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심과 마음
일본 여행 중 우연히 마주한 ‘지워지는 볼펜’은 참으로 신기했습니다.
답안을 수정할 수 있도록 연필 사용을 권장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지요.
연필은 틀린 부분을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의 유연함과 닮아있습니다.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랫말처럼,
잘못된 것은 언제든 고칠 수 있다는 연필의 장점은 매력적입니다.
삶이 연필처럼 수정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연필을 고를 때면 예쁜 외피에 눈길이 갑니다.
사각 연필, 삼각 연필 등 독특한 디자인은 소유욕을 자극하지요.
하지만 연필의 진정한 가치는 외피가 아닌 심에 있습니다.
아무리 예쁜 외피를 가진 연필이라도 심이 뭉개지거나 끊어진다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니까요.
연필과 같이, 우리도 겉모습보다는 내면이 중요합니다.
화려한 옷이나 값비싼 물건으로 치장하는 것보다,
따뜻하고, 정직하게 내면의 아름다움을 키우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지요.
삶은 완벽하지 않습니다.
실수하고, 후회하며, 때로는 길을 잃기도 합니다.
연필이 지우개로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듯, 우리의 삶도 언제든지 잘못이 있으면 바로잡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에 집착하기보다 현재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니까요.
일본에서 만난 지워지는 볼펜은 단순한 필기구를 넘어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합니다.
겉모습에 속아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고,
마음속 깊이 품은 가치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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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복> 님의 글입니다.
어릴 적, 좀 사는 집 아이들은 일제 잠자리표 연필을 썼습니다.
당시 국산은 나무 질도 좋지 않아 깎다 보면 뭉텅 쪼개지기도 했었는데
잠자리표 연필은 향나무로 만들어 향까지 났으니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중학교 때까지도 잉크를 찍어 쓰는 펜이였습니다.
잉크를 갖고 다녀야 했으니 넘어져 잉크병이 깨지기라도 하면 책이니 가방이니 온통 염색이 되곤 했죠.
역시 사는 집 아이들은 만년필을 갖고 다니기도 했죠.
그때까지는 글씨가 그리 악필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모나미 볼펜이 나오고부터 종이 위를 미끄러지는 바람에 악필이 된게 아닌가 싶은데
요즘은 그마저도 쓸 일이 적다보니 써놓고도 이게 글씨인지 뭔지.....
간혹 다큐멘터리를 보면, 후진국에서는 아직 석판을 쓰는 일도 있는데,
필기구가 많이 변하기도 했습니다. 오래 살았다는 얘기죠.
전화기도 많이 변했군요.
내가 대학교 다닐때끼자만 해도 한 동네에 전화 있는 집이 몇 집 안됐습니다.
1974년에 인제 기린고등학교에 처음 발령받아가니
전화기 옆구리 핸들을 돌린 후 수화기를 들면 교환원이 나오는 전화였었고,
1976년에 주문진으로 가니 수화기만 들면 교환원이 나오는 전화여서
"아, 거기 양양고댕이 넘어가다 이발소 집 옆골목 세번째 집좀 대줘요."하던 시절도 있었고
시외전화 신청해 놓고 두어 시간 기다리다 보면 연결이 되곤 했죠.
1978년에 삼척고등학교 가니 다이얼 전화기였습니다.
시외전화 한 번 하려면 전화기 옆에 있는 장부에 누가 어디로 몇 분간 전화했다 기록하고, 월급때 제하곤 했는데
시외전화 요금이 비쌀때라 몰래 거는 사람도 있어 0번에 자물쇠를 잠가 두기도 했었죠.
지금 생각하면 웃을 수밖에 없는 이야기지만
지방은 전화번호가 1000단위여서 그저 다이얼 네 개를 돌리면 됐었는데
촌놈 서울에 갔다 ㅇㅇ국에 ㅇㅇㅇㅇ번이라 하니
도대체 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공중전화 옆에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버튼식으로 누르는 전화로 바뀌었고,
처음 친구 노키아 핸드폰으로 전화 걸 때, 번호를 다 누른 후에 send를 몰라 묻기도 했죠.
그게 이제는 컴퓨터 한 대를 들고 다니며 전화하는 시대가 됐으니....
오래, 오래 살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