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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후기
11월 19일부터 11월30일까지 터키, 그리스,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내가 도전을 받았던 은혜를 적어봅니다.
터키로 가는 대한항공기 내에서 나는 파스칼의 “인간은 하나의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는 말에 100%공감을 하였습니다.
밖으로 내다 본 하늘 위에는 구름이 떠 있고 구름 위에 구름이 있고 작게만 보이는 산과 바다를 보면서 나라는 사람이 죽어도 우주는 눈 하나 꿈쩍이지도 않을 존재임을 다시금 느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광대하시며 무궁하여서 나를 감격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하루 일정을 시작하면서 경건의 시간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여행을 하다 보니 은혜위에 은혜를 더하여준 것 같습니다.
인간은 하나의 연약한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자연 중에서 가장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무찌르기 위해 전우주가 무장할 필요는 없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만으로도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무찌른다 해도 인간은 자기를 죽이는 자보다 더 고귀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과 우주가 자기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알지만, 우주는 전혀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존엄성은 그의 사고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고에 의해서 스스로 높여야 한다. 우리가 모두 채울 수 없는 공간이나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잘 사고하기에 힘써야 한다.
이것이 바로 도덕의 근본이다.
(11월 3일 직장 찬양제에서 수원시청 팀이 불렀던 노래를 나의 노래로 올립니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호흡마저도 다 주의 것이니 세상 평안과 위로 내게 없어도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크신 계획 다 볼 수도 없고 작은 고난에 지쳐도
주께 묶인 나의 모든 삶 버티고 견디게 하시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가 없네.
나의 모든 것 다 주께 맡기니 참된 평안과 위로 내게 주신 주
예수 오직 예수뿐이네.
오직 예수뿐이네 오직 예수뿐이네
여권과 보따리만 잘 챙기면 된다는 고명한 목사님의 말씀을 잘 들었습니다.
터키를 여행하였을 때에 오세만 집사님의 해박한 성경 지식이 탁월하였으며 김순자 집사님과 박상원 안수 집사님의 설명도 이해가 잘 되었습니다.
성지순례 가이드를 하려면 적어도 성경의 역사를 배워서 잘 아는 사람이 해야만 되겠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모든 일에는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만 이 이정을 받고 대접을 받습니다.
좋은 안내자를 만난 것이 참으로 복된 일이었습니다.
『묵상』이라는 짐다우닝 저 소책자를 가지고 가서 다시 새롭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다시 예수님을 믿기로 한 정재표 형제님에게 읽어보라고 주었습니다.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가 형통한 삷을 산다고 하였는데 주야로 묵상하는 것에 대하여 의식과 무의식을 활용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방법에 대하여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주야로 묵상하는 방법에 대하여 잘 몰랐는데 해법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사도행전 17:11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주야로 성경을 대하는데 있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여 읽고 들어야 하겠습니다.
독서를 많이 하되 성경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독서로 나의 영혼을 살찌우겠습니다.
유럽 문명의 어머니 지중해. 지중해를 비롯한 흑해와 카스피해는 유라시아 대륙판과 아프리카 대륙판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바다입니다.
지중해는 유럽 문명의 모태가 되기 때문에 유럽 문명의 어머니라고 불립니다.
유럽과 아시아와 아프리카를 있는 지구의 중심인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변방이 아닌 모든 세계 사람들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기원전 481년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엄청난 대군(역사가 헤로도토스는 264만1천명의 병사라 함, 어느 책은 170만 명, 현대의 학자는 30만 명 정도로 추정)을 끌고 그리스를 침공했다.
바로 3차 페르시아 전투다.
대군 앞의 그리스 연합군은 풍전등화였다.
이때 레오니다스 왕은 스파르타 정예병 300명, 노예병 7천명을 이곳에 남기고 나머지 아테네 연합군을 철수시켰다. 페르시아의 대왕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는 `레오니다스`에게 무기를 버리고 항복하라고 했다.
레오니다스는 대꾸했다.
`와서 가져가라.`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 레오니다스 동상 밑에는 당시 그가 말했던 말이 두 단어로 새겨져 있다.
이것 외에도 스파르타 군인의 용감성은 불세출의 명언으로 많이 회자된다.
스파르타 군인 `디에네케스`에게 동맹국 트라키아의 주민이 하얗게 질린 채로 찾아왔다.
“페르시아 모든 궁수들이 일제히 활을 쏘면 화살의 그림자가 태양을 가릴 정도입니다.”
그 말에 디에네케스는 너털웃음을 웃으며
“잘됐군. 그럼 우리 군대는 그늘에서 전투할 수 있겠군.”
그만큼 페르시아의 많은 군사에 대항하는 스파르타 군인의 임전무퇴 정신자세를 보여주는 일화다.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테르모필레 전투 이전에도 두 번이나 싸웠다.
첫 번째는 기원전 492년이었고 두 번째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다. 이곳의 테르모필레 전투는 기원전 480년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가 승리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이런 전투에 대한 기록은 헤르도트스의 명저 `역사`를 비롯하여 풀루타르크 `영웅전` 및 여러 책에 등장하는데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이곳에서 벌어졌던 전투다.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 광장 옆에는 전투에 따른 설명과 당시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알려주는 안내판이 있다.
그렇다고 델포이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처럼 거창한 유물유적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오래 전 기록에 따른 기념물을 세웠기에 후세의 사람들은 그곳을 찾고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전쟁을 잊지 않고 기억할 뿐이다.
광장 밖에는 머리와 팔이 없는 또 하나의 조각상도 보인다. 무명용사비다.
전쟁에는 숱한 영웅호걸이 탄생한다. 영웅호걸과 그들 밑에서 목숨을 잃은 이름 없는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기에 나라의 영토는 지켜지고, 역사는 존재하는 것일 게다.
2천5백 년 전 테르모필레 전투는 유럽과 아시아를 지리적으로 나누는 계기가 된 전투다.
그 전쟁의 후유증은 아직도 저 중동 곳곳에서 배턴을 이어받듯 또 다른 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테르모필레 전투 기념비에서 허황되게 떠올려본다
결국에는 한 사람의 배반으로 싸움에서 다 전사하지만 스파르타 군인들의 용맹성을 세계에 널리 알린 싸움이었다.]
그 당시 신에게 묻는 장명과 시대 상황을 잘 나타내었다고 하며 정광재 집사님이 재미가 있어서 많이 봤다고 하였는데 나도 꼭 볼 작정입니다.
델포이까지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길이다.
가는 길에 산 중턱 고갯마루에서 멈췄다. 휴게소는 없지만 파르나쏘스 산 서편으로 자리 잡은 `아라코바`란 예쁜 마을을 구경하기 위해서다.]
산 중턱에 전형적인 그리스풍의 흰 벽, 붉은 기와 건물들이 우리를 향해 길 하나를 밧줄처럼 내려주고 있다. 사진 몇 컷을 찍은 우린 밧줄(길)을 타고 아라코바 마을로 올랐다.
아라코바는 마을 뒤쪽으로 스키장이 있어 겨울이면 유럽인들이 찾는 휴양지다. 스키뿐만 아니라 파스타, 양모, 수예로 널리 알려진 부자마을이다.
▲ 옴팔로스.
아라코바에서 다시 쉬었다 출발한 승용차가 델포이 유적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1시였다.
옛날 옛적 그곳엔 왕뱀 퓌톤과 그의 짝 퓌티아가 살고 있었다.
활 잘 쏘는 아폴론이 화살로 퓌톤을 죽였다.
그리고 퓌티아를 인간으로 만들어 아폴론 신전의 제관(예언자) 역할을 담당하게 했다. 당시 국가적 중요한 사안인 전쟁, 식민지 건설 등이 있을 때마다 왕들은 이곳에서 신탁을 청했다. 신탁의 신전이기 때문에 그리스 곳곳에서 봉헌된 보물로 아폴론 신전 창고는 가득했다.
실내 박물관을 먼저 견학하기로 했다.
델포이 유적 관광은 크게 네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실내 박물관과 아폴론신전 부근, 위쪽 전차경기장, 그리고 도로 밑 톨로스 부분이다. 그 공간이 넓기 때문에 시간의 안배가 필요하다.
델포이는 고대 그리스의 4대 제전 가운데 하나인 퓌티아 제전을 기원전 582년부터 4년마다 열었던 곳이다.
퓌티아 제전은 체육대회와 연극대회로 구분되는데 아폴론 신전 바로 뒤쪽으로 공연장이 자리하고 있다.
전차 경기장은 제일 위쪽에 있는데 당시 경기의 우승자에겐 월계관을 수여했다.
델포이 실내박물관은 아르카이크 시대로부터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델포이의 유적지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6년 전 이곳을 찾았을 때의 모습과 별 차이 없다. 당시 난 혼자 이곳을 찾았다.
또 다시 박물관 유물을 만나니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감회가 새롭다. 박물관에는 부서진 돌조각들의 해체와 결합, 부조와 환조들이 널려있다.
그렇기 때문에 망가져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상상하면서 감상해야 한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전차 기사(약 180cm)가 눈에 들어온다. 그것을 보곤 마부가 마차를 몰고 가는 것처럼 4두 마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이 청동 기사는 시칠리아 섬의 겔라(Gela)를 다스리던 참주(지역 왕) 폴리잘로스(Polyzalos)가 델피에 바친 봉헌물이다.
폴리잘로스가 기원전 478년경 퓌티아 게임의 전차 경주에서 우승한 것을 기념해서 바쳤다.
시칠리아는 현재 이탈리아 땅이지만 당시는 이곳의 영향력 아래였음을 보여주는 전시물이다. 대부분의 유물이 없어지고 파괴되었음에도 이것은 기원전 373년에 발생한 지진으로 땅속에 묻혔기에 약탈을 피할 수 있었고 1896년 프랑스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되었다.
실내 박물관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머무는 곳 중의 하나는 옴팔로스(Omphalos) 앞이다.
이 돌은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가 토해냈던 `돌` 이라고도 하고, 제우스가 지구 끝까지 보냈던 두 독수리가 되돌아왔을 때 만난 지점으로 지구의 중심을 상징하기도 한다. 새끼줄(양모)처럼 돋을 무늬가 이어진 옴팔로스는 아폴론 신전 북쪽에 있었다. 또한 낙소스 섬에서 바친 스핑크스는 이집트에서 유래한 것으로 얼굴은 여자, 몸은 사자에 새의 날개를 가졌다.
기둥을 포함해서 높이가 12m나 되었다고 한다.
아폴론 신전 정면에서 방문객을 내려 보았다고 한다.
기원전 580년 경 아르고스에서 바친 쿠로스 상은 클레오비스와 비톤 형제로 알려졌다.
이런 조각과 함께 벽면 부조는 아폴론 신전의 박공부분, 헤라클레스의 전쟁 장면 등 다양하다. `여인 기둥상`, `목 잘린 여인상`, `시시포스 1세 동상`, `무희의 기둥`, `헤라클레스상`, `청동방패`, `아폴론 두상`, `악기들 들고 술을 따르는 아폴론 도자기` 등 긴 시간 각종 전시물을 보고 나오려 할 때 `삼발이 솥`이 보였다. 많은 책에서 인용하는 유물이다. 이 솥은 헬레네가 트로이아(=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고국 스파르타로 되돌아가면서 바다에 던진 솥이다.
이 황금 솥은 코스 섬에 사는 고기 잡는 어부의 그물에 걸려나왔는데 `가장 현명한 철학자가 주인이 되어야 한다`고 적혀 있었다. 탈레스, 비아스, 솔론 3사람에게 주었더니 모두 사양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에 바쳐졌다고 한다.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안정적인 형태를 상징한다. 신탁의 무녀들이 앉았던 의자도 삼발이 의자다.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은 델로스 섬의 아폴론 신전,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전과 함께 고대시대에 가장 중요한 신탁소였다.
주변 방대한 유물들이 그야말로 노천박물관이다. 톨로스나 아폴론 신전에 대한 속살 깊은 이야기는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아고라, 참배로, 보물창고(아테네 보물창고는 거의 완벽하게 복원), 김나지움(체육관), 아폴로 신전, 극장을 구경한다. 비탈에 쌓은 돌들이 정교하다. 아테네, 아르고스, 시키온, 시프노스 등 곳곳 지역에서 봉헌한 봉헌창고 흔적을 훑어볼 때 `너 자신을 알라`란 글자가 소크라테스 이전에 이미 새겨져 있었음을 알려준다.
길이 60m, 폭 23m의 기단과 38개의 기둥(현재 6개 남아 있음)이 있었던 아폴론 신전과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극장을 견학한 후 위쪽 전차 경기장을 보러 가야 하는데 이미 더위로 지친 상태다. 강렬한 빛으로 사진을 찍어도 액정화면을 제대로 볼 수 없다. 일행 대표로 서둘러 올라가서 사진 몇 컷을 찍고 내려온다. 전차 경기장의 길이는 178m, 폭은 25m로 7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다.
델포이를 여행하면서 송해교가 태양의 후예로 영화촬영을 한 곳에 가서 기념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은 참으로 무지하다.
그 당시 사람들이 믿었던 우상들을 보고 또 무녀가 지하에서 올라오는 천연가스를 마시고 횡설수설한 것을 믿고 따랐다니 참으로 인간의 이성은 한심할 뿐이며 지금도 이단들은 들을 따르는 한심한 자들이 불쌍할 따름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문화운동인 르네상스의 발원지 피렌체!
모나리자, 비너스의 탄생, 천지창조… 다 빈치, 보티첼리, 미켈란젤로 등 수많은 인물을 키워낸 메디치 가문 350년간의 흥미롭다.
메디치 가문의 역사와 업적을 통해 중세 시대를 마감하고 르네상스 시대를 열 수 있었던 기반과 그들의 성공 비밀을 보여준다.
르네상스를 피렌체에서 일으킨 역사상 가장 위대한 가문의 발흥부터 몰락까지 350년간 13세대에 걸치고 있다.
어떤 왕가도 메디치 가문이 르네상스와 예술에 이바지한 공적에 필적하지 못한다.
그 비밀은 무엇일까?
역사 속에서 장수한 가문(기업)들을 살펴보면 그만의 비결이 있기 마련이다.
단지 재력과 권모술수만으로 명가의 자리에 오르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메디치 가문은 탁월한 국정 수행 능력을 보였고, 시민들을 귀족의 압제에서 보호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면서 피렌체 시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을 살펴보면서 시대가 바뀌어도 변치 않는 지도력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메디치 가문이 어떻게 명문가가 될 수 있었는지, 그리고 수많은 천재 예술가들의 재능이 어떻게 메디치 가문을 토대로 꽃피울 수 있었는지는 많은 사람들의 귀감이 된다.
우리 시대에 메디치 가문의 영광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명문의 가정을 일으켜서 세상에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다.
적지만 나부터 아니 내 후손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명문 가정을 한 번 꾸미어보자.
내 자식, 손자, 이웃 등 주변에 좋은 영향력을 끼치도록 크고 넓게 세상을 보며 살아가자.
가문이 되지 않더라도 나만이라도 그 길을 걸어보자.
고대 그리스에는 철학이 융성하였지만 사람이 많이 안다고 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세상 적으로 너무나 많이 아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에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지도 모릅니다.
나도 가끔 인터넷에 사람의 행동을 바꿀 말들을 옮겨 보지만 이것들보다 더 소중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바울이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였을 때에 유대인들의 방해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나의 달려갈 길을 걸어갔다는 고백이 나의 마음속에 맴돕니다.
무엇이 바울을 이 세상으로부터 상급을 기대하지 않도록 하였을까? 라는 질문을 하여봅니다.
로마 콜롯세움 경기장을 지은 이들이 잡혀온 유대인들 4만 명이 건설하였다고 하니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핍박을 받은 민족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 피의 대가를 받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 당시 박해를 피해서 카타콤베(지하무덤)에서 예배를 드렸던 그 당시 사람들, 맹수에 물려가면서, 참수를 당하면서도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던 그들의 신앙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고 있는가?
바티칸 박물과, 시스티나 성당 벽화 등 많은 조각들과 그림들이 여행객들은 성인들, 12사도, 바울 등을 보고 감탄을 하지만 결국에는 예수님 한분에 귀결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면 헛것들을 본 것입니다.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곳은 주님 한분뿐이십니다.
<시편 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우리의 입술에는 감사가 넘쳐나며 다른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어보도록 하여야 합니다.
<이사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아무리 세상이 어두움에 가득해 잇을 지라도 우리는 빛의 자녀들로서 빛을 비추며 살아야 합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