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찬송가 288장 (구 204장) / 사도행전 26 : 24 - 32
*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하겠습니다.
* 찬송가 288장을 함께 부르겠습니다.
* 하나님 말씀은 사도행전 26장 24절 – 32절입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24.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25.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26.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27.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28.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29.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30.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아멘!
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의 자기 행복선언입니다. 바울의 이 행복선언이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한 말이 아닙니다. 바울은 쇠사슬에 매인 죄인의 몸으로 이 선언을 했습니다. 바울은 포박된 몸으로 재판하는 왕 앞에 서서 “당신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바울에게 아그립바 왕이 “바울아 너의 많은 학문이 너로 미치게 했구나.” 바울을 미친 사람 취급을 하며 모욕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왕 앞에 태연자약하며 나는 그 누구보다 지금 왕의 자리에 앉은 당신보다 더 행복하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당신들도 나처럼 되라" 고 외칩니다. 그 사람들처럼 못된 자신의 신세를 한스러워 하거나 불행해 하기는커녕 자신이 하나님 앞에 복 받은 자 임을 깨닫고 "당신들도 모두 나와 같이 되라.” 고 말합니다.
재판정에 서 있는 지금 바울의 몰골을 상상해 보십시다. 두해 동안이나 감옥에 갇혀있었으니 얼굴은 창백해 있을 테고, 그동안 부실한 음식으로 연명했으니 얼굴엔 영양실조가 완연했을 터이고 자유로이 움직일 수 없었으니 건강상태가 좋을 리 만무했습니다. 의복은 남루했고 형색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속인들의 눈으로 보면 쉽게 업신여길만도 했고 쉽게 동정할 만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사도 바울은 "나는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께 복을 받은 행복자다. 나는 복음을 받았고 나는 복음을 전하며 산다. 이것은 금생과 내생에 영광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행복과 영광을 자신만만하게 지금 아그립바 왕을 향하여 선언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시편에서 이런 고백을 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 말은 하나님과 누리는 행복으로 만족하니 더 이상 소원이 없다는 말입니다. 묻습니다. 여러분은 행복하십니까? 바라기는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당신들도 다 나처럼 행복하시오. 다 나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시오.” 라고 고백하며 선포하시기를 바랍니다.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선 이 말은 나 바울처럼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되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전 바울은 흑암의 권세 아래 있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 잡아 죽이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요 천직인 줄로 알고 살았습니다. 회당마다 찾아다니며 박해의 칼을 휘둘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외국의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내 죽이기 위해 다메섹 언덕을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살아 계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 그는 하나님을 모독하다가 죽은 천벌 받은 사람인줄 알았는데 그가 바로 하나님이셨고, 하나님의 아들이셨구나. 이 땅에 와 내 죄를 걸머지고 돌아가셨구나. 그분은 살아나셨구나. 지금도 살아 계시는 구나. 선악 간에 우리를 심판하러 오실 심판주가 되시는 구나.”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주여 뉘시오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여기서 사도 바울의 인생사에 대 전환이 일어나는 회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깨달았습니다. “아 하나님을 섬긴다는게 하나님을 핍박하는 일이 되었구나. 저들이 내 형제 자매인줄 알지 못하고 누명을 씌워 감옥에 가두었고 채찍질하여 죽였구나. 나는 그분이 내 아버지인줄 알지 못하고 채찍 휘둘러 때린 불효자식이었구나. 나는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내 하는 짓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죄악 덩어리였구나.” 땅을 치며 울었습니다. 음식 한 톨,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하고 자복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났고 성령을 받았습니다. 전혀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분연히 일어났습니다. 외쳤습니다. 핍박자가 변하여 전도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원수가 변하여 예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를 박해하던 자가 변하여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옥에 갇히고 채찍에 맞으며 피 흘리는 일을 기쁨으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담대히 외칠 수가 있었습니다. “왕이여 당신도 나처럼 예수 믿고 변화 받아 새사람이 되시오. 총독이여 당신도 예수 믿고 새사람이 되시오.” 라고 당당히 외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육체적 고통을 잊어버리고 자신을 묶고 있던 쇠사슬을 개의치 아니하고 도리어 자기를 심문하는 아그립바 대왕의 영혼의 비참함을 보고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믿는 행복을 아는 사람들의 외침이 여기에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다 나와 같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사람이 되시오!” 라고 선포합시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향하여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사람"(행 17:6) 변사 더둘로는 바울을 송사하여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다 소요케 하는 자" 라고 악평했습니다.(행 24:5) 당시 세상을 휩쓸었던 페스트 전염병보다 더 무서운 위력을 가졌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반대자들은 천하를 어지럽히고 소요케 하는 염병처럼 그를 두려워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그가 전한 복음 앞에 생명의 환희와 감격을 누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렇듯 바울이라는 존재는 멸망자들에겐 염병같이 무서운 것이었고 구원얻은 자녀들에겐 생명에 이르는 영생에 이르는 향취가 되었던 것입니다.
바울의 힘은 곧 살아 계신 예수의 힘이었습니다. 바울의 권세는 곧 하늘의 권세였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그의 권능은 곧 성령의 권능이었습니다. “다 나와 같이 되기를” - 이 말은 “왕이여, 썩을 땅의 권세가 아닌 다른 권세가 있는 것을 아십시오. 멸망할 세상의 힘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하는 힘을 알기를 원하오.” 이 말이 아니겠습니까? 더 나아가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이 말은 나처럼 진정한 자유인이 되라는 말입니다. 비록 왕이라 하나 저에게서 금관을 벗겨 버리고 나면 아무것도 남을 것이 없는 허깨비에 불과했습니다. 겉은 화려하나 속은 비어 있었고 남루하기 짝이 없는 속빈 강정이었습니다. 죄악과 탐욕의 노예였고 정욕의 포로가 되어 살았습니다. 몸은 자유했으나 저의 영혼은 사슬에 묶여있는 가련한 인간이었습니다. 때문에 바울은 아그립바 왕을 향하여 "당신도 이처럼 결박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즉 왕관을 쓴 노예가 되기보다는 무관의 자유인이 되고 죄악의 포로에서 벗어나 세상 그 무엇에도 매이지 않는 영혼의 자유자가 되란 말입니다.
그리고 “다 나와 같이 되기를” - 이 말은 나처럼 전도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구원받은 간증 때문에 바울은 미쳤다는 얘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구나. 너의 많은 학문이 너로 하여금 미치게 하였구나." 한 마디로 미친 소리 하지 말라는 거지요. 사실 바울은 한때 학문에 유대 종교에 미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학문이 아니라 유대 종교가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미쳐 있었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 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아멘! 아멘! 믿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치관이 다르고, 인생의 목적이 다르고, 사는 방법이 다르고, 종착점이 다른 과연 별난 사람들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세상이 가질 수 없는 높은 자존감이 있습니다. 참으로 고상한 신분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기를 꺾을 수 없고, 세상의 환란이 그들을 낙심시킬 수 없으며, 세상의 감옥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자유를 결박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행복 선언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다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 “다 나와 같이 행복하기를 원한다.” 고 행복선언이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주기도문으로 간구하고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