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농협에는 지난 94년 개설된 주부대학이 있다. 이 대학의 목적은 지역 여성들의 교양을 높이고 사회활동을 장려하기 위한 것. 이후 주부 대학은 매년 수백 명 씩의 졸업생들을 배출했고,이들 위주로 구성된 총동창회가 있었다.
회원수 400여명에 이르던 이 총동창회는 그러나 5·31 지방선거가 끝난 후인 지난 2일 '회원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문을 닫아야 했다.
원인은 선거 기간 동안의 과열된 선거운동 때문이라는 것. 하지만 총동창회 폐쇄 과정이 농협 일방적으로 진행돼 상당수 회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지방선거의 후유증으로 13년 만에 문을 닫게 된 금정농협 주부대학 총동창회.
금정구에서는 지방선거 운동기간 내내 지역구 국회의원인 박승환 의원측과 금정구 여성단체협의회 집행부 간의 대립이 있었다 금정구 여단협 집행부는 '박승환 의원이 김문곤 후보를 공천에서 탈락시키면서 여성단체협의회을 비난했다'며 박 의원과의 면담을 요청했다. 금정구 여단협은 금정 지역에서 박 의원과의 면담이 이뤄지지 않자 선거 운동기간 전인 지난 4월4일 국회에서 박 의원을 만나기 위해 6대의 관광버스를 타고 상경했다.
농협 측이 문제 삼은 내용은 이 때 금정농협 주부대학 총동창회장이 합류했다는 것. 농협은 △농협 이름을 내세운 주부대학 총동창회장의 특정후보 선거 운동 △농협과 관련된 국회 농림해양수산위 소속 국회의원인 박 의원에 대한 총 동창회장의 비협조 등을 불편하게 여겼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총 동창회장인 A씨는 서울 가기 전날인 4월 3일 농협 관계자로부터 "서울 가면 안됩니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지만 자신의 의지로 상경을 강행했다. A씨는 이번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문곤 후보의 선거운동에 나서기도 했다.
이번 사태의 시작은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달 11일 시작됐다. 농협은 주부대학 총동창회 이사 50명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간담회를 개최한다고 알렸다. 농협이 주재한 간담회에 갔던 이사들은 농협 측으로부터 "총 동창회 이사들이 선거운동을 할 경우 농협 이름으로 하면 안되니까 사퇴서를 쓰라"는 말을 들었다. 이사들은 사퇴서가 선거기간 동안 일시적이라는 농협측 말을 들고 모두들 순순히 사퇴서를 썼다.
그러나 며칠 뒤 총동창회 관계자는 농협 담당자로부터 "기금 쓸 일 있어 농협에 왔다가 놀랄까봐 미리 알리는 데 기금 통장이 지불정지됐다"라는 말을 들었다.
총동창회의 통장에 든 기금은 1천800만원. 농협 측은 총동창회는 물론이고 통장 명의자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통장을 지불정지시킨 것이었다. 총동창회 측이 다음 날 왜 통장을 지불정지시켰는 지 따져묻자 농협 측은 "기수별 회장들이 기금을 찾아 나눌 것이라는 말을 듣고 지불정지 시켰다"라는 답변을 해 다시 총동창회와 실랑이를 벌였다.
농협 측은 지불정지에 대한 총동창회 집행부의 항의에 부딪히자 "통장을 가져 오면 지불정지를 해제하겠다"고 한 발 물러섰고 총동창회 측은 다시 "농협측이 통장도 없이 지불정지는 마음대로 시켜놓고 해제할 때는 왜 우리더러 통장을 가져오라고 하느냐"며 항의했다.
기금 지불정지 문제가 그렇게 불거져 있던 중인 지난 2일 농협은 다시 긴급대책위를 개최한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때 참석한 총 동창회 관계자들에게 농협측은 "주부대학 총동창회와 농협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넜다"면서 주부대학 총동창회의 폐쇄를 선언하고 농협 2층에 있던 주부대학 총동창회 사무실에 자물쇠를 걸었다. 이 과정에서 한 임원은 비민주적인 농협의 회의 진행에 항의하며 12시간 연좌농성을 별였다. 농협은 기금통장 지불정지는 해제해 총 동창회측에 돌려주었다.
▲ 금정구 남산동 금정농협 전경.
주부대학 총동창회장 A씨는 "내가 특정후보를 지지했지만 순전히 개인의 자유의사로 선거운동을 했다"며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농협에서 도와야 한다는 국회의원의 의중과 맞지 않는다고 해서 지역사회에서 13년간 봉사활동을 펼쳐온 단체를 농협이 어떻게 일방적으로 해체할 수 있느냐"며 분개했다.
송영조 금정 농협 조합장은 이에 대해 "농협이 특정 후보 선거운동을 하는 것으로 오해받을까봐 선거운동 자제를 요청했는데 총동창회장을 비롯한 일부 회원들이 선거운동을 멈추지 않아 폐쇄 시켰다"고 대답했다. 기금 지불정지 건에 대해서는 "주부 대학이 존속은 돼야 한다고 생각해서 실시했다가 지불정지를 해제하고 모두 돌려주었다"고 답했다. 또 농협에서 박 의원에 대한 협조를 요청한 적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농민들을 위해서 일하니까 도와주는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계속 보여왔었다"고 답했다.
박승환 의원은 "농협 주부대학 총동창회 해체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고 나와 관계도 없다"며 "현 구청장의 부인이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는 여성단체협의회가 현 구청장의 공천 탈락에 항의하면서 내가 말하지도 않은 여단협에 대한 비방 발언을 문제삼아 세력을 규합하고 선거국면에서 이슈화 시켰던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