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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2024년 8월 26일에 가진 루터칼빈신학회 제2회 공개신학세미나에서 '십자가 신학과 신앙'이란 주제로 발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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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신학과 신앙
목 차
Ⅰ. 서 론 : 들어가는 말
Ⅱ. 루터의 십자가 신학
1. 십자가 신학이 등장하게 된 시대의 배경
1-1. 십자가 신학이 형성된 사상적 배경
1-2. 십자가 신학이 형성된 역사적 배경
Ⅲ. 십자가 신학에서 말하는 십자가
1.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고하신 십자가
2. 사도들이 전한 십자가의 도
Ⅳ.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사도의 십자가를 잇는 칼빈의 십자가 신앙
1. 루터의 십자가 신학과 길을 같이 하는 칼빈의 십자가 신앙
2.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름에서 ‘제자의 삶’이 강조되고 있는 칼빈의 십자가 신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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Ⅴ. 그리스도인의 몸에 지닌 흔적인 십자가 신앙
1.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리를 제시해 주고 있는 십자가 신앙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6:17에서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라고 말하였다. 사도 바울은 이 말을 하기에 앞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할례를 받은 것에 있든 그렇지 않은 것에 있든 아무 것도 아니기에 그 무엇으로도 내세워 자랑하며 논쟁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면서 십자가만이 관심인 십자가에 온 마음과 정신이 꽂혀 있기 때문에 이전의 이 세상의 온갖 일에는 흥미를 잃어버렸으며, 그런 자신에게 이 세상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하였었다.1) 바울에게서 옛사람과 새사람은 이런 차이를 가지고 있다. 해서 바울은 중요한 것은 변화를 받아 새사람이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2) 예수님의 제자된 그리스도인은 이 원리를 따라 사는 사람이다.
2.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인
이는 갈라디아서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말씀해 주시는 것과 또한 5:24에서 말씀해 주시고 있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에 기인한다. 갈라디아서 2:20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KJV, I am crucified with Christ.)라고 하는 표현에서 보게 되는 바 ‘…못 박혔다’는 수동태 문장의 형식으로,3) 바울은 십자가에서 예수의 죽으심이 바로 자신의 죽음이었음을 수동태로 받아들였다. 이처럼 하나님에 의해서 바울의 죽음이 다루어지는데 그 죽음은 바울 혼자만의 죽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묶여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을 당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에 있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에 의해서 바울 혼자만의 죽음을 당함에 있는 것으로 그에 지워지는 십자가에 달리는 것이라면, 그 죽음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저주를 받는 것에 있는 것으로 영영히 타는 불 못에 내던져져 영원히 죽음의 형벌을 당함에 있는 것이다(참조. 막 9:45; 계 20:14, 15; 21:8).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름에 있는 제자된 그리스도인은 그 혼자로서의 죽음에 있게 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에 있게 하심으로 그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과 함께 그의 죽음이 있게 하신다. 이를 로마서 6:3-11에서 ‘그리스도와 연합에 있는 세례’를 다룸에서 알려주신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음은 그와 함께 장사됨에 있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과 함께 하는 죽음에 있는 것이다. 곧 그리스도인 또한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음 당함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죄의 사람이 아니다. 다시는 죄가 그를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죽지 않으시고 죽음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하는 다시 살아나심에 있은 그리스도의 부활과 함께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서 새롭게 살아 있는 자로 받아들여졌다. 그런 그는 죄에서 구원 받음에 의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새사람이 된 원리에 의하여서 살아가게 된다.
그에 따라서 갈라디아서 5:24에서 말씀해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에 있는다.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람들은 …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고 능동태 표현을 하고 있다.4)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이제는 그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는 그리스도의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하면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 – 욕망 – 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대속주로서의 죽음에 있는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실 때 그와 함께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된 것은 죄의 책임과 형벌로부터 면제 – 해방 – 된 죄로부터의 구원에 있는 단번에 이루어진 사건이기에 그 효력이 미쳐 다시는 정죄 받음에 있지 않다. 그것으로 그때로부터 우리,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몸의 완전한 구속인 부활에 이르기까지 발생하는 정욕과 탐심을 육체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음에 있다. 이에 대하여 갈라디아서 6:14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본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 구절의 후반부인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는 다음과 같이 번역되고 있다.
개역한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공동번역.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써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새번역성경.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죽었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죽었습니다.
바른성경.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렇게 되었다.
쉬운성경.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세상은 나에 대해서 죽었고, 나는 세상에 대해서 죽었습니다.
우리말성경. 그리스도로 인해 세상이 내게 대해 십자가에 못 박혔고 나 또한 세 상에 대해 그러합니다.
현대인의성경. 이 십자가를 통해서 세상이 나에 대하여 죽었고 나도 세상에 대 해서 죽었습니다.
현대어성경. 이 십자가 때문에 나는 오래 전에 이 세상의 온갖 일에 흥미를 잃 어버렸고 이 세상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한글킹제임스. 그로 인하여 세상이 나에게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도 세상에게 그러하니라.
킹제임스흠정역.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있고 나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가톨릭성경.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내 쪽에서 보면 세상이 십자가에 못 박혔고 세상 쪽에서 보면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상의 한글번역 성경에서 보게 되는 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구원 사역을 통해서 일어난 바울의 상태를 말씀해 주시고 있는 것이다. 즉, 바울의 지금 상태가 과거에 일어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결과로 얻어졌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바울은 ‘그분(그리스도)을 통해서’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을 수 있었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표현되고 있는 세상은 상징적으로 바울 자신의 야망이나 욕망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에서 소멸되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로써 이 세상의 악한 영향이 성도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음으로 거듭난 사실에 굳건하게 서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과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구원에 동참하게 됨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에 대하여 죽었음을 말한다. 칼빈은 해석하기를 “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것은 세상을 멸시하고 작게 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반대로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덧붙여 말하고 있는 것은 바울 자신이 세상에서는 대수롭지 않은 존재로, 또는 완전히 업신여김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런 것이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은 자기가 죽어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괴로움 받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하여간 그는 옛사람이 죽음으로써 세상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말이다.” 라고 하였다. 헨드릭슨도 칼빈에 완전히 동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바울은 “내가 세상을 십자가에 못 박고” 라고 하지 않고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라고 말한다. 다른 말로, 그는 성령께서 십자가의 순전한 교훈으로 그의 영혼에 권능의 역사를 베푸신 사실에 대해 증거하고 있다. 영혼을 그리스도로부터 멀어지게 하려는 그 ‘세상’, 곧 모든 지상적 쾌락과 재산, 명예와 가치들이 바울에게는 매력을 상실하였다. 이렇게 “세상이 바울에 대하여 죽었다.” 이것은 빌립보서 3:7, 8을 가리키고 있으니, 무엇이든지 바울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겼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다.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므로 그리스도를 얻고자 해서 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부언한다. “내가 또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십자가에 못 박혔느니라).” 이는 동일한 의미를 갖는 방향으로 해석되기를 요구하는 것으로, 바울이 세상에 대하여 죽은 바 되었다는 뜻을 의미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는 그리스도에게서 영혼을 멀어지게 하는 세상적 쾌락과 재산, 명예와 가치를 신뢰하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 경멸을 보냈던 것이다. 던칸이 그것을 매우 적절하게 표현하였으니 “바울은 그 이상과 앞날이 영적이고도 비세속적인 것으로 화했기 때문에 세상은 마치 그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처럼 그를 무시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인하여 바울에게서 세상은 죽어 있음을 뜻하는 것인데, 이렇게 세상의 죽음과 함께 바울에게 있는 육체의 소욕도 함께 죽어 있음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성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인해 미혹의 덩어리인 세상과 육체로 인한 욕심을 이겨낼 수 있다. 한갓 죽어 있는 아무 생명력도 힘도 없는 것인데다가 그 모두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하나님의 권능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인 까닭이다. 그러한 것에서 세상은 아무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육체는 부정될 존재이다. 그러므로 현대어성경은 다음과 같이 적절히 의역하였다. “이 십자가 때문에 나는 오래 전에 이 세상의 온갖 일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이 세상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3.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인 그리스도인의 몸에 지닌 흔적 인 십자가
이렇게 바울에게 있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곧 우리에게 있은 십자가이다. 바울이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힘으로써 그와 함께 하였던 탐심에 사로잡힌 육체의 정욕도, 이를 끌어내는 세상도 죽어 있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힘은 동일한 하나님의 역사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살게 되었음을 함의한다. 이를 바울이 로마서 6:10-11에서 말해주고 있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그런 까닭에 여전히 죽음이 왕 노릇하는 죄의 구속력(拘束力)으로 율법의 계명 준수에 의하여 신앙을 가져나갈 것을 강압하여 질 수 없는 무거운 짐을 지우고 괴로움을 준다면 이는 십자가에 의해서 있은 하나님의 구속(救贖)을 거역하며 거스르는 것에 있는 것이기에 그에 맞서 대항함에 있게 된다. 이는 바울이 구원의 유일한 은혜의 방편인 십자가 신앙만을 말함으로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에게서 맞은 상처를 몸에 지닌 박해 받은 흔적을 그 또한 지니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로 그 흔적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표적이요 또한 그와 함께 그리스도의 제자 된 그리스도인임을 알려주는 표적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지 두 번 다시 이런 문제로 자신의 몸에 지닌 흔적인 십자가를 자신 스스로 대적하는 행위에 있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인으로 함께 믿음의 형제된 성도들에게도 이런 문제로 짐을 지우며 괴롭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모두의 몸에는 유대교에서 보는 바인 자기 의를 육체에 지니는 종교적 신앙에 의해서 배척당하는 십자가를 지울 수 없이 깊게 흔적으로 가지고 있어 한 믿음으로 한 분 주님을 섬김에 있지 않은가? 우리의 신앙이 십자가에 있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소유된 그분의 종(노예)인 것을 증명하는 낙인, 곧 표적이다.5)
4. 십자가 신앙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나타나지는 온 율법의 성취로 있는 성령의 열매
그러한 그리스도인은 이제 자신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따라 그분의 마음을 지니고서 그분으로부터 제공되는 은사로 갈라디아서 6:10에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라고 말씀해 주시고 있는 대로 살아야하겠다. 해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죄 사함과 의롭다 함으로 “자유한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 노릇하여,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갈 5:13-14) 라고 하신 실행에 있어 사랑하여야 할 기회가 주어질 때 사랑하며, 희락할 때 함께 희락하며, 화평을 위해 힘써야 할 때 피스 메이거(peace maker) 역할을 하며, 오래 참아야 할 때 참음으로 견디며 이겨나가고, 자비로워야 할 때 자비를 베풀며, 악으로 악을 갚듯이 하듯 분노하며 성내지 않고 선히 대하며, 주님과 주님의 일에 봉사하며 성도를 섬김을 충성스럽게 가져나감에 진심이며, 온유한 마음으로 형제에게 나아가 권면하고 잘못을 바로 잡아주며, 자신과의 싸움을 가져나가야 할 때 마음을 다스려 조절함으로 마음을 바르게 가져나감에 있어야 하니, 이같은 것은 금지되지 않으니 온 율법의 성취로 있는 일이기에 율법으로 결코 금할 수 없다(갈 5:22-23). 십자가의 도에 의해 세워진 교회에 있게 하시는 성령의 열매, 곧 성령의 사역으로 맺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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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갈라디아서 6:14, 15. 현대어성경
2) 갈라디아서 6:15. 현대어성경
3)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Cristw'/ sunestauvrwmai)에 사용된 ‘쉬네스타우로마이’(sunestauvrwmai)는 ‘십자가에 못 박다’란 뜻의 동사 ‘스타우로오(staurovw)에 전치사 ’쉰‘(suvn)이 결합된 형태인 합성어 ’쉬스타우로오‘(sustaurovw, with crucified)의 수동태 완료형으로 쓰였다. 이는 과거 일어난 사건의 결과의 영향력이 현재까지 계속됨을 보여주는 것이므로 NIV는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라고 번역하였다. 이는 바울 자신이 이미 과거에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율법 – 죄 - 에 대하여 완전히 죽었음을 표현하는 한편 한 번 십자가에 못 박힌 그 효과가 영구적으로 지속됨을 표현한다. 리처드 N. 롱에네커(Richard N. Longenecker)는 그의 갈라디아서 주석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Cristw'/ sunestauvrwmai)에서 동사 ’쉬네스타우로마이 (sunestauvrwmai)의 (suvn) 접두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에 신자의 동참을 강조한다. 의심할 여지없이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 편에서의 문자 그대로의 육체적 죽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죽음과의 영적인 일체됨을 생각하고 있다. 그 동사의 완료 시제는 신자의 한 번에 모든 것이 결정되는 의탁의 행위를 나타내는데, 그 행위는 현재를 위한 결과와 함의들을 수반한다.”
4) 갈라디아서 2:20과 5:24에서 십자가 사건을 두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와 ‘십자가에 못 박았다’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는 전자는 주어가 하나님이시고 후자는 인간(신자)인 주어의 변화 때문이다.
5) 한글킹제임스, 현대어성경, 공동번역, 가톨릭성경.
*발제자 : 이 천 우(개혁성경신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