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공산당과 한국의 좌파정권
중국은 국가적인 행사 때 최고 지도자가 반드시 하는 일이 있다. 전임 최고 지도자를 경하하고 치하하는 일이다. 현 지도자 시진핑도 변함없이 그랬다. 시진핑 가계는 정치적 희생 대상이 되었다. 지도자로서 시진핑은 당시 지도자들을 대외적으로 치하했다.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은 혁명 1세대 중국 공산혁명 선두주자이고 시진핑이 9살 때 4인방에 몰려 반혁명분자로 유배생활을 했다. 그 당시 어린 시진핑의 밑바닥 생활은 비참했다. 그래도 현 지도자로서 적폐청산 같은 분열을 지양하고 정치적 통합을 강조했다. 시진핑家의 몰락한 사연을 개략적으로 언급하자면 마오(모택동)의 대약진운동 1년 만에 팽덕회를 중심으로 한 주자파(走資派:자본주의 길을 걷는 당권파)들의 비판에 마오의 정치적 권위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을 때 마오의 내연녀 강청(江淸)과 강청의 내연남 강생(康生)의 무시무시한 음모로 유소기, 등소평, 시중쉰 등의 입지를 약화시키고자 하였다.
이런 비밀공작이 강성을 통해 마오에게 보고 됐고 마오는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묘안으로 활용하여 조반유리(造反有理: 모든 이의 제기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중, 고 대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붙여 이들은 소위 홍위병이 되어 당 간부와 지식인들 문화예술계의 권위자들 집으로 몰려가 구타하고 죽이고 거리로 끌고 다니는 광란의 파티를 벌렸다. 이들은 거의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주자파(走資派)들 이었다. 베이징시 당서기 펑전, 당 중앙 판공청주임 양상쿤, 인민해방군 총참모장 뤄루이칭, 등등이었으나 주자파 제1호 인물 유소기, 2호 주은래, 3호 등소평 및 시중쉰은 지방 귀양 가거나 주은래는 마오 품속에 보호받는 처지가 되었다.
특히 저우언라이가 프랑스 유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경제발전에 대해 현실적이면서도 자본주의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오가 끌어안고 보호하고, 저우언라이(주은래)의 프랑스 유학파 동생으로 나중에 개혁·개방 정책의 설계사가 돼 현재의 중국에 빠른 경제발전을 가져다준 덩샤오핑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죽이지 않고 장시(江西)성 시골 트랙터 공장으로 귀양 보내 3년간 트랙터 부속품 나사를 깎게 하는 등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아 지금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마오가 1976년 9월9일 사망한 뒤 권력을 잡은 것은 주자파 3호 인물 등소평이었다. 주자파 1호인 류샤오치(유소기)는 지방으로 귀양 보내진 곳에서 폐렴으로 사망했고, 저우언라이(주은래)는 마오 자신보다 몇 개월 일찍 간암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현 당 총서기 시진핑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 역시 주자파의 일원으로 문화혁명 때 고초를 겪어야 했다. 시진핑이 주석이 된 것은 순전히 아버지 시중쉰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의 현대사도 피를 흘리는 광란의 역사를 안고 있었으나 지도자들은 결단코 이들의 흠집을 감추고 그들이 이뤄놓은 공적만을 치하했다. 작년 12월 18일 개혁·개방 40주년 때 시진핑도 그랬다. "마오쩌둥 동지는 중화인민공화국을 건국했고, 덩샤오핑 동지는 개혁·개방의 역사적 결단을 내렸다. 장쩌민 동지는 3개 대표 사상으로 사회주의 시장경제 목표를 제시했으며, 후진타오 동지는 과학적 발전관을 통해 전면적 소강(小康·물질적으로 안락함) 사회 건설에 이론적 창조를 이루었다." 연설을 했다.
그러나 마오는 대 약진운동기간(1958~1960)에 참새 잡이 사건으로 4천만 농민을 굶겨 죽였고 등소평은 천안문사태에서 탱크로 수천의 대학생을 깔아 죽인 잔혹한 독재자들이었다. 문화대혁명 때는 지식인, 평민, 자본가, 등 3천 만 명이 희생되었다. 마오는 중국 인민을 7000만 명을 죽게 한 인물이다 당시 우리나라 인구는 3,500만이었다. 중국의 지도자를 치하하고 찬사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정서로는 이해가 불가하다. 그러나 중국지도자들은 마오와 등소평을 존경하고 치하한다. 이런 발언이 사회 통합에 도움이 된다고 중국공산당은 믿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중국보대 백배 열악한 한국 현대사는 건국과 경제발전이라는 놀라운 여정을 거쳐 온 빛나는 발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이승만은 최빈국에서 유엔이 인정한 자유민주 정부를 세웠고 한미동맹으로 한반도 평화 환경을 만들었다. 박정희는 5~60년대 보릿고개로 대변되는 배고픔을 경제발전으로 해결하였고 열악한 환경에서 중화학공업을 키워 경제도약을 이뤘다. 공고나 상고를 졸업해도 노력하면 중산층이 될 수 있다고 희망을 주었다. 그 시대 나도 공주중학을 졸업하고 가난에 시달린 집안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방문했던 국립대전공업고등전문학교에 입학하여 농사꾼을 면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분들의 덕분에 밥을 굶지 않고 살고 있다. 지난시대 굶기를 밥 먹듯이 했던 세월을 잊게 해준 것은 현명한 지도자 덕분이다.
오늘날 위와 같은 자랑스러운 건국과 발전의 역사가 부끄러운 역사로 둔갑하여 청소년들에게 각인되고 있다. 한국좌파는 이분들에게 ‘친일’과 ‘독재’의 딱지를 붙여 집요하게 공격했다. 이제 우리국민은 분명히 인식해야할 것은 문재인 정권의 이승만- 박정희 죽이기는 북한과의 연방제로 가기 위한 거대한 역사공정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다. 자유를 삭제한 헌법 개정안과 그리고 2018년 12월 15일 국방백서에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란 문구를 삭제했다. 이런 흐름을 방치하면 해방 후 피땀 흘려 이룩한 성공의 역사가 말살되고 북한 김일성일가 3대세습의 신민(臣民)으로 살아야하는 운명이 닦아올지도 모른다.
중화인민공화국은 그들의 국부 마오의 초상화를 지금도 천안문에 걸어놓고 찬양하고 등소평의 흑묘백묘 이론으로 경제부국으로 현재의 중국을 만들었음을 자랑으로 여긴다. 그리고 중국의 국가행사 때마다 최고 지도자들은 어김없이 전임지도자들을 치하한다. 이에 반하여 한국의 좌파정권은 이승만 –박정희를 친일 프레임에 가두고 한국현대사 전체를 뒤집으려하고 김일성 무장투쟁이 민족의 정통역사라는 시각을 학생들에게 주입하려 한다. 경제를 작살내고 국민을 위한 별다른 정책도 없이 전정권이 이뤄놓은 경제의 과실을 마음대로 따먹고 흥청망청 세금금주도 정책만으로 국민을 홀리고 있다. 3류 정치권의 좌파들은 해방 후 70년은 친일과 변절자를 위한 조국이었다고 말한다. 이들의 현대사 죽이기는 실수가 아니다. 철저히 계획된 행동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제2의 건국을 하는 심정으로 위와 같은 거대한 음모에 맞서야 하며 맞설 때다.
2019년 2월 16일
율 천
첫댓글 오픈돼 공간에
정치 지역 종교가튼
자기만의 편향됀
글을 올리는 것은
합당한 처사가 아닌것같네요
토착 왜구를 살처분해야 정의로운 대한민국이다.
광활한 대국 이야기로
현혹되지 않았으면 한다.
손바닥만한 조국,한 때
단일민족이라 불렸던 민족이다.
형편좋은 사람들이
가난한 미래의 젊은사람
배려한 분위기 조성해 줄 때
율 천 선생님 올린 위의 내용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예나 제나
경제발전 일선에서 선두주자인
배우지 못한
노동자 가족들의 삶은 진행중인
대를 이은
배고픔이 다수이기 때문..
임금 착취와 부동산 투자로 배부른 사람들이 현제에 안주할 때
정치발전은 낙후하기 때문이라는
개인적 견해이다.
소중하고 지당하신 말씀에
박수를 보냅니다
그러기에
중국의 정치가 발전하고
경제가 발전 하는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경제가 발전 되어야 하는데
온 나라가 실업자 투성이고
빚더미에 앉은 사업자들이
많은 현실이 되었는데
누구의 잘못인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답답한 심정이 들게 되네요
예부터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고
부처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고하죠
남의 잘하는 건 칭찬할 줄
모르고
잘못한 것만 떠들어 대고
있는 현 대한민국 정치가
개탄 스럽습니다
좋은 역사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