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단 근황으로는 347번째 글, 연주일로부터 9일 전입니다. 앞으로 연습일자는 2회
남겨둔 연주전 3번째 연습시간으로 경성대에서의 두번째 연습시간입니다. 이제나저
제나 제 연습일지를 기다리는 사람은 좀 의아했을 것입니다. 아니? 왜 연습일지가 안
올라오지? 연습일자는 9월 18일이었고, 통상 그날 밤으로 일지 작성을 마치는데, 지
금 시각이 19일 오전 11시 30분이거든요. 이렇게 된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사실은
어제 연습날이 제 회갑날이었습니다. 요사이야 뭐 회갑연을 거창하게 하지는 않지
만, 그래도 회갑을 맞이한 날인데 뭔가를 해야겠다 싶어, 연습이 끝난 밤에 집에서
집사람과 큰 놈과 함께 조촐한 와인 파티를 가졌더랬니다. 그래서 어제 작성을 하지
못했고, 오늘은 또 합창단 남성팀이 우리집에서 파트 연습을 하는 날인데, 테너 베이
스 단원 뿐 아니라, 지휘자와 반주자까지 오는 매머드급(?) 모임이라. 집 정리가 필요
할 듯 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늘 가던 헬스도 걸른 채, 집 정리 및 쓰레기 정리하
고, 거의 대청소 급 청소를 하고 샤워를 끝내고 좌판에 앉으니 이 시간이 되는군요.
조금 있으면 3시에 피아노 조율을 하러 오기로 했으니 그 전에 빨리 작성을 마쳐야
할 것 같고, 조율하고 나면 그 다음 7시30분 파트 연습이 있기 전에 혼자서 1시간 동
안 또 개인 연습을 할 예정입니다. 회갑을 맞이하여 무슨 행사를 하고 싶어도 사실
저도 지금 제 정신이 아닐 정도로 조마조마한 심정이라 회갑연이고 뭐고 신경쓸 겨
를이 없네요. 그런 심정으로 어제 한 연습 시간을 복기해 봅니다.
우리가 연주하려는 브루크너 [미사 fm]는 사실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베엠베(B
MW. 브루크너, 마알러, 바그너에 심취해 있는, 서구 순수 음악으로 하여 맛이 약간
간 사람들)들이 아니면 잘 접하지 못하는, 감상하기에도 힘겨운 곡입니다. 감상하기
도 힘든 이런 난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우리같은 아마추어 음악인들로서는 거의 상상
할 수도 없습니다. 사실 엄현섭 지휘자와 같은 탁월한 영도자가 아니면 거의 꿈꾸지
못할 일이죠. 그점 음악을 단지 호사가들의 지식 자랑이 아닌 전통 코스를 밟아 가려
는 면모가 역력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지금 하고자 하는 음악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철저히 파악하고 들어가자는 것이죠. 도대체 미사곡이라는 게 뭐냐. 분석하여 본다
면 [미사 fm]의 경우 <끼리에>는 대표조인 fm의 비통한 어조로 죄를 고백하는 내용
의 곡이고, <글로리아>는 C조의 확실한 어조로 즐거운 찬양을 올리는 곡이고, 같은
C조이지만 <크레도>는 음악적 분위기를 무겁게 잡고, 사도신경으로 신앙고백을 하
는 곡이고, <쌍뚜스>는 거룩함을 기리는 것으로 마지막에 호산나 찬양을 기쁘게 외
치는 곡이고, <베네딕투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야 했던 브루크너가 자신에게도
축복의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기원을 담은 그러니까 보기 드물게 그의 감정을 실은
곡이고, <아뉴스 데이>는 지금까지의 모든 정서를 집약시킨 곡이다. 곡의 정체성에
접근하고자 하는 이런 노력은 지금의 상황, 그러니까 연주를 9일 정도 남겨둔 상황에
따른 특별 주문을 첨가합니다. 이제 모든 비트를 지휘자 안으로 모으라. 옆 사람도
관중도 솔로도 신경쓰지 말고, 지휘자와 악보와 자신이 일직선 상에서 하나가 되게
하라. 저는 여기에 한 마디 더 보태고 싶네요. 지휘자가 악보다. ‘저 사람을 보라.’
지금 우리가 어느 정도의 위치에 올라와 있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집에 올 때 단장
의 이야기가 베이스 팀이 너무 존재감이 없더라고 하던데, 그점 아직 베이스가 각자
곡에 대한 장악력을 확보하고 있지 못한 탓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지휘자는 이
제 매 단계마다 거쳐야 할 것이 있다고 하면서, 예술성 고조를 위한 훈련을 들어가자
고 합니다. 그게 어떤 것인지 확실하게 알지는 못하겠으되, 계속 이어져서 떨어지는
지시 사항은 예를 들어 소프라노를 보고 노래를 풀어서 불러라. 전 파트에 걸쳐 푸가
에 들어갈 때는 자기 파트가 시작하는 부분을 정확하게 찍어내어라, 자음 발음을 심
하게 하지 말고 모음 중심으로 불러라 하는 것등입니다.
정말 이제는 절박한 상황이 되었음을 단원 각자가 인지해서인지, 출석인원도 불어나
기 시작합니다. 이날 소프라노 11명, 앨토 6명, 테너 4명, 베이스 6명 해서 모두 27명
이 모였습니다. 하지만 이 수도 시간별로 들쭉날쭉이고 지금 이 시점에 와서까지도
결석할 수 밖에 없는 단원이 있다는 것은 미상불 문제입니다. 오늘 파트 연습에는 베
이스 단원들은 전원 다 올 듯 한데, 그런 것이 당연한 것 아닐른지요.
예술성 고조를 위해 훈련을 한다. 하지만 그전에 해야 할 것은 실수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정 박자를 포함해서 모든 면에서 이 곡은 1시간 10분동안 연주하는 사람
들에게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고, 그게 잘 되지 않으면 엄청난 일이 발생합니다. 저
번 연습 때 음악계에서 날고 긴다는 명인들인 솔로들마저도 약간의 혼선을 일으켰
고, 합창단들은 평소에 잘 하던 부분까지도 오류를 보여 지휘자를 당황하게 했으며,
이날 고백하기로 지휘자마저도 약간의 미스를 범할 정도로 이곡은 난곡입니다. 그래
서 오늘의 연습도 주로 합창단들이 많이 틀리는 부분을 중심으로 빈 곳을 메꾸어가
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남성팀 중심으로 연습을 진행하려 했던 것
같던데, 어느 파트 말할 것 없이 다 문제가 있다고 여긴 때문이지, 남성팀에게만 그
리 집중하지는 못했습니다. 아마 오늘 두 시간 동안 집중 훈련이 이루어질 듯 합니
다.
지금 경성대 신학관 바깥에서는 미루어진 축제를 하느라고 야단법석인데, 우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휴식 후에 바로 2부 연습으로 들어갑니다. 2부에서는 악보 48페이
지부터 75페이지까지 그러니까 크레도 중반부부터 마지막가지의 부분입니다. 사실
이 부분이 곡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인데, 내 경우 168마디부터, 174마디까지만
제대로 불러내면 이 곡 다 부른 것 같은 심정이 될 정도로 엄청난 집중력을 요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악보 50페이지 위 여백에다가 ‘절대 집중’이라고 커다랗게 표시
해 두었습니다. 결국 이 곡과 우리의 승부는 우리가 1시간 10분이라는 긴 시간동안
얼마나 집중력있게 곡에 접근하느냐의 문제라 여겨지는 군요. 사실 이렇듯 우리의
연습시간도 최고로 집중된 시간으로 마쳐지게 됩니다. 이제 오늘 남성 파트의 파트
연습으로 남성 소리를 완벽하게 보강한 뒤 다음 주 화요일날 또 완전히 다른 버전의
연습 모습을 보여야 하겠죠.
이리하여 제 회갑날 합창단에서의 회갑연(?)을 마치게 됩니다. 퇴임과 회갑을 맞이하
여 뮤클의 DVD 상영회팀에서 오페라 DVD를, 독서모임 팀에서는 멋진 만년필을 선
물했었는데, 합창단에서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무엇일까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번에 모두들 힘을 모아 저와 모두가 27일날 최고의 공연만 해 내면 그게 나에게는 최
고의 선물입니다. 만약 뮤클 회원들중 저를 알고, 저를 사랑하여 이번 퇴임과 회갑을
기념하여 무언가 자그마한 선물을 하고 싶다면 다른 것은 필요 없습니다. 27일날 본
인 뿐 아니라 주변 친지들도 가능한 많이 동원해서 연주를 관람하고 아낌없는 격려
의 박수만 보내주면 됩니다. 그게 최고의 선물입니다. 참 역설적이게도 회갑을 맞이
하고도 회갑 그 자체보다 27일날 있을 공연에 더 신경이 많이 가 있으니 당연한 것이
겠죠. 감상하기도 어려운 이곡을 훌륭하게 연주해 낸다면 나로서는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27일날 모두 만나기를 기원하며 회갑연을 겸한 저의 연습후
기를 닫습니다.
좋은 공연 & 소중한 만남은, 언제나 [뮤클]과 함께 ^^ http://cafe.daum.net/muk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