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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뭐지, 이 인간. 먹어 보랄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왜 이러는 거야? 좀 놔봐. 나 이거 먹고 싶단 말이야.
내가 유리잔을 빼앗기 위해 안간힘을 써보지만 얄밉게도 고윤이 다른 손으로 잔을 바꿔들었다.
"너 우유 되게 좋아하나 보다."
우윤지 뭔지 그딴 거 난 모르겠고, 네 녀석 손에 든 유리잔이나 이리 내.
"이게 그렇게 먹고 싶어?"
응, 그러니까 빨리 내놔.
내가 울상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 거렸더니 고윤이 자기 손가락으로 내 구겨진 이마를 꾹꾹 눌러대며 말을 잇는다.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렇지. 외간 남자의 입술을 그렇게 함부로 만지면 되냐."
"……."
"너 그러다 잡혀가 인마. 담부터 조심해. 자, 받아."
나는 고윤이 건네는 그 유리잔을 받아들고는 쉬지 않고 단숨에 들이켰다.
하얀 액체 속에 녹아든 고소함이 내 혓바닥을 부드럽게 감싸 안아주는 것만 같았다. 캬~ 좋다.
속으로 감탄사를 연발해가며 꿀떡꿀떡 삼키고 있는데 내 입으로 들어오던 폭포수 같은 물줄기가 어느새 점점 잦아들었다.
벌써 다 마셨나 보다. 나는 마지막 한 방울까지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미 바닥을 드러낸 유리잔을 탈탈 털어가며 입으로 가져갔다.
그러자 옆에 있던 고윤이 피식 웃으며 '더 줄까?'-하고 물어온다.
뿌리칠 수 없는 유혹에 잠시 흔들렸지만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손바닥을 이마께로 들어 보이며
됐다-는 의사 표시를 확실하게 해주었다.
"풉-."
"…큭큭…… 아놔, 이 새끼…… 무슨 거지가 저래………푸하하하."
"진짜 귀엽다, 너."
아~ 아야~ 갑자기 볼은 왜 잡아당기는 거야! 아, 왜 이래~ 아프다고~ 나 진짜 아프다니까!
표정을 찡그리며 신음을 토해내니 그제야 내 볼에서 손을 떼어내는 고윤이다.
곧이어 살짝 부풀어 오른 내 볼을 손등으로 살살 문대준다. 이씨,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내가 원망의 눈으로 고윤을 바라보고 있는 바로 그때,
"피슝~"
내 앞으로 분홍색깔의 천 쪼가리가 날아왔다. 그 뒤로는 입으로 요상한 소리를 내며 걸어오는 피선율의 모습도 보였다.
나는 땅에 떨어진 그 분홍색 천을 집어 들었다. 그러자 피선율이 두두두두- 거리며 내 옷 위로 그 분홍색 쪼가리를 덧씌워 준다.
"니 작업복이다, 구자야."
"피선율이, 근데 이거 거지한테 너무 작은데? 무슨 앞치마가 배까지 밖에 안와."
뭐가. 난 화사한 게 맘에 드는구만.
"어쩔 수 없어. 이상우 어린이가 남는 게 그거 밖에 없대."
"에라이~ 너 또 상우꺼 뺏어 왔지?"
"뺏긴 뭘 뺐어. 나 그런 놈 아니야."
"웃기고 있네. 맨날 상우 물건 훔쳐간다고 상우네 엄마가 너 존나 싫어해."
"그래 봤자 사나이들의 우정을 갈라놓을 순 없어."
"미친놈. 저거 언제 철들어. 그치 윤아~"
"나는 지금 니 말이 왜 이렇게 웃기지?"
"에이씨. 야 거지, 너 일 안 하고 뭐해. 자꾸 농땡이 부릴래?"
할 말 없으니까 괜히 나한테 신경질이야. 나쁜 인간 놈.
* * *
"구자, 이 새끼!"
일 잘하나 감시하러 온 풍일이 주방 꼴을 보자마자 신명나는 소리 한 곡조를 읊어댄다.
구자에게 설거지를 시켜놓고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주방에 폭탄이라도 터진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온 사방에 깔린 세제 거품이 웬 말이며,
싱크대 안에 있어야 할 냄비와 식기들은 어인일로 뿔뿔이 흩어져 있단 말인가.
피난이라도 갔는지 구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오면 혼쭐을 내주리라 단단히 벼르고 있는데,
주방 입구에서 새빨간 고무장갑이 풍일의 눈에 언뜻 비친다.
뒤이어,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 꽃분홍색의 아동용 앞치마를 자랑하며 늠름한 표정으로 걸어오는 구자가 보였다.
"야, 야-. 너 일로 와. 도대체 주방을 이 따위로 만들어 놓고 어딜……."
슉-!
구자는 풍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고무장갑 낀 손을 그의 눈앞으로 들이밀었다.
"뭐 어쩌라고~ 저리 안 치워?"
아마도 새 고무장갑을 찾으러 갔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었지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구자는 답답하단 표정으로 풍일을 지나쳐 싱크대로 향했다.
그런 구자의 뒤를 바짝 쫒은 풍일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 구자를 쏘아보며 팥쥐 엄마 같은 말투로 구박을 해댄다.
"너 지금 그걸 설거지라고 하고 있는 거냐."
나름 열심히 하고 있는 구자지만, 깐깐한 풍일의 눈에 들어 올리 없었다.
결국, 참다 못한 풍일이 이리 나와 보라며 구자의 손에 들린 고무장갑을 뺏어들고 싱크대 앞에 떡하니 자리를 잡는다.
곧이어 물에 잘 불은 접시를 하나 집어 들어 수세미로 쓱싹- 문댄다.
"우와!"
구자는 깔끔하게 잘 닦인 접시를 보며 탄성을 자아냈고, 이런 열렬한 반응에 신이 난 풍일이
중간 중간 접시를 돌려주는 센스를 발휘해가며 거의 묘기에 가까운 설거지 기술을 보여주었다.
"내가 안 해서 그렇지 맘먹고 하면 졸라 잘한다고."
그리하여 결국 설거지는 간만에 맘먹은 풍일의 손에서 졸라 잘되어 가고 있었다.
구자가 하는 일이란 물에 불은 그릇들을 풍일에게 집어주는 것과 간간히 '오~, 와~, 우와~'라는
감탄사를 연발해주는 것 뿐이었다. 나름 각자의 위치에서 주어진 임무에 충실한 결과
산더미같이 쌓여있던 설거지를 단 30분 만에 후딱 해치워버릴 수 있었다.
몇 분전까지 그렇게 더러웠던 그릇들이 반짝 반짝 예쁘게 빛나고 있는 걸 보니 뿌듯한 마음이 드는 구자다.
또한 고생한 풍일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구자다.
"고마워 풍일아."
"고마워 풍일아? 이게 미쳤나."
퍽-.
풍일이 구자의 머리통을 한 대 세게 후린다.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구자는 왜 때리냐며 풍일을 노려본다.
"내가 아무리 동안이어도 그렇지. 십.팔.살 먹은 거지랑 반말 섞을 급은 아니거든?
난 너와는 차원이 다른 십구살이니까 앞으로 알아서 기어라. 알겠냐?"
"왜."
"뭘 왜야~ 넌 십.팔.살이고, 난 십구살이니까 그렇지."
그러나 구자는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왜냐하면 구자는 마계나이로 백십팔살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리 없는 풍일이 구자를 매섭게 노려본다. 왜 아무런 대답이 없냐는 눈치다.
만약 여기서 싫다고 하면 소풍일한테 또 맞을 것 같다. 머릿속으로 스치는 생각에 구자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그러던 중,
"설거지 다 끝났지? 구자 새끼, 내가 데려간다."
선율이 들어와 방청소 해야 된다며 구자를 밖으로 끌고 나간다.
구자는 선율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풍일이를 풍일이로 부를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
* * *
"오, 우리 집 존나 깨끗해 졌어. 막 광나~"
소풍일의 말처럼 집안 곳곳에서 번쩍번쩍 광이 났다.
그리고 내 눈에선 주룩주룩 눈물이 났다.
이 집에 들어 온지 아직 하루도 지나지 않았는데 너무도 서럽다.
설거지에 청소, 빨래까지. 몹쓸 인간들이 나를 너무 부려먹는다.
죽을 때가 됐는지 머리 위로 세실 할망구의 얼굴이 둥둥 떠다닌다.
오랜만에 할망구 이마 위에 자글거리는 주름살을 하나씩 세고 있는데,
피선율이 내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말한다.
"구자야, 너 되게 배고파 보인다."
몇 시간 동안 이 녀석을 겪어본 경험에 의하면 이것은 필시 제 녀석이 배가 고픈 것임에 틀림없다.
이 약은 인간 놈같으니라구.
"배고프지?"
"아니."
나는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만약 내가 배고프다고 하면 또 다시 나를 어디론가 끌고가 무지막지한 집안일을 시킬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그래? 풍일아~ 우리 짜장면 시켜 먹을까?"
"난 볶음밥"
"나는 간짜장, 구자 너는 배 안 고프다고 했으니까 짜져있고…… 고윤도 나랑 같은 간짜장. 근데 천희는?"
"그 새끼 아직도 퍼질러 자. 완전 미쳤어."
"그럼 천천희는 패스. 탕수육 하나 시킬까?"
"물만두도!"
나는 도통 뭔 소린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는데 자기들끼리는 되게 좋아한다.
얼마 후 피선율은 요상스런 기계하나를 집어 들어 그것을 몇 번 꾹꾹 누른 후 귀에다 갖다 댄다.
그리고는 미친 사람처럼 혼자 쏼라쏼라 알아들을 수 없는 주문을 외워대기 시작했다.
"여기 피선율네 집인데요, 볶음밥 하나, 간짜장 둘, 탕수육하나, 물만두하나요."
"야, 군만두~ 군만두."
"아, 그리고 서비스 군만두랑 단무지 왕창 많이요!"
주문이 다 끝났는지 피선율이 들고 있던 기계를 내려놓고 옆에 있던 다른 기계를 집어 들어 볼록 튀어나온 버튼을 꾹 누른다.
그러자 네모난 박스 안에서 아주 아주 작은 인간들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피선율이 버튼을 눌러 댈 때마다 인간들의 모습이 자꾸 바뀐다. 오~ 신기해, 신기해.
띵동-. 띵동-.
내가 네모난 박스에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이상한 소리가 집 안으로 울려 퍼졌다.
피선율이 혼자 무어라 중얼거리며 현관으로 향한다.
"짜장면이 벌써 왔나?"
첫댓글 아~ 구자 너무 귀여운것같아요~ 웃겨웃겨 ㅋㅋㅋㅋㅋ
고 아이가 아직 세상물정을 잘 몰라서 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구자 진짜 귀엽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애정하는 아이에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오우 감사합니다.
오옷! 감사합니다. ㅎㅎㅎㅎㅎ 뭔가... 제가 아는 분고ㅏ 느낌이...... ㅎㅎㅎ
저 턱사랑이였어요
++ 울 깜찍한 구짜!!!!!....++ 후후훗! 내가 대려가고 싶어....
구짜는 누군가요 키키키키키키키키키 구찌의 짝퉁인가요? 푸헬헬 ㅋㅋㅋㅋㅋㅋㅋ
구자 내꺼! 퉷퉷 침발라놨음. 휴랑 사귄든 풍일이랑 사귀든 고윤이랑 사귀든 내 허락맡고 사겨!
구자가 갑자기 인기인이 돼버렸군요 으허허허허허 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구자는 이름만 특이한줄 알았거늘 그게 아니였엉 ㅋㅋㅋㅋ
다 구자 얘기 밖에 없네요 ㅎㅎ 구자한테 알려줘야지 ㅎㅎ
ㅋㅋ 암만 기억이 없어도 저리 없을 까요? ㅋㅋ 이름도 특이해 ㅋㅋ 선구자에 피 선휼 ㅋㅋ
기억이 없는 것도 없는 거지만,,,,,,,,, 구자가 살던 시대는 100년 전이라서요 ㅎㅎㅎ 지금과는 많이 다르죠 으히히히히히
다들 구자만 좋아하네요 ㅋㅋㅋ 저는 피선율에게 한표를 ㅋㅋㅋㅋㅋㅋ
저는 그럼 피선율이에게 당하는 이상우 어린이에게 한표를 ㅎㅎㅎㅎㅎ
아~ 귀엽다~
구자가 쬐금 귀엽죠? 으히히히히 ㅎㅎㅎㅎ 많이 사랑해 주세요 ㅋㅋㅋ
우리 불쌍한 구자 ㅋㅋㅋ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고 ㅠㅠㅠㅠ 그래도 며칠만 참으면 곧 멋진 공이 나타나서 널 데리고 갈꺼니까 그때까지 힘내!!<헛소리
ㅋㅋㅋㅋㅋㅋ 정말 며칠만 참으면 되나요?? 구자에게 힘내라고 전해줄게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