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해 단급이상 부대의 인사참모로 발령날 기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장군의 인사참모가 되었다. 원래 그 자리는 중령 직위이며, 소령이 맡더라도 나보다 2,3년 선배기수가 보임되어야 하는거였다.
(다른 부대로 도망가버린 선배, 심지어 한직으로 가는걸 감수하고 이 장군 밑에 가는걸 회피한 선배, 더 심지어 저 장군 밑에 가느니 차라리 전역해버리겠다고 했던 선배장교, 그리고 권도안이 제일 적격이라고 천거했던 어느 씨발눔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보낸다.)
부임하고 보니 과연 명불허전의 지휘관이었다.
내가 얻게된 "정실인사를 하는 부패장교"라는 공군에서의 악명, 기무사 요원들과의 갈등이 모두 이 양반 덕분이었다. 내가 의도가 없더라도 그 지휘관이 미우면, 지휘관의 지시를 이행하는 나는 더 미워보이는 법이거덩.
취향도 독특했는데, 본청 청사 빨간페인트 사건을 말하면 공군인들은 모두 알 것이다. 기묘한 색이었는데, 다들 그 빛 때문에 돌아버릴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F-15K 추락사고 후 조종사들이 출퇴근때마다 보게 되는 그 빛깔 때문에 노이로제가 생겨서 사고가 난 거라는 말까지 나왔다.
나중에 장례식에 왔던 참모총장이 핀잔을 주자 다시 위장도색으로 복원되었다.
며칠이 지나 처가집에서 자식들, 사위들, 며느리들이 다 모인 가족모임에서 알게된 사실도 재미 있다.
동서가 중소건설업체에 간부로 있었는데, 어느날 내가 부임할 예정인 그 부대의 보수공사를 수주했단다.
근데, 공사와는 별개로 동서가 의뢰를 받은 것이 있는데, 그게 문제의 페인트를 확보하는 거였다.
건물 페인트 도색은 시설대대 자체 시공사항인데도 동서한테 의뢰를 하게 된 것은 워낙 특이한 색이라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빨간색을 베이스로 보라색과 연두색이 복잡하게 섞인 색으로 붉은 벽돌보다 좀더 피빛에 가까웠다.
서울, 대전, 대구, 부산을 다 뒤져서 겨우 건물 2동을 칠할 분량을 마련해 주었다고 한다.
만약 분량만 충분했다면 부대 전 건물을 그 색으로 도색할 요량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형님, 그 지휘관 모실라마 힘드시겠던데예."
보수공사 하는데도 수시로 와서 문 손잡이, 벽지 디자인, 조명 디자인 등을 일일이 정해주고, 확인하고, 시제품 보더니 바꾸고...
그래서 사장님한테 두번 다시 그 부대 공사는 따오지 말라고 항의를 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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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지나 어느 비행단에서 근무할 때 역대지휘관 초청행사를 했다. 행사 주무관은 아니었지만 같은 병과 선배장교로서 도와주고 있었는데, 그 양반도 참석한단다. 모두들 바라지 않았던 상황ㅋㅋㅋ
심지어 모 대령은 주무관인 행정실장에게 "그 인간한테 초청장은 왜 보냈냐?"며 역정을 냈다.
행정실장이 만찬좌석 배치를 하고 명패도 놓았는데, 모 대령님이 성질을 내며 행정실장을 닥달하는 것이었다.
"왜 내가 저 인간 앞에 앉아야 돼?"
"어? 거긴 전대장님 자리 아닌데요?"
하며 다른 대령의 명패와 바꿨다. 그 자리에 앉기 싫었던 대령이 후배 대령의 명패와 슬쩍 바꾼 것이다. 즉 서열대로 앉게 되어 있는 공식행사에서 스스로 좌석강등을 자초할 정도로 그 자리가 싫었던 것이다.
또 다른 대령은 아예 행사참석이 싫어서 비행단장에게 불참하고 싶다고 보고하기까지 했다. 비행단장은 어깨를 만지며 위로하고...ㅋㅋㅋㅋ
만찬중 후배들이 건배제의를 하면서 다른 예비역 장군들에게는 건강과 행운을 기원하면서도 이 양반은 쏙 빼놓는 왕따를 하더라.
와 15년 넘게 군생활하면서 술축복을 못받는 사람은 첨봤다. 결국 비행단장이 자리를 찾아가서 한잔 올리더라.
이 양반이 건배제의를 할 때는 대령들이 죄다 딴청...
행사 끝나고 배웅을 하는데, 어떤 장군님을 후배대령이 번쩍 안아들고 "사랑합니다" 하면서 빙빙 도는데, 이를 부럽게 바라보고 있던 이 양반에게는 아무도 악수조차 청하지 않는 왕따의 완성...
행사장 구석에서 행사진행을 모니터링하던 나를 발견하고는 악수하러 오더라.
ㅆㅂ, 못본척 도망가긴 한발 늦었다.
세상에 악수하기가 그렇게 싫었던 적도 거의 없다.
※ 무릇 모셨던 사람, 함께 했던 사람의 허물을 떠벌리는 것은 군자의 도리가 아니라고 한다.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이 양반 만큼은 예외로 해도 누구나 (당사자를 제외하고) 누구나 찬성할 것이다.
결론 : 힘있는 자리에 있을 때 똑바로 잘하자.
※ 대략 그 페인트랑 비슷하다.
첫댓글 전투기도 이렇게 칠하고 싶었을듯요.
그분 전역후 재미 못봤나봅니다. 왕따인거보니....
아이고.ㅋㅋ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군은 위장색이 아닌가요?
전 위장 색이 강제인 줄 알았는데... 지휘자의 취향으로....ㅎ
공군은 베이스작전 개념이라 작전지휘시설이나 통신시설 같은 것만 위장하고 행정건물은 일반건축을 합니다. 그래도 전투비행단은 적외선 흡수도색을 하구요.
공군 전투비행단에서 복무하셨나 보죠?
여기저기 근무했죠.
@지발돈쫌 그렇군요. 주위에 공군 전역하신 분은 처음 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