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초등 친구들과 함께
오랜 가뭄과 때 이른 무더위가 찾아온 오월 하순이다. 이번 주말부터 새롭게 단장하는 아파트 리모델링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엊그제 금요일 늦은 시각까지 도배와 장판이 깔리면서 어수선한 집안 내부가 제 모습을 찾아간다. 내일모레 주방의 싱크대와 안방에 붙박이장이 설치되면 시공업자가 하는 일은 종료된다. 이후 정수기와 통신회사 기사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열흘 남짓 컴퓨터의 장애와 공사 현장 거실이라 내가 생활 속 남겨 가는 글쓰기는 창원대학 앞 피시방을 이용해야 했다. 도배와 장판이 깔린 어제부터 거실은 부분적으로 사용이 가능해지고, 아들 녀석이 노트북을 마련해주어 바깥의 피시방은 찾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새벽에 사림동 임시 거처 원룸을 나와 아파트로 돌아와 노트북을 열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됨이 나에게 다행이다.
오월 셋째 일요일 아침나절은 마무리가 되어 가는 아파트 리모델링 현장에 머물렀는데 같은 단지에 초등 친구가 살아 마음이 든든하다. 공직에서 퇴직 후 꽃을 가꾸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친구를 찾아가니, 우리 집을 직접 방문해주어 내가 새로 마련한 노트북 자판 환경에 익숙하지 않음이 해결되었다. 친구는 먼저 리모델링을 한 경험을 공유하면서 우리 집 개보수에 큰 도움을 주었다.
오후에는 임시 거처로 가서 아내의 짐꾼 역할을 수행했다. 원룸에 세탁기가 비치되어 있으나 용량이 적고 빨래 건조가 여의치 못해 불편해 창원대학 앞 셀프빨래방을 이용하고 있다. 대학 앞 상가에 예전에 볼 수 없던 새로운 업종이 셀프빨래방이었다. 리모델링을 하면서 집을 비우고 임시 거처 원룸을 정해 지내면서 몇 차례 이용했던 셀프빨래방은 독신 1인 남성에게 편리할 듯했다.
저녁에는 모처럼 고향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날이었다, 아련한 추억이 서린 모교는 폐교되었지만 58 개띠 초등학교 친구들은 봄이면 고향에서 얼굴을 봤고 가을이면 관광버스를 전세 내어 소풍을 다녀오기도 했다. 마산과 창원에 사는 초등 친구 열댓 명이 지역 분회 형식으로 격월로 자리를 가져온 지 오래되었다. 몇 해 전에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다만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했다.
셀프빨래방을 다녀와 저녁에 초등 친구들을 만나는 식당이 마침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친구의 자제가 운영하는 사림동 고깃집이었다. 임시 거처로 지내는 원룸과도 가까워 약속 시간보다 일찍 창원의 집을 둘러보고 주변 골목길을 거닐었다. 이맘때 풍성한 꽃을 피워 계절의 여왕다운 임무를 수행한 장미는 절정을 지나 하강하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한여름에 보는 접시꽃이 피어났다.
친구들을 만날 식당에는 내가 제일 먼저 도착했다. 이어 원근에서 모여드는 남녀 친구들이 속속 도착했다. 우리는 코로나가 덮쳐 사회적 거리두기로 얼굴을 못 본 지가 3년이나 되었다. 그새 한 친구는 자제의 혼사가 있어도 코로나가 극성을 부릴 때라 예식장을 찾아 축하해주지 못하고 넘어갔다. 암을 수술하고 요양과 투병하는 한 친구에게 손을 맞잡아주고 건강을 지키길 바랐다.
나는 수저를 들기에 앞서 불판의 고기를 뒤집어 잘라 안주를 마련하는데 솔선했다. 한 친구가 퇴직 후 근황을 물어와 현직보다 바쁘게 보낸다고 했다. 삼겹살과 막창을 구워 왁자하게 얘기를 나누면서 잔을 채워 비웠다. 친구들은 제 위치에서 직분을 다하고 있었다. 그새 한 친구는 안타깝게도 세상을 하직했고, 이번 지방 선거에 무투표로 도의원에 당선된다는 친구의 소식도 들렸다.
초등 친구들과 손을 맞잡고 어깨를 부대끼며 두어 시간 보내고 거리로 나가니 날이 어둑했다, 술을 들지 않은 친구는 운전대를 잡았으나 대리운전 기사를 부른 친구도 있었다. 고향 마을 아랫동네 사는 한 친구는 나를 붙잡고 술을 한 잔 더 하자고 해 자리를 연장전에 들어야 했다. 셋은 어지럽던 자리를 정리하고 조촐하게 새로 잔을 채워 나누면서 서로를 위로 격려하고 일어섰다. 22.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