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막부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1192년에 창설한 일본 최초의 막부.
요리토모가 정이대장군(쇼군)에 임명된 1192년이 가마쿠라 막부의 시작이지만, 그 이전부터 요리토모의 통치 기구는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에 막부의 실질적인 성립은 1185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요리토모의 직계는 미나모토노 사네토모에서 단절되었고, 그 이후부터는 호조 가문의 싯켄이 막부의 실세로 등극했다. 참고로 호조씨는 타이라 중 간무 헤이시였다. 때문에 무로마치 막부나 에도 막부를 종종 쇼군의 성씨에 따른 아시카가 막부, 도쿠가와 막부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가마쿠라 막부를 미나모토 막부라고 부르는 경우는 별로 없다.
2. 시대상
가마쿠라 시대 참조.
3. 정이대장군의 역사
Minamoto no Yori...
가마쿠라 막부의 초대 쇼군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초상화.
일본 사설에 의하면, 가마쿠라 막부는 1192년에 미나모토노 요리토모가 쇼군으로 임관되어 시작되었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요리토모의 권력·통치 기구는 그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어, 현재는 막부의 실질적인 성립이 1185년에 이루어졌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또, 일본에서 첫 번째 무사 정권이라고 여겨진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헤이케 정권의 뒤를 잇는 무사 정권으로 간주되고 있다.
요리토모가 무사 정권의 성립을 명확하게 선언한 것이 아닌 것도 있어, 후세의 연구가들 사이에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시기에 대하여 논의를 했다. 막부의 성립 시기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그 이유로는 가마쿠라 막부가 그 무사 정권으로서의 체제를 정돈하기까지 몇 단계를 거치기 때문이었다. 우선 1180년에 가마쿠라의 대창향(大倉郷)에 요리토모의 저택이 되는 오쿠라 고쇼(大倉御所)가 건설되었고, 또 막부 통치 기구의 원형이라고도 해야 할 사무라이도코로(侍所, 시소)가 설치되어 무사 정권의 확립이 형성되었다. 그리고 곤다이나곤(權大納言, 권대납언) 겸 우근위대장(右近衛大将)을 맡고, 공경에 참석하여 장원 영주의 정무 기관인 만도코로(政所, 정소) 설치의 허가를 얻은 것으로, 말하자면 통치 기구로서의 합법성을 띠게 되어, 정이대장군의 작위가 하사(1192년) 되었다. 특히 단노우라 전투(1185년)로 헤이케 일족을 멸족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이렇게 하여 가마쿠라 막부는 가마쿠라 시대를 통해서 명실 공히 무사 정권으로서 성립하게 되었다. 초기 막부는 슈고(수호)의 설치로 내부 치안 유지를 담당했는데, 그 지배 권역은 동일본에 한정되었으며 여전히 서일본은 교토 조정의 영향력이 더욱 강했다. 하지만 점차 영향력 범위를 확대하였고, 특히 조큐의 난과 원나라의 침입 등의 국란을 통해 전국적인 지배권을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가마쿠라 막부는 1333년에 가마쿠라에 웅거하며 싯켄(집권)직을 독점하던 호조씨가 고다이고 덴노에 의해 사주된 아시카가 다카우지, 구스노키 마사시게, 닛타 요시사다의 연합군에 멸망하면서 그 막을 내렸다. 그 이전의 약 150년의 무사 정권 시대를 가마쿠라 시대라고 부른다. 가마쿠라의 막부는 148년만에 단절되었지만 막부라고 하는 무사 정권의 형태는, 후에 무로마치 막부와 에도 막부로 그대로 계승되어 발전한다.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의 자손이 3대째로 끊겼기 때문에, 이후에는 요리토모의 부인 호조 마사코의 친정인 호조씨가 싯켄(執權, 한국어로 읽으면 집권)으로 실권을 장악했다. 6대 이후에는 천황가에서 황자(친왕)를 데려다가 명목상의 쇼군으로 앉히기도 했다.
싯켄과 함께 점점 명목상의 힘으로 약화되던 가마쿠라 막부는 고다이고 덴노가 끌어들인 닛타 요시사다(新田義貞)-아시카가 다카우지-키타바타케 아키이에 등의 연합군에 의해 1333년 멸망하면서 겐무 신정을 거쳐 난보쿠쵸 시대와 무로마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