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집을 꿈꾸는 사람들 : 층수와 동선
정 실장의 건축주 집짓기 진단 기록
우여곡절 끝에 도달한 인생 첫 집짓기는 긴 꼬리처럼 아쉬움을 남긴다. 이런 아쉬움을 뒤로 하고, 이제는 실수 없이 내 집을 짓겠다고 나선 이들. 건축 디자이너 정지희 실장이 인생 두 번째 집을 위한 꿈을 진단해본다.
PRESENT HOUSE
대지면적 ≫ 45m2
연면적 ≫ 165m2
건물규모 ≫ 지하 1층, 지상 3층 + 다락
주차대수 ≫ 2대
높이 ≫ 11.40m
구조 ≫ 경량목구조
구성원 ≫ 3명(부부, 자녀 1, 반려견)
CLIENT’S STORY
지안이네 아빠와의 대화
“오르내리기가 너무 번거로워요”
Q1 지금 집은 입주한 지 얼마나 되었나
2019년 3월 10일에 입주했으니, 봄이 오면 꼭 3년을 채우게 됩니다.
Q2 어떻게 집을 짓게 되었나
아이가 네 살이 되니 자연스럽게 뛰기 시작하더군요. 뉴스로 보던 층간소음의 현장이 바로 우리 집이었습니다. 한편, 퇴근 시간이 늦은 아내는 집에 오면 늘 주차 문제로 마지막 체력을 소진하곤 합니다. 주차 전쟁을 치르고 나면 집까지 한참을 걸어와야 했지요. 이런저런 고민 끝에 주택이라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싶어 집을 지었습니다.
Q3 건축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한창 장마철이 겹쳤습니다. 목조주택을 짓는 터라 행여나 자재가 젖지는 않을지 무척 마음을 졸였지요. 다락까지 포함하면 4개 층으로 되어 있다 보니 걱정이었습니다. 현장이 궁금해 일을 마치고 매일 찾아가 봤어요. CCTV를 설치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웃음). 한편으로는 집 짓는 일이 처음이다 보니, 설계 때도 지을 때도 무엇을 보고 챙겨둬야 하는지를 전혀 몰랐어요. 그렇게 입주하고 나니 눈에 보이지 않는 마감재 안쪽, 배관이나 전기 문제 등이 생기면 거의 대처가 어렵더군요. 만약 도면이나 자료를 충분히 간직하고, 또 제가 더 집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면, 지금 종종 어려움을 겪는 관리 문제의 상당 부분도 해결했을 겁니다.
Q4 주택에서 살아보니 어땠나
아이가 원없이 뛰어노는 게 가장 좋았습니다. 계절마다 집 안팎으로 놀이를 즐기는데, 그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어요. 어른도 이웃을 초대하고 저녁엔 바비큐 파티도 하며 이야기와 음식을 나누는 나날이 즐거웠습니다. 아파트의 나눠 쓰는 주차장이 아닌, 우리만의 주차장이 있다는 것도 안심이었고요. 대체로 만족스러웠습니다.
주택의 다락. 4개 층에 이르다보니 활용도가 떨어졌다.
메인 침실의 모습.
Q5 그런데 왜 새로 집을 짓고 싶어하나
3층의 부담 가장 큰 이유는 높고 번거로운 다층구조였습니다. 처음에 3개 층에 다락까지 둔 것은 아이가 크면서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나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질 때 한 개 층과 다락까지 통째로 맡겨 자유롭게 일상을 누렸으면 했습니다. 하지만, 너무 일렀던 것 같습니다. 일곱 살 남자아이인데, 아직 부모와 떨어져 있는 걸 어려워합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도 우리도 생활 동선이 거의 1~2층에 한정되고, 3층과 다락은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지요. 하지만, 주택은 관리가 필요하니까 종종 오가야 하는데,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더군요. ‘차라리 층을 낮추고 공간을 더 확보했다면 어땠을까?’, ‘우리 방 옆에 아이방을 뒀다면 보다 아이도 안심할 수 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젊다고 생각한 우리 부부도 지금 이렇게 부담스러운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점차 더 힘들어지겠지 싶었습니다.
동선의 비효율성 우리 집은 세탁실(보조주방)과 화장실이 조금 멀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드레스룸과 욕실이 부부침실인 2층에 있고, 세탁실은 1층 주방 옆에 있지요. 외출 후 지친 몸으로 돌아와 욕실에서 씻고 옷을 정리하다 보면 세탁실까지의 길이 그렇게 멀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움직였지만, 3년 차가 되니 번거로워지더군요. 수납공간이 많아도 동선의 비효율성이 크게 가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라이프스타일과 루틴에 맞춘 동선을 다시 짜보고 싶습니다.
BEFORE PLAN
주택의 수납공간 아파트에서 이사 오면서, 처음에는 가지고 있는 물건을 모두 넣어도 수납공간이 제법 넉넉했습니다. 하지만, 아파트와 주택의 라이프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필요한 물건도 의외로 달랐고, 많이 필요했습니다. 넉넉하다고 생각했던 수납공간은 금세 포화상태가 되었습니다. 맞벌이다보니 세심한 정리보다는 수납공간을 키우는 것이 오히려 편한 것 같고요. 이제 주택 생활에도 익숙해졌으니, 주택 생활에 맞춘 수납공간을 새롭게 구성해 보려고 합니다.
DESIGNER’S ANSWER
정 실장의 제안
기존 주택의 경우 타운하우스식 필지 분할이 이뤄진 부지여서 면적 자체가 좁았습니다. 여기에 다 아이가 뛰어놀 마당을 확보하기 위해 건축면적을 더 줄였던 상황이었습니다. 이는 기존 주택의 층수를 높인 원인 중 하나였지요.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확인한 정보로는 마당 활용 면적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습니다. 두 번째 집의 예상 대지는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위치하는 전원주택 단지형 부지입니다. 건축주는 층수를 줄이는 방향으로 희망하고 있어 땅에 넉넉하게 건축할 수 있는 부지를 선택했습니다. 부지는 마당 활용도를 고려해 100~150평(약 330~495m2)으로 설정했습니다. 다만, 이번에도 주차 편의를 고려해 지하주차장을 둘 수 있는 경사지로 준비했습니다. 이 땅에 해마다 달라지는 아이와 부부의 생애주기 그리고 일상 속 동선 및 수납공간의 효율화를 고려해 지안이네 두 번째 집의 도면을 그려보았습니다.
새로 작성한 도면입니다. 먼저 동선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층수를 다락 없는 2층으로 줄여 동선의 최대치를 줄였습니다. 그리고 출근과 퇴근, 탈의-샤워-세탁 동선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드레스룸, 화장실, 다용도실을 모두 1층에 두었습니다. 통상적으로는 드레스룸과 안방은 같이 움직이지만, 꼭 클리셰를 따라갈 필요는 없습니다. 2층은 아이가 아직 어려 멀지 않게 두고, 욕실에서 아이를 챙길 수 있도록 부부침실과 아이방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TIP. 도면과 기록은 꼭 남겨두세요!
아파트와 달리 주택 살이에는 스스로 관리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습니다. 흔히 집을 지을 때는 인테리어 마감재에만 집중하다가 이를 놓치곤 하지요. 챙길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본적이면서 필수적인 게 도면입니다. 종종 준공도면과 실시도면이 다른 경우도 있는데, 반드시 상세도면 전체를 종이로 받아 보관하는 것을 권합니다. 설비도면, 전기도면 등만 있어도 재공사나 보수 시 상당한 공력을 아낄 수 있습니다. 공사 중 오간 영상이나 사진, ‘밴드’ 등 SNS 기록도 지우지 않고 백업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입주 초기 하자나 문제에 있어 해결의 실마리를 복기하는 데에 유용합니다. 여기에 더해 집을 가장 잘아는 사람은 ‘집을 지은 사람들’입니다. 시공 및 건축사와 가능한 좋은 관계를 맺어두는 것은 유지관리의 든든한 아군과 자문을 두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라이프사이클 측면에서는 드레스룸을 나중에 부부침실 등으로 전용할 수 있게 규모를 넉넉히 잡았습니다. 욕실을 바로 옆에 둔 것도 이유 중 하나였지요. 지금은 부부와 아이 모두 왕성한 활동을 보일 때이기 때문에 드레스룸이라고 명명되었지만, 다용도 수납공간으로 활용이 가능합니다. 의류부터 계절용품, 비식품 일상용품 등을 모두 모아 수납하는 것이지요. 이른바 ‘집합수납’이라고 하는 개념의 연장선상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2층은 동선보다는 다용도와 가변성에 보다 초점을 맞췄습니다. 안방과 욕실, 아이방은 처음에는 이어져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씻거나 준비를 더 편리하게 도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크면 욕실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 되지요. 그때는 상황에 따라 아이방쪽이나 부부침실쪽 어느 한쪽 벽을 막아 프라이버시를 지켜줄 수 있습니다.
서재는 슬라이딩 도어와 가벽으로 구성해줬습니다. 상황에 따라 가벽을 철거해 넓은 다용도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아이방은 공부방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공부방은 아이가 커서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이 형성될 때, 드레스룸이나 아지트가 되어줄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이방은 베란다와 맞닿아 있습니다. 장시간의 학업에 지쳤을 때, 폭풍의 시기에 고민이 가득할 때. 부모님 눈에 띄지 않고 잠시 머리를 식힐 수 있는 외부공간은 아이의 생각에 깊이를 더해줄 것입니다.
AFTER PLAN
새 도면을 통해 지안이네 두 번째 집의 세 가지 목표인 ‘동선’, ‘수납’, ‘라이프사이클’이라는 이슈를 다뤄보고자 했습니다. 1) 일상 속 루틴을 되짚어 공간 동선을 이어줬고, 2) 수납공간을 크게 늘려 복합적인 성격을 부여해 융퉁성 있는 공간 활용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3) 다용도·가변 공간으로 변화하는 라이프사이클에 큰 공사 없이 대응할 수 있게 했습니다.
물론, 실제 설계에 들어가게 되면 필지의 성격이나 면적, 그 사이에도 달라지는 가족의 상황, 예산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가족과의 대화, 그리고 전문가와의 진솔한 의논입니다.
실내건축디자이너 정지희 _ ㈜공간산책
한양대학교 실내건축학과 겸임교수를 맡고 있으며 15년간 다양한 프로젝트를 통해 건축 현장경험과 인테리어 설계 경험을 쌓았다. 건축하는 인테리어 디자이너로서 목조주택 상담부터 설계, 인테리어 시공, 감리, 사후관리까지 도맡으며 고객 맞춤형 주택을 짓고자 한다. 어떠한 환경에서든 산책하듯 여유롭고 안정된 공간을 연출하며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공간을 연구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031-287-5249 | jzzhi@naver.com
구성_ 편집부
출처 월간 전원속의 내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