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쇼핑에서의 인기도 대단해 CJ 홈쇼핑 2004년·2005년 연속 식품 부문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올 상반기에도 판매액, 주문 건수 모두 1위다. 2000년 첫 방송 이후 총판매액 400억 돌파, 1500만 마리의 간고등어가 팔린 셈이다.
안동 간고등어의 성공 비결을 말하면서 이동삼 씨(65세)를 빼놓을 수 없다. 현재 이 회사 공장장으로 있는 이 씨는 평생 간잽이(간고등어 제조 기술자) 외길을 걸어왔다. 회사도 이동삼 이름 석자를 브랜드화하면서 출발했다. ‘47년 간잽이가 만든 간고등어’라는 점을 내세워 소비자들을 파고들었다. 제품 포장지에는 패랭이를 쓴 이 씨의 얼굴을 새겼다.
분당의 한 백화점 판촉 행사장에서 만난 이 씨는 “60년대 지게 지고 달구지 끌고 고디(고등어) 나를 때 이렇게 패랭이 쓰고 흰 한복 입고 다녔지”라고 회고했다.
이동삼 씨가 처음 간고등어와 인연을 맺은 것은 15세 때다. 3대 17명이 한집에 기거하는데, 하루하루 먹고사는 게 지옥이었다. “겉보리 한 되 갖고 1주일을 살았다”고 한다. 초등학교 문턱은 밟았지만, 9세 때 6·25가 나면서 학교는 진즉에 그만둔 뒤였다. 그래서 지금도 이 씨는 글씨를 쓸 줄 모른다. 대충 눈치로 읽는 것만 익혀 까막눈을 면한 수준이다. 먹고사는 게 막막하던 때, 간고등어 장사였던 할아버지를 따라나선 게 평생 업이 됐다.
이전부터 안동 사람들은 간고등어를 즐겨먹었다. 내륙지방 안동에서 간고등어가 탄생한 배경이 재미있다. “(동해안) 영덕항에서 안동까지 어른 걸음으로 한나절이야. 새벽에 고디 싣고 출발해 (안동) 챗거리 장터쯤 오면 벌써 해가 넘어가면서 고디 눈도 넘어가. 그러면 거랑(개울가)에서 고디 배를 갈라 내장 빼고 소금을 쳤어.” 부패를 막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염장 처리를 한 고등어는 날것과는 또 다른 맛이 있었다. 그는 “상하기 직전에 나오는 효소와 소금이 어우러져 간고등어의 독특한 맛이 나온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했다.
아는 사람만 알고 먹던 ‘지역구’ 간고등어가 ‘전국구’ 상품으로 등장하게 된 것은 1999년 류영동 사장이 회사를 설립하면서다. 당시는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문 등으로 안동이 한참 뜨고 있을 때였다. 류 사장은 지역 특산물인 간고등어를 상품화하기로 하고, 제일 먼저 간잽이로 명성이 높던 이동삼 씨를 찾아갔다. 두 사람은 곧 의기투합했다. 류 사장의 아이디어와 이 씨의 기술이 합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이동삼 씨는 안동에선 알아주는 간잽이였다. 몸 재바르고 손끝 야무졌던 그는 일찌감치 재주를 인정받아 군을 제대하자마자 안동 시내 어물도가(해물시장)의 대원상회란 곳에 들어갔다. 초임이 1만 5000원. 웬만한 기업체 대졸 초임보다 높은 금액이었다.
“취직해 보니 환갑 넘은 선배 간잽이가 3명 있는데, 나는 소금 근처에 얼씬도 못 하게 해. 선배들 잠들고 나면 혼자 나와 밤새도록 간 맞추기 연습을 했지.”
이 무렵부터 냉동 고등어를 썼기 때문에, 추운 겨울에는 해동하느라 손이 퉁퉁 붓기 일쑤였다. 이때 그는 혼자 이리저리 궁리하다 자신만의 독특한 염장법을 개발했다. 고등어를 먼저 소금물에 2시간 동안 담가둔 뒤(습식 염장) 마른 소금을 치는(건식 염장) 방식이다.
“바닷물과 비슷한 농도에 고디를 담가두면 살은 물론이고 뼛속까지 간이 배어들어 더 쫄깃하고 깊은 맛이 나지.”
그는 (주)안동 간고등어의 공장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35년간 대원상회 한곳을 지켰다.
“간 맞추는 미각은 타고났지”
말이 공장장이지 처음엔 ‘도마 셋, 칼 셋’ 놓고 간잽이 3명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워낙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딱 맞는 간’ 덕분에 안동 간고등어는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 이 회사는 직원만 100명인 알찬 규모로 성장했다. 간이 딱 맞는 맛난 간고등어의 비결은 뭘까.
“일단 고등어가 실해야 해. 사람만 아니라 고등어에도 양반, 상놈이 있어. 고등어는 살이 단단한 게 양반이지. 간? 그건 내 입맛에 맞으면 돼.”
그러면서 “내 입이 보통 입이 아니오”라고 했다. ‘간 맞으면 잘한 음식’이라는 게 그의 음식 철학이다. 그래도 대량생산 체제에서 계량화된 소금 양이라는 게 있지 않을까? 그는 “대충 (고등어) 작은 것은 15g, 큰 것은 20g 치면 맞춤하다”고 했다. 그런데 이 15g, 20g이 저울에 딱 맞춰 나오는 양이 아니다. 손에 척 잡았다 하면 15g, 20g이다.
몇 년 전 ‘아빠의 도전’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 한번에 정확히 소금 20g을 집는 시범을 보인 적이 있다. 몇 번을 반복해도 틀림이 없었다. 19.7g이나 19.8g이 나와 실패했다 싶어도 그가 손에 남아있는 소금 알갱이 몇 알을 털면 어김없이 20g이 채워졌다.
소에 고등어를 실어 나르던 시절을 재현한 안동 간고등어 홍보 행사. |
그렇다고 그가 옛날에만 안주하는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소비 트렌드를 좇아가려 애쓴다. 소금 양만 해도 그렇다.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반영해 짠맛을 많이 줄였다.
“옛날에 비하면 소금 양을 반도 안 쓴다”고 했다. 일반 소금 대신 죽염을 쓰고, 황톳물이나 녹차 물에 고등어를 해동하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다. 신세대 맞벌이 주부를 위해 머리 꼬리 떼고, 뼈까지 발라낸 뒤, 반 마리씩 포장한 ‘순살 안동 간고등어’ 세트는 특히 홈쇼핑에서 인기다.
CJ홈쇼핑 계윤희 MD는 “일단 맛을 본 사람들의 재구매율이 높다”며 “다른 간고등어 제품에 비해 값이 2배나 비싼데도 워낙 품질이 좋아 판매는 부동의 1위”라고 했다. 최근 안동 간고등어는 신청 2년 만에 미국 상표권을 획득했다. 이를 계기로 미주 지역 판로 개척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초등학교 졸업장도 없는 일자무식이 간잽이 50년 동안 등 따시고 배부르게 살았고, 자식 넷 모두 대학 교육까지 마쳤으니 여한이 없다”며 환하게 웃는 이동삼 씨. 그의 푸근한 얼굴을 이제 세계 곳곳에서 마주할 날도 머지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