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을 감옥에 두고 월남한 어머니
어머니는 반동분자로 몰려 7년형을 받고 평안북도 용등탄광에 수감된 아버지를 남겨 둔 채 우리 5남매를 데리고 흥남부두에서 필사적으로 미군 수송선에 올랐다. 남편이 남은 형기 4년을 다 채우고 풀려나기를 기다리는 게 아내 된 도리였겠으나 어머니는 과감히 북한을 떠나 남한으로 내려왔다. 함경남도 함흥의 미션 스쿨 영생여고를 졸업한 신여성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아버지는 연희전문 상과를 졸업하고 고향(함남 홍원군 삼호면)으로 돌아와 할아버지 재산을 관리하며 함흥상업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근무하다 공산 사회의 반동분자로 낙인찍힌 후 정미소와 논밭 등 재산을 몽땅 몰수당했다. 김일성의 말이 곧 법이었고, 어제의 일꾼들이 완장 차고 행패 부리는 무법천지로 변한 것이다
만약 그때 어머니가 그 사회에 미련을 조금이라도 갖고 아버지를 더 기다렸다면 우리 5남매의 운명은 어찌됐을까?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다. 우리는 반동분자의 자식으로 집단수용소에서 강제 노역을 하다 진즉 한 많은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남한에서 고위 관리를 지낸 후 북한에 가서 여동생과 상봉한 지인이 있다. 초췌한 노인으로 변한 동생을 면회소에서 만나 주소를 적어 달라고 했으나 눈물만 짓고 있길래 사연을 물으니 글을 모른다는 게 아닌가. 월남 가족이 있는 불순분자로 집단수용소에서 노예로 짐승처럼 살아온 동생을 보고 그는 억장이 무너졌다고 했다. 그것이 만인이 평등하게 산다는 공산주의의 실상이고 3대 세습으로 이어지는 독재자의 활동 무대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공동 수상자인 다론 아제모을루 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시카고대학 교수는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Why Nations Fail)’에서 남북의 경제를 비교하면서 북한은 탄압과 통제를 위해 권력을 휘두른 착취적 경제 제도로 인해 실패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남한은 대중이 재능과 기술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사유 재산을 허용하고, 촘촘한 공공 서비스로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을 제공하며, 직업 선택의 자유를 보장하는 포용적 경제 제도로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로 대치하고 있는 한반도의 체제 전쟁에서는 경제보다 이념이 승패를 가르는 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 그동안 이룩한 경제 번영에 자만하며 안이하게 누리고 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종북 좌파는 사회주의 이념으로 오랫동안 무장해 온 극소수 혁명 세력에서 비롯됐다. 군사 정권은 이들을 간첩으로 다뤘고, 문민정부는 국가보안법으로 규제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는 국가보안법을 약화시키고 전교조를 지원했다. 좌파 종북 세력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전교조를 통해 지난 40여 년 동안 남한은 약자를 수탈하는 부도덕한 사회라며 어린 학생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을 심어 왔다.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미국을 주적으로 가르쳤다. 이런 교육을 받고 이제 나라의 주역으로 자리 잡은 4050 세대는 사회주의 통일에 거부감이 없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토지 국유화·주한 미군 철수·사드 배치 반대를 공공연히 떠드는 정치인들이 활개치는 등 북한의 적화 통일 전선이 8부 능선에 이른 것으로 보였다.
여기에 더해 한국의 고속 성장은 저소득층의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자본주의 사회는 양극화 현상을 아무리 줄이려고 노력해도 절반 이상이 불만 세력이 될 수 있다. 계속되는 금융 사고와 전세 사기, 자영업자 몰락 등으로 가난에 내몰린 사람들이 들끓고 있다. 당장 내일 아침 먹을 쌀이 없는 가난을 격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절박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들을 끌어안고 희망을 말해 줄 수 있는 우파 정치 지도자가 많이 나와야 하나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필자는 지난 총선 때 국회 개혁을 당론으로 정하고 후보들에게 국회 개혁 서약을 받아 국민에게 변화를 보여 줘야 우파 진영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어느 우파 원로는 “압승할 테니 염려 말라”고 큰소리쳤다. 자유민주주의의 혜택을 과분하게 누리며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우파는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참담한 총선 결과는 입법 독재와 줄탄핵으로 이어졌고, 이에 맞선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대선을 2년 앞당기는 결과를 낳았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우파로서는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이번에도 좌파의 말꼬리나 잡고 공허한 약속을 남발하는 수준에 그쳤다간 대선 참패 정도가 아니라 한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 자체가 무너질 것이다. 이게 마지막 기회다. 우리 자식들을 또다시 그 생지옥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다. 목숨 걸고 막아야 한다. 공산주의의 허구와 잔혹한 실상을 파헤치고 자유민주주의의 성과와 세계를 향한 새로운 비전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광복 후 우리가 걸어온 길을 철저히 분석하고, 공산화로 회귀하려는 현재 상황을 막기 위해 몸부림치는 처절함을 보여 줘야 한다. 공산 사회를 탈출하기 위해
흥남부두에서 몸부림치던 어머니의 모습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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