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2일 새로 태어남
세례성사는 죽고 새로 태어남이다. 우리는 대부분 세례 때 머리에 세례수를 붓지만, 코를 막고 수조나 강물에 들어갔다 나오는 교회도 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남을 아주 실감 나게 표현한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게 그런 것이다. 완전히 다르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감이다.
하느님 편과 그 반대편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물과 기름이 섞일 수 없는 거처럼 반은 하느님, 나머지는 그 반대쪽에 속할 수 없다.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는 하느님 반대쪽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다. 예수님은 넘치는 카리스마를 지닌 시쳇말로 능력자였고 그분이 하신 말에는 거짓이 없으며 사람들에게 좋은 일만 해주셨다. 그렇다고 모든 이가 그분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예수님은 그로 인해 당신에게 닥칠 수난과 죽음을 알고 계셨다. 그런데도 당신의 삶을 바꾸지 않으셨다. 그건 바꿀 수 없는 것이다. 그들이 그리고 우리가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삶은 참으로 전격적이었다. 사람들이 내일이나 모레 당장 세상 종말이 온다고 여겼을 만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선택과 회개도 그래야 하는데, 가족이 서로 갈라질 정도다. 그것은 부모 자식 관계보다도 우선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루카 12,51.53) 구약 성경에서 가족의 분열은 종말을 상징하곤 했다.(미카 7,6; 하까 2,22; 말라 3,24) 우리 다 함께가 아니라 내가, 나만, 나 홀로 하느님 앞에 서게 된다는 뜻이겠다.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관계가 하느님과 나 사이라는 뜻이기도 하겠다.
예수님은 칼을 주고,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셨다. 하느님 뜻에 어긋나는 건 당연하고 마음을 흔들고 빼앗는 세상 모든 걸 쓰레기로 여겨야겠다. 쓰레기는 버리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가 한 고백을 귀여겨들을 만하다.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나의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의 지고한 가치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을 해로운 것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 3,7-9) 우리의 관심은 자기 내적 인간이다. 사도는 이렇게 권고한다. “여러분의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 안에 사시게 하시며, 여러분이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그것을 기초로 삼게 하시기를 빕니다.”(에페 3,17) 하느님 사랑이 불타오르기를 바란다.
예수님, 오늘도 회개하고 복음을 믿습니다. 믿음의 날카로운 칼로 세상 것들에 대한 유혹과 함께 제 생명에 대한 집착과 세속적인 꿈과 바람도 잘라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 그날인 거처럼 기쁘게 살겠습니다. 주님이 도와주시지 않으면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영원한 도움의 성모님, 이 이콘 앞에서 기도하며 영원한 나라에 더 마음을 두게 해주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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