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등 서클 밴드에 누가 옛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찍은 날짜를 보니 1966년 1월 20일로 우리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날이었구나.
배경은 옮기기 전 경북 중고등 본관 앞.
동백나무 사이로 '아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행하는 사람'이라는 교훈도 보인다.
맨 앞줄이 우리 동기들이다.
나는 모자도 쓰지 않고 머리도 긴 걸보니 약간 삐딱한 모습니다.
그래도 한창 청운의 꿈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같이 하였을 때가 아닌가?
그 뒤로는 우리 후배들.
왼쪽에서 두 번째가 故손희찬 군으로 나와 같은 동네에 살았고,
영남대학에서 수학 후 마산 창신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었다.
어릴 적부터 신장염을 앓아 고생을 하였었고,
나와는 자전거 하이킹, 그리고 그 집에서 아마추어 무선도 들어보았지.
영남대 학생회장을 할 때 반정부 데모를 예방하기 위하여 강제로 월남 방문단으로 끌려가서
한 달간 체류 후 귀국 시 나에게 사다 준 라이터는 내 수필 어디에선가 '시계와 라이터'란 글에 나온다.
1973년 1월 초 대구 동산병원에서 유명을 달리하였다.
지금 같으면 인공신장이나 복막투석, 아니면 신장 이식도 가능하였고
이게 나의 주전공었으나 시절이 시절이라,
참고로 가수 배호와 연극배우 추송웅도 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났었다.
그 때 선친이 나대신 마지막 병상에 다녀오시고 난 후 나에게 연락을 하셨다.
인턴으로 바쁜 너에게 대구까지 내려오라.는 말은 못하였지만
임종 직전에도 친구는 선친을 알아보고는 '고맙습니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는 故강광하군으로 2012년 8월 말 정년기념식을 바로 앞두고 간암으로 별세하였다.
그 때 정년기념문집에 내 글도 실렸는데.
서울대 장례식장에서 마지막 추모 예배 후 원지동 화장장까지 따라 갔었으나
사랑의 교회 추모 동산에 재를 뿌린다는 말을 듣고 그건 볼 수가 없어 돌아서 왔다.
광하와 나의 인연은 중학교 2학 년 때 짝이 된 후로 정말 길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물론 부모님도 잘 알고 있었고
형이 청록 1대이고, 우리 중고등 41회로 얼마 전 돌아가신 역시 암으로 돌아가신 광언, 두 누나도 잘 알고 있다.
바로 밑 여동생이 청도에서 지내는 희주, 그 아래 동생이 현재 목사인 광우,
마지막 여동생 둘 중 하나는 중앙박물관의 학예관인 미혜는 좋은 전시가 있으면 나에게 한 번 씩 연락을 한다.
그 부인은 처의 친구로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만나고 있고, 그 딸과 아들, 그리고 손주 소식도 듣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