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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선 아래에 글을 올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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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 게시판에서 해석님은 빌게이츠와 세계 정부의 출현을 둘러싼 일련의 게시물을 올렸다. 이 글은 관련된 유투브 자료들이 불러일으키는 불확실성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다. 살아가면서 의미있는 일은 삶에서 불확실성을 줄이거나 제거하는 일이다. “세상이 코비드19를 둘러싸고 난리법석을 떠는 걸 보니 틀림없는 뭔가 있는 모양이다. 나도 같이 묻어가자.” 이것은 친구들이 다들 짜장면을 먹는다니까 “나도”를 외치는 것과 같다. 난 간짜장이 좋다.
1. 컴퓨터의 등장과 빌 게이츠
전역하고 복학하자 손으로 쓰거나 타자기로 작성했던 과거의 과제작성 방식이 서서히 컴퓨터의 문서작성기와 프린터를 이용하는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은 적응기를 필요로 한다. 적잖은 돈을 주고 286AT 컴퓨터, 이제 막 등장한 컬러 모니터, 그리고 도트 프린터를 샀다. 시스템 메모리는 4개의 뱅크에 256킬로바이트가 각각 꽂혀있었다. 그러나 나는 당시 사용 중이던 운영체제(한글 도스)가 메모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나온 최신 버전의 영문도스를 설치했다. 그때 새 운영체제는 친구가 복사해준 디스켓으로 설치했다. 새 디스켓을 드라이브에 넣고 복사하면 동일한 운영체제가 생겨났다. 처음에 나는 왜 마이크로소프트가 복사방지 장치를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사용자들 사이에서 마음대로 소프트웨어가 복사될 수 있게 허용하는지 의아해했다. 이 의문점이 내가 빌 게이츠라는 이름을 의식하게 된 계기였다. 빌 게이츠는 물건을 잘 파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많다. 그러나 빌 게이츠는 안 좋은 물건을 팔아먹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2. 코비드19와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사 전임 회장과 바이러스, 백신, 나노칩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질병으로 고생하는 제 3세계 인류에 대한 구원의 손길인가? 어쨌든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전파되는 과정은 마이크로소프트 운영체제 도스와 윈도우즈 시리즈가 확산되고 전파되는 과정과 닮았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운영체제는 도스 5.0 또는 6.0에서 윈도우즈 3.1로 버전업되었을 때, 그리고 윈도우즈NT 3.5가 등장했을 때, 마지막으로 윈도우XP에서 기업용 운영체제와 일반사용자용 운영체제가 통합되었을 때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이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는 문자기반의 운영체제(DOS)에서 그래픽 기반의 운영체제(윈도우즈)로 변화했고, 두 갈래로 분리된 운영체제를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을 거쳤다. 만약 빌 게이츠가 코비드19의 생성에 관여했다면, 코비드19는 생물학적 수단을 이용한 국가들의 통합을 위한 최초의 프로그램 1.0 버전일 가능성이 있다.
사람들은 “우리는 너의 계획을 이제 다 알고 있어.”라고 할 것이다. “우리는 너에게 속지 않아.”라고 할 것이다.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러나 대놓고 널 잡아먹겠다고 하는 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과거에도 사람들은 맥, 리눅스, 유닉스. 오에스투보다 시대에 뒤떨어지고 오류가 많았으며 보안상 허점 투성이였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를 사용했다. 이유는 하나다. 많은 사람들이 그걸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불만족스러운 면이 있어도 안전한 호환성이라는 성 안에 머물고 싶었던 것이다. 한 번 익숙해지면 사람들은 바꾸기 싫어한다는 것을 빌 게이츠는 내다봤다. 이게 빌 게이츠의 안목이었다. 그것은 창의성이나 혁신과 별 관계가 없다. 사람들은 코비드19를 사기로 치부하고 무시할 수 있다. 그리고 즉시 그들이 원하던 과거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코비드19에 인간의 의도가 실렸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러한 무시와 저항이 불가능하다는데 있다. 높은 전파력 때문에 누구든 코비드19를 타인에게 전파할 수 있는 매개자가 될 수 있다. 대부분이 윈도우를 쓰면 내가 쓰기 싫어도 쓸 수밖에 없다. 우리는 싫어도 멈출 수밖에 없다.
3. 코비드19에 5G는 왜 끼어드는가?
이동과 사람간 접촉이 줄어든 환경에서 인간의 생각과 의사는 네트워크로 몰리게 된다. 변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사회의 변화는 <있는 것>에서 출발하지 현재 <있지 않은 것>에서 시작하는 법은 없다. 미래 사회의 모습은 먼 미래에서 우리에게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게 아니다. 이미 미래 사회의 앞 부분은 현재 우리의 삶에 구현되어 있는 것이어야 한다.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모바일 기반 기술이다. 과거에 우리는 무거운 데스크탑 환경을 가졌지만 서서히 랩탑으로 이동하다가 지금은 빠른 속도로 모바일로 이동하고 있다. 이때 모바일은 미래의 앞 부분에 해당한다. 이런 흐름 속에서 코비드19를 기점으로 폭증하는 네트워크 데이터는 데이터 흐름을 먹고 사는 기업들에겐 기회가 될 것이다. 원격으로 이뤄지는 교육 방식을 구축하려면 넓은 대역폭을 가진 네트워크와 5G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5G 네트워크는 각국이 미래의 환경에서 삶을 꾸려나갈 대량의 무선 데이터 전송을 위한 기반이 되기 때문에 건강상의 위협 요인을 무시하고 나아갈 것이다. 5G는 어디에든 닿고자 하는 그리고 통제하고자 하는 목적에 부합하는 기술이다.
4. 통제권의 획득
운영체제가 컴퓨터 시스템의 자원에 대한 적절한 분배와 제어권을 갖도록 만들어진 것처럼, 코비드19는 낮은 치사량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사회 전체, 나아가 국가들의 행동을 제어하는 효과를 갖도록 고안된 바이러스다. 우리가 인체, 나무, 산과 강, 금융, 국가를 개개의 독립된 정보의 집합체 그리고 지구를 커다란 정보의 집합체라고 가정하자면, 빌 게이츠의 코비드19와 나노칩 백신 강제 접종 문제는 인간과 사물을 디지털화하려는 의도를 반영한다. 왜 디지털인가? 아날로그 정보는 복제하고 통제하기 어렵다. 복제가 어렵기 때문에 실험해보고 문제가 생길 경우 이전의 상태로 완전하게 되돌리기 어렵다. 컴퓨터는 디지털화된 정보만을 다룰 수 있다. 아날로그를 이해할 수 없다. 일단 정보가 디지털화되면 컴퓨터는 그 정보를 매우 쉽게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다. 세계를 한 손에 담을 수 있다. 이것은 통제를 통한 힘의 행사에 있어 강력한 유혹일 수 있다.
우리의 건강정보, 운전면허, 여권, 사회보장, 그리고 금융 정보들이 들어있는 인터넷에 연결된 나노칩은 그 표면엔 <안전과 편리>을 내 걸고 있고 속으로는 <통제와 지배>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5. 통제권 획득의 목적
많은 유투버들이 의심하고 있는 지점에 이산화탄소와 지구 환경변화가 있다. 자연 상태에서 발생할 수 있는 량을 넘어선 인간과 인간의 활동에 의한 과도한 이산화탄소의 배출은 지구에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빌 게이츠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에서 인간을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즉, 이산화탄소량의 증가와 인구 증가는 비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를 대하는 방식은 이 문제를 대하는 사람의 가치관과 철학에 의해 결정된다. 가령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사람 한 명이 없어지면 얼마만큼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줄어들까? 적은 양이 아니네. 그럼 인구를 현재의 50% 수준으로 줄이고 지속적으로 인간 생산량을 억제한다면?”
<인구증가 -->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증가 --> 지구기온 상승 --> 남극과 북극의 기온상승 --> 해수면 상승과 자연재해 및 생물학적 위험 증가 --> 식량생산량의 감소 --> 인구감소>라는 결과가 나온다. 인구증가세가 유지된다면 이 과정은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지구의 인구는 산업혁명 이후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기간 만큼의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지 않고 있고, 실질적으로 선진산업사회에서 인구의 고령화가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의학 기술의 발달과 대규모 전쟁의 부재로 인해 죽어야 할 인간들이 이전보다 줄어들었다는 점이 인구증가의 실상이다. 이것은 한 배(지구)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어서 모두 죽게 될 상황과 비슷하다. 이것을 생각하는 데는 약간의 윤리적 유연성이 요구된다. 나는 이것에 <비윤리적>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간단하게 마감하는 것이 이 문제를 설명하는데 있어 적절한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옳고 그름을 넘어서는 어떤 측면을 내포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6. 게임과 현실
인간은 항상 해야할 일(신념)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할 수 있다(능력)는 이유만으로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신념이나 사명과 거리가 멀다. 이것은 게임을 할 때 발생하는 어떤 현상과 닮았다.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을 시작하면 게임 실행자(나)를 제외한 주변 전체(대상)는 검은 영역으로 뒤덮여있다. 그러나 게임 실행자가 아무런 지향점없이 어떤 방향으로든 이동을 시작하면 검은 미지의 영역은 밝아지며 정보를 드러낸다. 그리고 밝아진 영역은 내가 “아는” 영역이 되고 “파악”된 영역이 된다. 그러나 이 파악된 영역이 가진 제한된 정보는 다음에 내가 이동할 때 무작위성을 감소시킨다. 즉, 게임 참여자는 제한된 정보를 이용해서 이제는 “어디로 가야할지” 또는 “무엇을 해야할지”에 관한 이전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불충분한 입장이나 조건을 갖게 된다.
이런 반복된 움직임과 획득된 정보와 자원으로 인해 게임 참여자는 어디서 무엇을 해야할지 모르던 최초의 캄캄한 상황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상황속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게임은 이렇게 계속 진행되어 건물을 짓고 무기를 생산한다. 그리고 적과의 조우가 시작된다. 예측할 수 없는 다양한 전술에 의해 공격과 방어 그리고 보복공격이 이뤄진다. 그리고 종국에는 승패가 갈린다. 이때 컴퓨터상에서 이뤄지는 게임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 그것은 게임이 시작될 때 내가 어떤 전략을 들고 나와도 그 전략을 적용하거나 고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다음에 어떤 상황이 내게 주어질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세워진 전략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것은 단순한 고집에 불과하다. 내게 주어진 조건과 정보 그리고 나에게 접근하는 상대의 대응 방식에 따라 그때그때 나는 적절한 전술을 적용할 수밖에 없다. 즉, 게임은 수많은 연속적인 전술의 적용 과정이다. 이때 벌어지는 모든 상황은 이전의 상황이 게임 참여자에게 강요하는 어떤 상황들의 연속에 가깝다.
7. 통제를 벗어나는 지점의 발생
아이를 낳는다. 그 아이가 계속 성장한다. 그러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그 아이는 더 이상 부모의 지시나 명령 또는 권고를 요구하지 않게 된다. 내가 만든 것이 내 통제를 벗어나 지 마음대로 하려는 어떤 지점이 발생한다. 부모는 무작정 믿고 따르던 존재에서 의심하고 회의하는 대상으로 바뀌어간다. 같은 방식으로 인공지능 로봇이 있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우리가 만든 인공지능도 우리가 만든 아이들처럼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세계 속에서 결정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 기회를 사용할 것이다. 생각을 통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우리 자신조차도 의식과 생각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존재다. 십 분 뒤에 자신에게 어떤 생각이 떠오를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생각하고자’ 의도할 수 있으나 우리는 종종 ‘생각하게 되어지는’ 그런 존재다. 생각에 맡겨진 존재다. 그땐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나를 이끈다. 이때 떠오르는 모든 생각은 지금의 내 의지가 아니라 과거에 내가 처해있던 상황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들이다.
8. 가능한 것은 실체화된다
게임 속에서 내가 찾은 자원이나 무기들은 의지가 없는 무생물이다. 그러나 그것들조차도 내가 획득했을 때 그것들이 <할 수 있는 것> 때문에 나는 특정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탱크를 만들거나 획득하게 되면 탱크를 사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술을 만들어내게 되고 내가 핵무기를 손에 넣으면 그것으로 인해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내가 가진 자원을 재배치하게 된다. 이때 내가 내린 결정은 애초에 내가 가지고 있던 어떤 입장이 아니다. 사실 내가 내린 결정은 내가 아니라 탱크와 핵무기가 내린 결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빌 게이츠가 어떤 행동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결정의 배후엔 어릴 적부터 가져온 인류를 위한 원대한 계획 같은 게 아니라, <그가 가진 것> 그래서 <그가 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스스로 그 길을 찾아가는 것일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생각에 분노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엔 가치판단이 적용되지 않는 지점이 있을 수도 있다.
사과나무에 열린 열매는 누구 입에 들어가려고 매달려있는 건 아니지만, 사과는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게 되어 있다. 사과와 사람의 입 사이에 길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사과는 이동하게 되어 있다. 만약 사과의 번식을 도와 줄 사람과 짐승이 없어진다면, 사과는 자신의 씨앗을 옮겨줄 새로운 방법을 찾을 것이다. 이때 사과에게 생각하는 머리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에게 있어 길은 빨리 형성되고 사과에게 있어 길은 좀 더 느리게 형성될 뿐이다. 할 수 있는 것은 구체화되는 경향이 있다. 거기엔 가치판단이 적용되지 않는다. 사람이 사과를 먹는 것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니다.
9. 표준화와 통일성에 대한 요구
사람마다 식성이 다르다. 그래서 식당에 가면 여러 종류의 음식이 주문 목록에 오른다. 만약 열 명이 다섯 가지의 음식을 주문한다면 어떻겠는가? 손님의 규모로는 적지 않으나 조리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상당히 까다로운 주문이다. 거기다가 누구는 “저기요... 근데 김밥에 햄 빼주세요.” 라고 하고 또 누구는 “라면에 계란 넣지 말고 파를 좀 더 넣어주세요.”라고 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모든 손님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조리된 단 한 가지 음식을 주문하는 환경을 가장 선호할 것이다. 바로 관리자에게 있어 표준화와 통일성에 대한 요구가 가지는 이점이다. 따라서 누군가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자 한다면 그는 시스템의 세부 구성요소에 대한 통일성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구성 요소들에게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왜 니 마음대로 통합이냐? 국민연금 들래 말래 물어보지 않고, 군대 갈래 말래 물어보지 않는다.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이다. 분노하는 사람들이 요구하는 것은 <내 일상의 자유를 뺏지 말라>는 것이고 빼앗는 놈에게 있어 그 일상은 어차피 지속가능하지 않을 일상이다.
주인이 손님들에게 주문할 음식의 통일성을 요구할 때, 그 목적은 주인의 조리 편의성에 있지 손님의 다양한 입맛을 민주적인 방식으로 충족시키는데 있지 않을 것이다. 빌 케이츠에게 조리 편의성이란 다수의 인간들에 대한 통제의 편의성과 같다. 그리고 그 통제의 편의성을 얻기 위해서는 적용될 기술과 수단의 통일성과 강제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통일성과 강제성이 뒷받침되려면 정부에 의한 법적 강제성이 필요하다. 그리고 법안이 의회를 통과하려면 코비드19는 전지구적 규모여야 하고 대다수의 인간들에게 공포감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은 공포감이 충분히 무르익지 않았다. 풋사과 단계다. 이것은 현재의 코비드19가 이 구조조정을 위한 프로그램의 초기 버전일 것임을 암시한다. 2.0 그리고 3.0이 계속 등장할 수 있다.
10. 맺음말
내가 처음 문서작성기를 사용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빌 게이츠는 여전히 매력적인 구석이 없는 사람이었다. 아까운 시간을 낭비한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들에게 미래를 제시할 땐 미래의 어떤 요소에 이질감을 내포하지 않는 방식으로 제시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다르다는 것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현재 그는 공공의 적 1호로 부상했다. 어쨌든 그의 주장이 실현되려면 최소한 미시건주에서 시작된 저항이 자연발생적이지 않아야 하고 주 방위군과의 충돌이 미 전역으로 확산된다는 조건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위기가 증폭되지 않는다면 코비드19 국면은 지속될 수 없다. 사람들에게 강제하려는 것을 사람들이 한사코 거부한다면 사람들이 거부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없도록 상황을 망가뜨리는 방법이 있다. 수습되는가 더 망가지는가를 주목하면 된다. 더 망가진다면 빌 게이츠는 옆길로 너무 깊이 들어간 것이다.
나는 더 많은 나무를 심고 인간이 잉여를 위해 경쟁하지 않는 사회 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더 나은 대안이라 여긴다. 자본주의는 거대한 낭비다. 자본주의는 환경과 양립할 수 없다.
첫댓글 누구나 자신의 두뇌로 사고하고 판단하지요
그런데 대부분 평균이상의 지적능력이 있는분들은
자신의 사고로 받아들이기 힘든 정보는
알아보려 하지도 않고 자신의 기존정보체계안에서 판단하고 결정을 내리곤 하지요
이는 자신의 사고가 자신의 인식의 확장을 막는
장애로 기능하게 되겠지요
부디 자신의 사고의 한계를 깨뜨리는 계기가 되길
소망합니다
코비드-19와 5G에 대한 주장을 하는 사람은 캐나다의 저널 리스트인 벤자민 폴포트 입니다
그의 인터넷 신문은 세계유명인들도 구독할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배우섭
애플 스티브 잡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라" 했지만 췌장암 때문에
과거 그렇게 여유롭지 않은 생각에 반성을 하지요, 대단한 성공 말고 자신 건강과 이웃을 사랑하며...
마소 빌 게이츠도 성공 했고 사회 사업 등 다방면에서 능력을 보여주죠!
사실 스티브 잡스가 잉여 즉 천문학적 돈을 벌었으나 죽음으로 도루묵이란 겁니다
자본주의는 낭비가 아니라 유산이죠! 유산을 더 돈버는데 쓰느냐
땅을 사서 나무를 심고 땅을 자연에 기부하느냐 등등 선택입니다
빌 게이츠는 영리해서 기부 사업도 잘 한다고 봅니다
결국 그도 죽겠지요
그렇다고 환경과 자본주의가 양립 못 하는 구조는 아니죠 나무를 베고 다시 나무를 심고
싸이클만 잘 맞추면 자본주의도 욕망을 갖추면서 현명한 자본주의도 될 수 있죠
이미 그렇게 가고 있고 가는 기업도 많죠!
감사합니다.
깔끔합니다. 머리가 맑아지는것 같습니다
탁류님 통찰력에 놀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지구에서 누구보다 돈과 힘을 가지고, 권력대리인까지 세우고 통제하고 지배하는 그들이 더 완벽한 통제와 지배를 꾀하는 이유가 단지 <가지고 있는 힘,능력>을 게임하듯이 사용하는 것이라니...인간이 무섭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