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억해 내지 못할까(nappahomi anussarituṃ)
사꿀루다이 짧은 경(M79)에 '사꿀-우다이'라는 유행승은
'언제나 한결같이 지와 견이 현전한다.'라고 완전한 지와 견을 선언하는 자에게
과거에 관해 질문하면 화제를 바꾸고(bahiddhā kathaṃ apanāmesi), 화를 낸다면서
세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런 제게 세존을 생각하면서 환희심이 생겼습니다.
' 오, 참으로 이런 법들에 능숙한 분은 세존이시고 선서이시다. '라고.
tassa mayhaṃ, bhante, bhagavantaṃyeva ārabbha sati udapādi —
‘ aho nūna bhagavā, aho nūna sugato! yo imesaṃ dhammānaṃ sukusalo ’ ”ti.
* 세존에 대하여 (' 다음 '과 같은) 기억이 생겨났습니다. -
' 오, 참으로 이런 법들에 능숙한 분은 세존이시고 선서이시다. ']
이 문장과 유사한 구문은
[' ......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 라고.
난디야여, 그대는 이와 같이 여래를 대상으로 안으로 마음챙김을 확립해야 한다.
iti kho te, nandiya, tathāgataṃ ārabbha ajjhattaṃ sati upaṭṭhāpetabbā.
* 內로 여래에 대하여 '이와 같이' (=
' ...... 깨달은 분[佛]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 라는) 기억을 확립해야한다.]
*부기 2023.10.11.11:30
[tassa mayhaṃ, bhante, tasmiṃ samaye
mussateva bhagavantaṃ ārabbha sati,
mussati dhammaṃ ārabbha sati,
mussati saṅghaṃ ārabbha sati.
세존이시여, 그러면 그때
세존에 대한 저의 마음챙김은 흐리멍덩하게 되고
법에 대한 저의 마음챙김은 흐리멍덩하게 되고
승가에 대한 저의 마음챙김은 흐리멍덩하게 됩니다.
*mussati:[mus + ya] forgets; passes into oblivion]
[disvāna bhagavantaṃyeva ārabbha sati udapādi —
“ imāni kho tāni rukkhamūlāni pāsādikāni pasādanīyāni appasaddāni appanigghosāni
vijanavātāni manussarāhasseyyakāni paṭisallānasāruppāni,
yattha sudaṃ mayaṃ taṃ bhagavantaṃ payirupāsāma arahantaṃ sammāsambuddhan ”ti.
보고는 세존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 이 나무 밑은 아름답고 멋있고 조용하고 소음이 없고 한적하고 인적이 드물고
그 아래에서 한거하기에 좋다.
전에 우리는 이런 곳에서 아라한이시고 정등각자이신 세존께 인사를 드리고는 했다. ”]
이와 같이 불수념(佛隨念-buddhānussati)을
念佛(념불) 혹은 佛(세존)에 대한 念(기억)[bhagavantaṃ ārabbha sati]으로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念佛이든 佛隨念이든 모두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隨念(anussati)이라는 표현이 정형적으로 나타나는 宿命知(아빈냐)에 대해서도
본 경에 다음과 같은 언급이 나타납니다.
[“ahañhi, bhante, yāvatakampi me iminā attabhāvena paccanubhūtaṃ
tampi nappahomi sākāraṃ sauddesaṃ anussarituṃ,
세존이시여, 저는 현재의 이 몸으로 경험한 것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내는 것도 불가능한데
kuto panāh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issāmi, seyyathidaṃ —
ekampi jātiṃ dvepi jātiyo ... pe ...
iti sākāraṃ sauddesaṃ anekavihitaṃ pubbenivāsaṃ anussarissāmi, seyyathāpi bhagavā?
어떻게 제가 세존께서 하시는 것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여
즉 한 생, 두 생, …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낼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me iminā attabhāvena paccanubhūtaṃ]라는 표현이 나타나는데
attabhāva는 各自의 自身(자아)를 의미하고
paccanubhūta는 各自가 '겪은 과정' 혹은 '어떻게 된 경험'을 의미하지 싶습니다.
즉 우다이라는 유행승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들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우리들은 [attabhāvena paccanubhūtaṃ] 각자 자신에 의해서 무엇인가 경험했는데
그런데 (tam)무엇을 (nappahomi sākāraṃ sauddesaṃ anussarituṃ)기억할 수 없을까요?
[비구들이여, 전생의 거주처가 마음챙김으로 실현해야 할 법들이다.
pubbenivāso, bhikkhave, satiyā sacchikaraṇīyo.
*숙명은 기억으로 실현되는 법이다.]
또한 바로 이전의 전생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yathāsamāhite citte taṃ pubbenivāsaṃ anussarati, tato paraṃ nānussarati.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삼매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삼매를 얻는다.]
하다못해 방금 둔 바둑을 復碁하는 碁師도 있지만 복기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은
단지 암기력의 차이일까요?
첫댓글
https://www.youtube.com/watch?v=dI-6wnHNQ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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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po_uynthP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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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자
https://www.youtube.com/watch?v=6LVVlLnIr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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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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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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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중에 일부 내용 부기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