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가 받지 않기를 바라며
전화를 걸었다.
그것을 물어보려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슬쩍
그것을 물어보려고
그때 그 농담이 무엇이었느냐고
대체 어떤 농담이었는데 지금 내가
이토록 쓸쓸한 것이냐고’
- 이장욱 詩『농담』
- 시집〈음악집〉문학과지성사 | 2024
화창한 날이다. 아직 쌀쌀하지만, 더 추워질 일 없다는 안심만으로도 포근하다. 나무 또한 같은 심정으로 꽃을 피울 테지. 약속을 믿고. 과연 이 모든 게 약속이다. 봄이 오면 새순이 돋고, 주말이면 즐거워진다. 창밖을 쾌활한 태도로 지나가는 저 남녀는 봄과의 약속을 지키는 중이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후회가 찾아온다. 이 달갑지 않은 방문객은 따뜻한 기온 중에도 손발을 시리게 한다. 어긴 약속은 돌이킬 수 없다. 돌이킬 수 없으므로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늘 뒤늦게 알아차리고 만다. 어젯밤 나는 한 장의 사진 앞에서 저릿한 후회를 느꼈다. 지난 설에 찍은 것으로 게을러 이제야 현상한 그 사진 속에는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일까. 꽤 심란한 내용이었나 보다. 어머니의 이마에 주름이 깊어 한층 더 나이 들어 보인다. 사진이란 대상과의 거리를 두는 매체임을 감안해도 마음이 편치 않다. 아마, 저 세월의 대부분을 나에 대한 근심으로 보내셨으리라 하는 자각 때문이다. 내가 빈틈없이 훌륭한 아들이었대도 나이 들어감이야 어쩔 수 없는 일이겠으나 조금이나마 덜어드릴 수 있지 않았을까. 부모와 자식 간의 도리 또한 약속일진대, 그 약속은 어째 한 방향으로만 흐르고 말았나.
시린 손을 비비며 다시 창밖을 본다. 여전히 봄이다. 시간은 농담 같고, 마음은 후회의 그늘로 가득하다. 나의 계절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번 봄 어머니와 같이 꽃놀이라도 갈까. 가고 오는 길에 한껏 웃게 해드리면 저 주름이 좀 가시려나 어떠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