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저녁이 됐습니다.
라합이 이 두 정탐꾼에게 가서 이야기합니다.
나는 안다. 나는 믿는다. 너희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이 우리 여리고 성을 너희들에게 주실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너희들을 숨겨 주었다. 그러니 너희들이 여리고 성에 쳐들어올 때 나와 내 가족을 살려다오.
그래서 성경을 계속 읽어보면 기생 라합은 똑바로 보는 보배로움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의 가족과 재산을 여리고성이 다 망하는 가운데서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세상이 아무리 험악해도 우리주변에 아무리 어려운 일이 많이 일어나도 오늘 우리는 이 라합처럼 지혜로운 눈을 가지고 살 때 우리는 승리할 줄 믿습니다.
첫째로 라합은 사람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기생의 집에는 많은 사람이 오고 갔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두 사람은 전혀 달랐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들과 다르다는 것을 라합은 즉각 알아봤습니다. 두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이스라엘 사람이요, 정탐꾼임을 알았습니다. 숨겨 달라는 그의 요청에 라합은 생명을 걸고 그 일을 합니다. 만약에 정탐꾼을 숨겨 줬다는 것이 발각이 되면 즉시 죽임을 당할 것을 알면서도 라합은 두 사람을 숨겨 줍니다. 이런 결단이 어디서 왔느냐 하면 사람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던 라합이기때문입니다. 우리도 사람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질 줄 알아야 됩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날 자기 집 앞에 앉아 있는데 웬 두 사람이 지나갑니다. 보니까 보통사람이 아니예요. 그래서 억지로 청해다가 자기 집에 모시고 그를 대접했습니다. 사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낸 두 천사였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그 사람 보는 눈 때문에 소돔성에서 멸망받을 조카 롯의 가족을 구원하게 된 것입니다. 사람을 볼 때 우리가 하나님의 방법을 따르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볼 때 세 가지로 봅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겉을 보지 않고 속을 봅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어떤 인생을 보실 때 오늘만 보지 않고 미래를 봅니다.
우리들은 너무 사람을 볼 때 오늘만 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의 미래에 대해서 보질 못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무시하고 깔보고 또 어떤 사람 앞에서는 비굴해지고 사람을 볼 때 오늘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미래를 볼 줄 알아야 됩니다.
셋째는 이 사람이 앞으로 어떻게 될 사람이구나 물질을 보지 말고 인격을 봐야 됩니다.
하나님은 인격을 보십니다.
하루 아침에 부자는 될 수 있어도 인격은 하루 아침에 다듬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생 라합은 비록 천한 여인이었지만 사람을 바로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찾아오는 정탐꾼을 숨겼줬는데 히브리 11장 31절에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복을 받았다 ”고 했습니다. 그 사람의 오늘만 보지 않고 장래를 보고 그 사람들의 껍데기를 본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속 믿음을 봤고 그들의 신앙의 인격을 믿고 그들을 숨겨주므로 라합은 자신의 가족과 온 재산을 지킬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사람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두 번째로 라합은 역사를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역사를 바로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역사는 쓸모 없는 흘러간 이야기가 아닙니다. 역사를 돌이켜 보며 미래를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교훈입니다. 라합은 그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우리 여리고 성이 든든하고 아무도 넘길 수 없는 철벽이지만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의 계획 앞에는 여리고 성을 아무것도 아닌 모래성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정탐꾼에게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당신들과 함께 이곳까지 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간담이 녹았습니다. 우리 여리고성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당신의 백성의 땅이 될 겁니다. 그러니 그대 나와 내 가족을 살려주시오. 그는 하나님의 역사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이걸 알아야 승리자가 됩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계획대로 되는 것을 아셔야 됩니다. 이걸 모르고는 훗날 인생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의 유명한 사람들이 일본이 이 땅에서 영원히 망하지 않을 줄 알고 친일파가 되어서 일본 앞잡이 노릇한 사람들 많습니다. 역사관이 분명해야 부끄러운 인생이 안되는 겁니다. 이건 개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인생은 내 맘대로 내가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획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되어진다는 사실을 알 때 그 사람들은 함부로 흔들거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고 힘차게 전진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 가운데도 이런 역사관이 분명히 안되니까 흔들거립니다.
하나님 앞에는 하나님의 계획 앞에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는 인간의 모든 것들은 다 모래성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역사를 보는 눈을 가져야 됩니다. 흔들리지 않을려면 분명한 하나님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집니다. 금강이 위에서 보면 꾸불꾸불해서 동서남북 자기 맘대로 흐르는 것 같지만 마지막에는 군산 앞바다로 흘러가 듯이 세상 역사가 언 듯 보면 하나님 뜻대로 안되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운송하고 의인에 편에 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이런 분명한 하나님의 역사를 알기 때문에 그는 자신 홀로라도 하나님편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라합은 하나님을 보는 눈을 가졌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8절로보면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이 땅 백성을 다 너희 앞에 간담히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의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말하기를 11절에 지금까지는 그것을 섬기면서 살면서 이것이 제일인줄 알았는데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소문을 들어 보니까 내가 섬기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잘못된 것을 과감히 버리고 그는 고백하기를 상천하지에 여오와는 살아있다는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위대한 승리자가 되려면 지금까지 내가 잘못알고 있었던 것을 하나님 앞에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돼요. 그래서 그는 그들과 약속합니다. 당신들이 쳐들어올 때 우리 창가에 빨간줄 붉은 줄 내려 놓을테니 우리집을 살려주십시오. 여러분, 내가 남들보다 재빠른 눈이 있어도 비상한 눈이 있어도 세상을 보는 눈이 있어도 하나님의 보는 눈이 없으면 결코 승리할 수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의 승리자이십니다.
여호와 라파 우리를 치유해 주십니다.
여호와 샬롬 우리의 평강이십니다.
여호와삼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여호와이레 우리를 위해 준비하십니다.
여러분! 우리의 승리자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우리의 삶속에 승리의 깃발을 꽂을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여호와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마음에 진정한 평안과 행복을 누리겠습니까?
5분 앞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내 인생을 하나님 모르고 승리의 길로 이끌어간다는 겁니까?
전혀 불가능 합니다. 그러므로로 라합의 하나님을 보는눈을 여러분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못보고 망한 사람 성경에 많습니다.
사울왕은 교만해서 하나님을 못보고 망한 사람입니다.
가롯 유다는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지만 건성으로 따라다녔어요.
정말 예수님을 바로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망했습니다.
아나니아 삽비라는 돈에 눈이 어두워서 하나님을 못보다가 망했습니다.
발람이라는 선지자는 하나님이 원치 않는데 원치 않는 길로 가려구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골목에다가 천사를 하나 보내어 칼을 들고 지나가기만 하면 목을 내려 칠려고 준비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못보는 거예요 타고 가던 나귀가 그것을 봤습니다.
그리고 안 가려고 하니까 발람 선지자가 나귀를 때리는 거예요 “이놈아, 왜 주인말을 안듣냐?” 나중에 나귀가 입을 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시켰죠 “날 왜 때리는 겁니까?”“저게 안보입니까?”
그때 하나님이 발람의 눈을 열어서 보게 했는데 보니까 천사가 칼을 들고 지나가면 당장 한 칼에 베어 버리려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 보지 못하면 실패합니다.
하나님을 볼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보고 축복받을 사람은 많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을 보고
바울은 유랑광 풍속에서 하나님을 보고,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는 고난 속에서도 하늘문이 열린 것을 보고, 위대한 순교자의 길을 걸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보는 자가 정말 승리자가 되는 겁니다.
화니크로스비는 위대한 신앙가요 시인이 었습니다. 그는 찬송가를 9000고 이상 썼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놀랍게도 태어나면서부터 소경었습니다. 그는 육신의 눈을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지만 하나님을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부르는 이 찬송가 속에도 그의 곡이 23곡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랑받는 은혜스러운 찬송들입니다.
43장 찬송으로 보답할 수 없는 큰사랑 46장 찬양하라 복되신 구세주 예수
219장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사랑하는 말일세 231 주가 맡긴 모든 역사 함을 다해 맡기고
275장 저 죽어가는 자 다 구원하고 295 후일에 생명 그칠 때 여전히
300장 예수께로 가면 나는 기뻐요 321 자비한 주께서 부르시네
323장 주께로 한 걸음 씩 왜 가지 않느냐 337 인애하신 구세주여 내 말 들으사
424장 나의 생명되신 주 주님 앞에 나아갑니다. 434 나의 갈길 다가도록 예수 인도하시니
446장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476 주 예수 넓은 품에 나 편히 안겨서
480장 기도하는 이 시간 주께 무릎끓고 492장 나의 영원하시는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496장 십자가로 가까이 나를 이끄시고 501장 주의 십자가 있는데 더 가까이 가네
508장 다 함께 되기를 내가 항상 원하니
못보는 소경의 어쩌면 인생을 가장 불행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사람이었으나 그가 하나님을 보는 눈이 있었습니다. 오늘 건강한 우리들에게 감동을 주는 찬송을 9000곡 이상이나 만들 었습니다
기생 라합을 천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보배로운, 지혜로운 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는 위대한 승리자가 되어왕의 족보에 올랐습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족보에 기생 라합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내가 앉아 있는 자리가 진흙 밭과 같이 천한 자리라도 상관없어요. 지금 앉아 있는 곳이 쓰레기장이어도 괜찮아요. 지혜로운 라합의 눈을 갖기만 하면 우리는 라합처럼 위대한 이름으로 바꾸어질 수 있습니다.
믿음 좋은 눈을 가지세요.
사람을 바로 보는 눈, 역사를 바로 보는 눈, 하나님을 바로 보는 눈을 가질 때 여러분도 위대한 승리자가 될 것을 믿습니다
출처:은혜목회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