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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진짜 거지같아. ”
내가 돌아갔으면 하는 그 당시의 난 변함없이 입버릇처럼 달고다니던 할 줄 아는 단 한가지 욕을 줄기차게 곱씹고 있었다. 거지같다. 거지같은 현실, 어차피 여기서 한국어로 줄창 욕해봤자 별로 알아듣는 사람은 없을거라고 생각된다. 쌩판 모르는 사람들과 푸른 눈동자가 생기차게 반짝이는 사람들뿐이니까, 그리고 지금 상황은 정말 거지같았으니까.
인턴쉽도 졸업하면 하나의 스펙이 된다며, 네 경력과 스펙은 네 스스로 챙겨야하는 시대라며 삼촌 등살에 떠밀려, 같이 신청해보자는 소진이 칭얼거림과 보챔에 ‘ 영어도 제대로 못하는데 내가 될 리가 없지 ’ 라는 생각에 울며 겨자먹기로 해외 인턴쉽 신청했는데 덜컥 붙어버리는 바람에 오긴 왔지만 역시 아직 나에겐 타국생활은 무리였던 걸까‥.
막막하다. 이 막연함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잡고 길을 물어보는게 두렵고 무섭고 몰라서가 아니였다. 영어를 모국어 말하듯 자유자재로 구사 할 수는 없지만 어느정도의 회화는 가능하다. 하지만 뭘 물어봐야 할지를 모르겠다. 길? 길이라면‥, 거지같게도 난 본사로 올라가기 전, 인턴쉽 동료들과 임시로 일주일간 머물게 될 호텔이름 조차도 모르고 있었다. 동료들이 신이나서 쇼핑가고 놀러나갈때, 소진이한테 마지못해 끌려다니느라 근처 대형상점이름들 조차 제대로 보지 않았다. 게다가 난, 거지같은 길치. 경찰에 신고해서 도움을 받는편이 빠를려나‥
“ 망할…. ”
길도 제대로 모르면서 역시 따라나오는게 아니였어, 그냥 호텔에 있을껄‥. 모두 내가 사라진거 알고 있을까‥? 아니면, 화려한 네온사인과 화려한 사람들 사이에서 기분이 한껏 들 떠, 나 하나 사라진것쯤이야 모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게 나쁘다는게 아니다. 가장 나쁜건 길 잃어버리고도 찾지 못하는 나겠지‥. 괜히 따라나와서 모두에게 민폐나 끼치고 있다니, 한숨섞인 작은 목소리를 끄집어내곤 내 주위를 활기차고 부산스럽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어릴적 엄마가, 엄마 손을 놓쳤을 땐 놓친 그곳에서 꼼짝말고 엄마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이 나이 먹어서 길 잃어버리고 생각하는게 그런거라니 한심스럽지만, 엄마 말씀대로 동료들을 놓쳐버린 북적이는 이 곳에서 막연히 서 있자니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사람들 앞길을 보란듯이 막고 있는 꼴이였다. 내 시야에 붐비는 인파속에서 저 멀리 낯익은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
“ …한소진! 소진아! ”
소진이‥! 찾았다. 그저 낯익은 뒷모습 하나에도 가슴이 크게 두근거려, 양 어깨에 치이는 사람들에게 연신 고개를 작게 숙이고는 계속 소진이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서 뒷모습을 쫓았지만 소진이는 소란스러움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묻혀 들리지 않는것인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앞만보고 계속 걸어갔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소진이를 놓쳐버리고 말아‥.
그래서 였을까? 그 당시의, 그 때의 내가 소진이를 놓쳐버린다는 생각에, 호텔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렇게 크게 심장이 두근거렸을까. 전과는 다른 두근거림, 그것도 아주아주 큰 두근거림. 기분 나쁘지 않은 두근거림‥, 그것도 아니라면‥ 그 사람과 만나게 될 것이란걸 심장은 알고 있었던 걸까‥.
“ 앗‥! ”
소진이 뒷모습만 보며 쫓아가다가 앞은 제대로 살피지 못해 마주오던 사람과 제대로 부딪쳐 버렸다. 그 사람 어깨쪽에 보기좋게 이마를 박고 눈도 못뜰만큼 얼얼히 아파오는 이마를 두 손바닥으로 감싼 채, 외마디 신음소리만이 입을 맴돌았다. 이마 터지는줄 알았다. 내 머리뼈가 조금만 약했더라면 분명 터졌을 것이다. 거지같아‥. 고통에 신음하고 있을 때, 문득 소진이와 내가 이 만큼 아프다면 부딪친 사람 또한 아프다는 걸 뒤늦게 생각해 내고는 이마에 붙였던 손을 떼고 앞 사람을 향해 고개를 90도 각도로 숙인 채 목소리를 끄집어 내,
“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제가 앞을 똑바로 봤어야 하는데! 아니, 이 말이 아닌데, 영어! 영어로! 아 그러니까 음‥ ”
당황해서 인지 뭐라고 해야할지 기억이 안난다. 회화에는 제법 능통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거지같은 내 착각이였었나 보다. 그 쉬운 미안하다는 말 조차도 못꺼내서 버벅거리고 있을 때 쯤, 그래 그 때쯤이였을것이다. 내가 그 사람이 나와 부딪친 어깨쪽과 옷 구석구석에 흩뿌린듯 묻은 비린내나는 얼룩을 본 것이‥, 그때쯤이였을 것라고 기억한다.
어두운 색 계열이라서 얼룩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건 분명 ‘ 피 ’ 였다. 그 사람이 나와 부딪친 어깨쪽에 가장 많은 피가 옷에 스며들어 베어 있었는데 그 피에 흠칫 놀라 아까 이마를 감쌌던 내 두손을 내려다 봤지만, 깨끗하다. 그렇다면 저 피는 나한테서 난 피가 아니라는 것인데‥.
“ 피? 피! 저랑 부딪쳐서 그래요!? 제 이마에 찔린거에요!? 어떡해, 어쩌지!, 어쩌죠!? 이를 어째야 해요!!? 119! 아니 911? ”
여지껏 살면서 난 당황하면 늘 그랬듯이 횡설수설하며 혼자 정신없이 말하고, 외국인이 알아듣지도 못할 한국어로 말하며 이마에 찔린거냐는 상식적으로 되지도 않는 말을 해대며 다친사람한테 어째야 되냐고 묻고있는 거지같은 상황이였다. 저 사람 피, 아직 많이 나고 있다. 옷에 베어있는 얼룩이 커져가는것 같이 보였다. 단순한 내 착각이 아니였다. 그 사람은 정말 계속 피가 흐르고 있는 상태였다. 일단 지혈부터‥!
매고 있던 가방을 부산스럽게 뒤져 평소엔 잘 갖고다니지도 않다가, 중학교 입학 선물로 아빠한테 받은 것이 우연히 눈에띄어 챙기게 된 손수건을 꺼내들어 그 사람의 동의도 없이 손수건으로 그 사람의 어깨쪽으로 손을 뻣으려던 찰 나‥
“ 됐으니까, 가. ”
“ …한국‥말…? ”
어딘가 묘하게 익숙한듯한 목소리가 귓가에 다가왔다. 그는 자신의 어깨쪽으로 뻗쳐오던 내 손을 가볍게 제지하고는 여전히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얼굴은 들지 않은 채, 차가운 목소리를 끄집어 냈다. 이 사람, 한국사람? 발음이나 억양, 모두가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호의를 거절당한 손이 어찌해야 바를 몰라 허공에 멍하게 떠 있었다. 이 사람은 분명 됐으니까 가라고 했다. 그 말은 필요없으니까 가라고‥, 하지만 이 사람에게서 풍겨오는 느낌에 가슴한켠이 찡하게 아리다. 그 아려옴이 어떤이유 인지는 그때의 난, 그리고 지금의 나 역시도 잘 모르겠다. 그냥 그대로 두고 가면 안될것같았다. 단순히 다친사람이라서? 아님, 한국사람인것 같아서?
그땐 소진이 뒷모습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지금은 그저 이 사람을 아프지 않게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밖엔 없었던것같다.
“ 하지만 피가 나잖아요! 같이 가줄게요. 같이 병원이라도 가요! ”
그때였다. 모자를 깊게 눌러 쓴 채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내 눈에 자기 눈을 맞추던 때가‥.
모자에 깊게 가려졌지만 가까이 있어 어느정도 보인다. 익숙한 얼굴, 하지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았던 그의 눈에 천천히 초점이 잡혀가는게 느껴졌다. 그러더니 곧 살짝 웃어‥? 웃어? 이 상황에 지금 웃음이 나? 멍해진 머릿속이 그의 입가에 미소가 사라짐과 동시에 다시 맑아졌다.
“ 됐으니까 가라고 ”
싸늘하게 식어 다시한번 되 돌아온 말. 호의를 거절당한 손을 떨어트리고 고개를 약간 내린 채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은 후‥,
“ 다친사람두고 안가요!! ”
다시 그를 올려다보며 제법 크게 소리쳤다. 내가 왜 저런 거지같은 말을 했을까. 다시 생각해보니 저때 했던 저 말이 내가 22년을 살면서 한 말중 가장 한심한 말이고, 두번째가 그 말일 것이다. ‘ 살려주세요 ’. 이 사람과 내 주위를 소란스럽게 지나치는 사람들은 지금 이 상황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관심도, 눈길도 주지않고 각자 바삐 자기 갈길을 지나고 있었다. 그리고 곧 그는 다시금 한쪽 입꼬리를 살짝 위로 올리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난 분명 가라고 했다. ”
“ 난 분명 안간다고 했어요. ”
“ …나중에 후회하지마라. 안간건 너니까 ”
이 사람 뭐라는거야 지금, 머리도 다친건가‥. 갸웃거리는 날 보며 입가에 웃음을 지우곤 재밌다는 목소리로 다시금 입을 열어,
“ 누구… 찾던거 아니였나 ”
“ …아!! ”
이런 망할, 소진이! 소진이를 잊고있었다. 거지같은 상황에 거지같게 엮어들어 거지같게 잊고있었다. 이런 거지같은‥.
하지만 소진이를 찾자고 이 사람을 두고 갈수는 없는데, 어쩌지. 안간다고 큰소리 뻥뻥 쳐놨는데 이제와서 가기도 솔직히 좀 창피했다. 어차피 다신 안볼사람이고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관계도 없는사람이지만, 그래도 두고가는건 아닌듯 싶었다. 어떡하지‥.
“ 뭐, 일단은… 가봐 ”
“ 네? ”
“ …가보라고 ”
“ …하지만 다친‥! ”
그는 멍하니 떨궜던 내 손에 쥐어져있던 손수건을 빼내더니 내가 볼 수있도록 내 앞에 살짝 들어보이고, 이내 자신의 다친 어깨쪽에 내 손수건을 대고는 무표정을 품고있는 얼굴과는 반대로 나에게 조금은 나긋히 말했다.
“ 됐지? 이제 가봐. ”
“ …하지만! ”
“ 뭐‥, 치료도 받는다고 약속하지 ”
무심하고 귀찮은듯, 그리고 뭔가 아주 큰 인심을 쓰는듯한 말투가 어지간히 거슬렸지만‥, 일단은 난 소진이를 찾는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치료받는다는 말에 그에게 그제서야 살짝 웃어보이고는 고개를 숙였다.
“ 약속이에요? 치료 잘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그럼! ”
고개를 들고, 그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어 이미 보이지도 않는 소진이 뒷모습을 찾아서 그 사람을 지나쳐 발길을 옮기려던 내 귀에, 그리고 내 마음에 깊게 와 닿은 그 사람 목소리, 그 사람의 말.
“ 앞으로 한시간. ”
‥뭐? 무슨 거지같은 말이야 이건‥, 의아한 마음에 뒤돌아봤지만 그는 이미 인파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몰려있는 인파들 틈 사이로 그의 모습을 눈으로 뒤쫓아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한시간‥? 뭐가 한시간이라는거지, 근처에 있던 시계탑을 올려다 봤다. 지금은 밤 9시 27분‥. 한시간 뒤라고 해봤자 10시 27분일것이다. 그게 뭐가 어쨌다는걸까‥. 역시 의문은 계속 커지기만 할 뿐 이렇다 할 답은 나오지 않았다. 아니, 제대로 생각하기보단 나에겐 소진이를 찾는것이 우선 이였다.
정신차리고 소진이나 찾자.
-세경말-
모든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강등되어서 재등업하는데 무려 일주일이 소요되었습니다T.T
일주일간보고싶었어요
업뎃은 목요일이나 금요일!
부끄럽지만// 업뎃쪽지는 ' 소다 ' 입니당♡
첫댓글 소다 그담내용궁금합니다
소다/ㅎ담편 기대할께요~~
소다 재밌어요~
재미있어요 담편ㄴ기대요.^^
소다///// 재밌네요!!! 둘이 처음 만났었던 때인가봐요 ㅋㅋㅋ
소다/ 담편넘궁금해용♥
소다
금요일인데 업뎃이ㅠ_ㅠ
소다! 다음편 기대할게요!
잘 읽었어요^^
유후!! 잘읽었어요!!
어...어......너무 재밌어요.........ㅠㅠㅜ!!남주 왜케 멋있지?ㅋㅋㅋㅋㅋㅋㅋ그냥 멋진남이네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추천 또 누르고 다음편으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앞으로둘이어떻게만날지기대되용ㅋㅋㅋ
재밋어용ㅎㅈㅎ
재밋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