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트롯
2019.5.7.
석야 신웅순
산모롱이를 돌고 공동묘지를 넘고 먼 신작로길을 가야한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학굣길이다. 맨날 보는 것이 산이었고 맨날 보는 것이 하늘이었다.
학교를 오가면서 노래를 불렀다. ‘방랑시인 김삿갓’, ‘백마야 울지마라’ 같은 노래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이런 트로트 노래에 익숙해져 있었다. 젊어선 팝송에 열광했고 서른 들어선 클래식이 좋았다. 사십대엔 판소리가 오십대엔 정가가 좋았다.
지금은 트롯이 좋다. 수구초심, 갈수록 내 고향 어린 시절이 그리워서일까.
채널을 돌렸다. 낯선 트로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엔 사람을 끄는 묘한 힘이 있었다. 한이 서려있는 것 같기도 하고 설움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한많은 대동강’ 이었던 것 같다. ‘미스트롯’이라는 프로였고 목소리의 주인공은 송가인이었다. 몇 회를 보는 동안 나는 그녀의 매력에 끌려 팬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생의 노래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끝으로 마지막 미스트롯 경선이 끝났다. 고비가 있었지만 그녀가 미스트롯 진이 될 것이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결국 그녀는 제 1 회 미스트롯 진을 차지했다. 박수를 쳐주었다. 명불허전, 판소리로 다져온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탄탄한 목소리였다.
이번 경선으로 많은 젊은이들의 트롯팬이 생겨났을 것 같다. 취향이야 다르겠지만 송가인이 그 견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내가 아직도 잃어버리지 않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번지 없는 주막’, ‘동백아가씨’ 그런 정도들이다. 반세기가 넘은 것들이다. 누가 뭐래도 그게 다시 되돌아와 고향에 온 듯 신명이 난다. 요새 나는 옛날에 불렀던 트롯을 흥얼거리며 출퇴근하고 있다. 미스트롯이 내 하루의 얼마간을 행복하게 해주고 있다. 지난날 외워서 불렀던 팝송은 다 잊었으나 더 오래된 트롯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한국 사람은 트롯옷이 몸에 잘 맞는 것 같다.
아무래도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더더욱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외할아버지도, 내 친척 형님도 6.25때 공산군에 끌려가 돌아가셨다.
6 ·25전쟁 때에 수많은 애국 지사와 저명 인사들이 쇠사슬에 묶인 채 북한에 납치되어 미아리 고개를 넘었다. 가족들은 거기에서 마지막 단장의 배웅을 해야했다.
작사가 반야월은 자신의 어린 딸을 전쟁 중 피난길에 잃어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미아리 고개에서의 이별의 주제로 가사를 썼다고 한다. 미아리 고개는 그렇게 해서 탄생되었고 그렇게 탄생된 노래는 6.25 참상의 상징이 되었다.
‘미아리 눈물 고개 님이 떠난 이별 고개’로 시작되는 이 노래는 민족 상잔의 애닯은 사연을 담은 채 지금도 향수를 달래며 불리워지고 있다.
철사줄로 손이 묶인 채 맨발로 다리를 절며 북으로 끌려갔던 남편이었다. 부인은 남편이 십년이 가도 백년이 가도 살아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으니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간주에 남편을 애타게 부르는 대사가 있어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내고 있다. 이보다 더 애닯은 사연이 지구상에는 아마 없을 듯 싶다. 오랫동안 잊을 수 없으니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분명 명곡임에는 틀림 없다.
여보 당신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세요
어린 용구는 오늘밤도 아빠를 그리다가 이제 막 잠이 들었어요
동지섣달 기나긴 밤 북풍한설 몰아칠 때 당신은 감옥살이에 얼마나 고생을 하세요
십 년이 가도 백 년이 가도 부디 살아만 돌아오세요
네 여보 여보
이 한 많은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송가인이 불러 1등을 차지했다. 절창이었다.
젊은이들도 트롯을 잘 부르는 것을 보면 우리 민족에겐 어떤 한 같은 것들이 생득적으로 타고난 것 같다. 문학도 그랬고 노래 또한 그렇고 삶 또한 그랬다. 많은 외세의 침입 탓일까.
올해가 임정 100주년이다. 일제의 만행을 생각하게 하는 해이다.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곤한다. 사람으로써 할 수 없는 못된 짓을 저지른 일본 사람들은 지구가 멸망할 때까지 반성을 해도 모자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 나는 새삼스럽게 ‘한많은 대동강’을 오가며 부르고 있다. 일본도 일본이지만 바로 고향을 앞에 두고 못가는 우리 이산 가족을 생각하면 이런 저런 생각에 눈시울이 젖는다. 어린애가 되어가는 것 같다. 그러니 내가 무슨 철이나 들겠는가.

-석야 신웅순의 서재,매월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