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우는 데는 30여 년. 망치는 데는 단 5년 “형님. 오동동 곧 망할 겁니다 바가지 구더기입니다”…오동동이 망하면 마산이 망할 테고 마산이 망하면 다음엔 무엇이 망할까? 무학산(회원)
문재인이 5년 동안 망친 것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안 보이는 것이 더 많다. 보이는 것은 고치면 된다. 그러나 안 보이는 소소하고 잡다한 것들이 이 나라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박정희 각하가 이 나라를 농업국가에서 산업국가로 탈바꿈시키기 위해 가장 치중했던 것은 '사회악 일소'였다. 가진 것은 맨주먹일 뿐, 수출할 것이라곤 없을 때 다행히 사과는 수출할 수 있었다. 농민들이 나무 궤짝에 사과를 넣을 때 가운데에는 썩은 것들을 넣고 바같 부분에만 좋은 사과를 넣어 수출하곤 했다. 이런 일들로 해서 시작한 것이 '사회악 일소' 운동이었다. 장사꾼이 손님에게 이른바 ‘바가지’를 쒸우는 것도 시급히 없애야 할 문제였다. 하여 바가지라는 사회악은 우리 사회에서 싹 사라졌고 물건을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물건을 살 때 믿고 살 수 있으니 그 효과가 번져나가 서로가 서로를 믿는 사회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5년을 겪은 지금 여러 신문에 매일 같이 '바가지' 기사가 실린다. 인기 연예인이 축제장에 가서 ‘옛날 과자’를 샀다가 바가지를 쓴 것이 보도되더니 다음 날은 전라도 어느 축제장에서 돼지고기 바가지를 쓴 것이 사진과 함께 보도되었고, 오늘 조선일보에는《'바꿔치기' 큰절 사과했던 어시장… 집에 와보니 여전히 '다리 잘린 게'》란 기사 제목이 있다. 그뿐만 아니다. 마트서 구입한 참외 박스 가운데에는 썩은 참외가 들어 있다. 장사꾼이 개인적으로 바가지를 씌우는 것도 문제지만 시장 단위와 마트 단위로 씌우는 것은 그들의 선의에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며칠 전에 유투브를 보니, 맥주 두어 병 마시고 나왔는데 술값이 너무 많이 나왔기에 손님이 따지니 주인이 “미안합니다 착각하여 다른 손님 것으로 계산했군요”하며 변명하는 게 있었다. 이것을 볼 때는 아무 느낌도 없었지만 내가 같은 일을 당하고선, 이렇게 ‘바가지’가 극성이니까 유투브에도 그런 내용이 나왔구나 생각했다. 대체로 누구나가 몸소 겪지 않으면 그러려니 하고 무심히 넘어 가버린다. 나 역시 바가지 기사를 읽긴 했으나 어쩌다가 있는 일이겠거니 여기고 말았다. 어제밤에 지인들과 어울려, 술집 동네로 유명한 오동동에서 맥주를 먹었는데 계산이 엄청나게 많이 나왔다. 하여 따져서 바로잡았다. 마침 지나가던 그 동네 동생들이 무슨 일인가 빼꼼 들여다보기에 “허허. 참. 오동동이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는구나” 했더니 동생들이 입을 모아 “형님. 오동동 곧 망할 겁니다 바가지 구더기입니다”라 했다. 한때 나의 나와바리였던 곳이 나를 호구 잡으려 했으니 일행이 서로 쳐다보면서 웃었다. 60년대에나 있었던 '바가지'가 문재인 손에 되살아나서 아무한테나 닥치는 대로 바가지 씌우는 것이다. ‘오동동 타령’이란 황정자의 노래도 있듯이 오동동은 일제시대 때부터 마산에서 가장 시내이고 번화가였다. 그러나 그 영화도 80년대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렸다. 시청은 그 영화를 되살리고자 많은 예산을 들여, 보도블록을 멋지게 깐다, 간판을 새 것으로 단다, 광장을 만든다, 문화의 거리를 만든다 갖은 애를 썼다. 그 결과 다시 시민이 찾는 동네가 돼가는 듯하더니 뒤에서는 바가지란 사회악이 찬물을 끼얹고 있었던 것이다. 오동동이 망하면 마산이 망할 테고 마산이 망하면 다음엔 무엇이 망할까? 수출이 줄면 노력하여 늘리면 된다. 그러나 썩은 사과를 안 넣는 인격을 만드는 데에는 30년도 모자랄지 모른다. 전국적으로 일어난 바가지 선풍은 장사꾼 개인의 뜻이 모여서 된 것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풍조를 만든 것이다. 박정희 각하가 몸 바쳐 이룩한 신뢰 사회를 문재인이가 단 5년 만에 무너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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