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를 비난한 '김삿갓'과 '전우원'
전두환 전 대통령의 18번이
'죽장(竹杖)에 삿갓 쓰고'로 시작되는
'방랑시인 김삿갓'이었다는
구전(口傳)이 의미심장하다.
"할아버지가 5·18학살 주범(동아일보)"
"전두환 손자,무릎꿇고 사과하자
꼭 안아준 오월어머니"(중앙선데이) 등
언론보도의 제목이 눈길을 끈다.
이런 기사를 접하면서 과연 5·18 유족들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의 사과를
진정으로 받아들였는가?
5·18 묘역의 전두환 대통령 기념비를 짓밟으며
"짓밟는 것도 교육"이라고 외쳤던 그 날의 분풀이는
사그러 들었는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용서는 피해자가 하는 것이란 인생살이를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어 보인다.
전두환 대통령은 손자 전우원의 주장대로
과연 '5·18 학살' 주범이었던가?
전두환 대통령은 과연 발포 명령자였던가?
전두환 전 대통령 본인과 변호인들은
부인하며 수용하지 않았다.
전두환 대통령은 이제 고인(故人)이 되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5·18 사태에 대한 연계 여부는
역사를 천착하는 후학들의 몫이 되었다.
아직도 갑론을박이다.
5·18 당시 태어나지도 않았던 전우원은 무슨 근거로
"할아버지가 5·18 학살 주범"이라고 말하고 다니는가?
전우원의 언행을 보면서 '삿갓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김병연(金炳淵)이 떠올랐다.
김병연은 조선 후기 시인으로 본관은 안동이요,
호는 난고(蘭皐), 본명은 병연, 별칭은 김삿갓,
성심(性深)이요, 출생은 경기도 양주다.
아버지는 김안근(金安根). 1811년 (순조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에 의해
집안이 멸문지화를 당하였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 김성수(金聖洙)의
구원을 받아 형 병하(炳河)와 함께
황해도 곡산(谷山)으로 피신하여 숨어 지냈다.
후에 사면을 받고 과거에 응시하여
조부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글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벼슬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삿갓을 쓰고 다녀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아들 익균이 여러 차례 귀가를 권유하였으나
계속 주유천하하다가 전남 동복(同福:화순)에서 객사했다.
유해는 영월군 태백산 기슭에 있다.
1978년 후손들이 광주 무등산에 시비를 세웠고
1987년 영월에도 시비가 세워졌다.(지식백과 인용)
할아버지를 비판한 불경(不敬)에 대해
하늘 보기가 부끄럽다며 삿갓을 쓰고
평생을 반성과 후회(後悔)하며 살다가
하직한 김병연의 인생 스토리를
전우원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전두환 전 대통령의 18번이
'죽장(竹杖)에 삿갓 쓰고'로 시작되는
'방랑시인 김삿갓'이란 대중가요였다는
구전(口傳)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진다.
빙하(氷河)도 흐르고 역사(歷史)도 흐르니
유수(流水) 같은 세월에 철없는 인간들아,
너 가는 곳 어디메냐? 가련하고 가련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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