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바구니에 커피 봉다리를 집어넣은 여자
빈 병에 커피를 채우고 커피물을 끓이는 여자
커피물이 끓는 동안 손톱을 깎는 여자
쇼팽을 들으면서 발톱마저 깎는 여자
커피물을 바닥 내고 다시 물을 올리는 여자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물을 두 번 끓이는 여자
커피를 마시지 않는 저 여자
손톱을 깎으며 눈물을 보였던 여자
커피 한 봉다리로 장을 본 여자
횡단보도 앞에 서 있었던 여자
횡단보도 앞에 서서 오래 울었던 그 여자
빨리 건너지 않으면 더 오래 울게 될 거야
아직 건너지는 마 좀 더 울어야 되지 않겠어?
커피 봉다리를 들고 오래 울고 있었던 여자
이제 커피는 그만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는 여자
횡단보도 앞에 서 있는 여자
오래 서서 울게 될 여자 신호등이 될 저 여자
손톱 발톱이 마구 자랄 여자
- 시집〈칸트의 동물원〉민음사 -
〈이근화 시인〉
△ 1976년 서울 출생
△ 2004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시집 '칸트의 동물원(2006)', '차가운 잠(2012)', '내가 무엇
을 쓴다 해도(2016)', '뜨거운 입김으로 구성된 미래' 등
△ 동시집 '안녕, 외계인(2008)', '콧속의 작은 동물원(2018)'
△ 산문집 '쓰면서 이야기하는 사람(2015)'
△ 윤동주문학상(젊은작가상/2009), 김준성문학상(2010),
시와세계작품상(2011), 현대문학상, 제7회 오장환문학상
(2018), 제22회 지훈상(2024)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