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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지금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있는데요(아주 늦은 나이에 입학했습니다.). 초등과 중학교 교사들과 이와 관련된 얘기를 하는 기회가 있습니다. 이분들 이구동성으로 하는 얘기가, '넘 쉬운 내용'이고 또한 '뻔한 얘기(착한 얘기)'들이라서 애들이 아주 지루해 한다고 합니다.
저는 교과교육학에 매우 비판적인 입장입니다만, 교과교육학 입장을 대변해야 할 강사도(항상 대변하려고 합니다만) '도덕' 교과에 들어간 소위 '인물' 이야기가 실제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식으로 얘기하더군요. 그런데 이런 '인물'을 모델링하여 교육하면 아이들 '인성'이 향상된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주장을 하는 '미국' 교육학자들이 있었죠(소위 인격주의 교육학). 대표적인 학자가 리코나인데, 그런데 미국 내에서조차 듣보잡인 이런 인물들의 검증되지 않은 이론을 우리 교과교육학에서 싣고 나서, 그걸 구현하겠다고 어느 해부터인가 느닷없이 '인물들'을 교과서에 싣더라는 겁니다. 그거 교육하는 교사들도 있나요? 또 교육한다고 하더라도 효과가 있던가요?(이런 허무맹랑한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자기 저서에 싣고 교과서에까지 구현했던, 우리 교과 내 인물들도 있죠. 그들이 누구인지 다들 아시리라 봅니다.)
물론 철학 교과로부터 독립된, 우리 교과만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어떻게든 해보려고 했던 의도도 있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해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정말로 믿고서 그렇게 한 것이라면('착한 얘기'를 하면 정말 인성적 측면에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믿고서 그런 것이라면), 이건 정말 '무지와 무능의 소치'라고밖에는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태도와 자세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 교과 내에서 버젓이 행세할 수 있는 것부터가 우리 교과의 학문성(스칼라십)이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저는 봅니다.
교과서에 '착한 얘기'만 싣는다고 해서 아이들 인성 향상에 도움되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 교과가 '인성'이니, '도덕성'이니 하는 말을 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그놈의 인성, 도덕성이 무엇인지부터 정의를 내려줘야 합니다. 교과교육학 시간에 강사가 '인성, 도덕성' 어쩌고 하길래 정의부터 내려보라고 하니 내리지 못하더라고요. 어떤 반박이 들어올지 그 강사가 바보가 아닌 이상 자기도 알고 있기 때문이었죠. 정말 바보가 아니라면, 지금 도덕윤리 교과 내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솔직하지 못하다고 저는 봅니다. 아무리 '착한 얘기'들을 교과서에 싣고 그걸 교사가 강조한다고 한들 아이들 인성이 향상되는 게 아니라는 것쯤, 모를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전부터 교과 정체성 문제로 인해 고통을 당해 왔습니다. 그래서 일단 방어적 차원의 대응을 해야 했고요. 그런데 사실 그 문제도 그렇거니와, 더욱 큰 문제는 우리 교과 내 '학문적 역량'이 매우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교과가 설립된 지 벌써 30년도 넘었는데 왜 아직도 이렇게 학문적 역량이 부족한가 생각해보았는데, 여러 요인이 있겠습니다마는, 교과 내 경쟁이 그리 치열하지 않다는 점(모두 하나의 학연으로 연결됨), 그러다 보니(학문적 역량 부족을 스스로 알고 있다 보니) 학문적 역량으로 승부하는 것을 경원시하는 조류가 있다는 점을 주요 요인으로 꼽게 됩니다(도덕윤리 관련 학회는 모두 '친목회' 아닌가요? 이런 학회를 왜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친목회를 하려면 그냥 '친목회'라는 이름을 달든가.).
예전이나 요즘이나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비슷한 비율로 존재합니다(우리나라에는 유급제도가 없죠.). 이 아이들은 무슨 말을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요즘에는 교실에서 자고 떠든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에는 그렇다면 우리 교과서 내용이 문제가 아닌가(내용이 어려워서 그런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아요. 아닙니다.(내용이 쉽다고 애들이 귀담아 듣지는 않죠.). 무엇보다 이런 아이들의 그런 모습들은 다른 교과 수업시간에도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모습들이 일상화된 이유는, 교실에서 교사의 통제력이 무너졌기 때문이죠. 교사의 통제력이 사실상 무너진 시점은, 김상곤과 곽노현 등장 시기와 일치합니다.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리라 봅니다
우리 교과서의 문제점은, 너무 뻔한 얘기들을 늘어 놓는다는 데 있습니다. 우리 교과서 가지고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느끼는 고민과 고통들에 대하여 정말 조금의 해결책도 제시할 수 없습니다('착하게 살면' 그 아이들이 느끼는 고민과 고통이 사라지나요? 우리 교과는 아이들의 고통과 고민에 너무 무관심합니다. 우리 교과야말로 그 아이들의 고민과 고통을 함께 해야 하는 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들의 고통과 고민을 함께 하는 건, '착하게 살아라'에 있지 않습니다. 그 고통과 고민의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얘기해줄 수 있을 때 우리 교과가 비로소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용이 넘 뻔하니까, 이 교과서 내용 가지고 '기능적인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최근 신설되는 특목고 같은 곳에서는 도덕윤리 교과를 아예 개설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애초에 이 교과 가지고 무슨 인성 향상이니 어쩌니 하는 걸 믿지도 않았는데, 내용을 보니 대학 진학에 무슨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고, 그러니 차라리 교양교과인 철학을 가르치자, 뭐 대충 이런 심산들인 것 같습니다.
그럼 '윤리와 사상', '생활과 윤리'는 주로 '이론적인 것'이니 문제될 게 없을까요? 저는 이처럼 '이론적인 내용'이 문제되는 게 아니라, '유의미한 '이론들'이라고 보기 어려운 점이 정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앞으로 연구하고 토론해야 한다고 봅니다만, 아이들은 단순히 어려워서 흥미를 잃는 게 아니라(학업능력이 못 미치는 아이들은 어쩔 수 없습니다.), '지적인 호기심'을 채워줄 내용들이 아니라는 데서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런데 이런 것도 지적인 흥미를 느끼도록 가르칠 수는 있습니다. 이때에는 교과서를 재구성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런 재구성 능력을 모든 윤리교사가 갖고 있는 건 아니죠.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이렇게 재구성해서 가르치면(교과 범위를 넘는 내용을 가르침), '중상(중간과 상위권의 가운데)과 상위권' 애들은 강한 흥미를 보입니다. 저는 2학년 때 윤리와 사상을 가르치는데, 작년에 배운 아이들 중 상위권 애들(문과 20위권 안에 드는 아이들)은 내신상의 어려운 점을 감수하면서까지 올해 윤사에 응시합니다. 그리고 지금 배우고 있는 2학년 아이들 중 상위권 애들은 벌써부터 내년에 윤사에 응시하겠다면서 저의 거취(전근 가는지)에 관심들이 많더군요.
윤사는 그나마 철학에 가장 가까운 교과라 가르치는 교사들도 어려워합니다. 그런데 저는 묻고 싶습니다. 어려우니까 어려운 내용을 다 빼야 할까요? 그걸 다 빼면 윤사 교과는 존재 의의를 상실합니다. 가뜩이나 신설 학교에서는 윤사를 개설하지 않으려고 하는데(철학으로 대체) 뭔 내용도 없으면 무엇 때문에 윤사를 가르치려고 하겠습니까? 궁극적으로는, 교육부 차원에서 뭐 뻔한 얘기나 늘어 놓고 있으니 없애자고 할 겁니다. 고1 도덕 교과서를 단칼에 없애버렸듯이요. 그런데 이렇게 없애버리려고 하면 우리 교과교육학 사람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들고 나오는 게 있죠. "인성교육은 어떻게 할 거냐?"
인성교육을 도덕윤리 교과서로 해야 한다는 걸, 우리 교과 사람들만 믿지 다른 교과 사람들, 그리고 교육부 당국자들은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과교육학 사람들이 '인성교육은 어떻게 할 거냐?'라고 하면서 시위를 하면, 교육부 사람들이 그게 무서워서 들어주는 게 아니라, 전국 학교에 포진해 있는 기존 윤리 교사들 기득권을 무시할 수 없어서 들어줍니다.
저는 이제는 도덕윤리가 안정기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네요. 고등학교도 모두 '선택과정'으로 돌렸는데, 초등 중학교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죠. 만일 그렇게 되면 학교에서 가장 먼저 없애자고 하는 교과가 바로 도덕과 윤리입니다. 그러고는 철학으로 대체하려고 할 겁니다. 당장 2017년도 대입 과목 조정의 제1 안에 윤리교과는 들어가지 않는 것으로 나오잖아요? 수능에서 사라진 윤리 교과를 도대체 어느 학교에서 개설하려고 할까요? 기존 윤리 교사들을 상치교사로 돌려세우면서까지 윤리 교과를 없애려고 할 겁니다. 그러니 정말 이렇게 되면 도덕윤리는 이제 다 죽게 되는 건데, 지금 여기에서 윤리 교과 내용이 어려우니 빼야 한다는 한가로운 주장이 나올 수 있는 건지, 저는 정말 답답합니다.
수능에서 윤리 교과가 사라지면 윤리 교과 전체의 사망 시점이 앞당겨질 텐데, 이걸 모두 알기 때문에 아마도 극구 반대할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또 그렇거든요. 우리 교과가 인성 교육 어쩌고 하면서, '공부에 찌들어 사는 학생들이 불쌍하다'느니 '이 아이들의 인성은 어떻게 할 거냐'느니 하다 보니까, 그렇다면 우리 교과서가 '이론에 치중하면 안 된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는데, 그럼 '이론이 없는 교과서'를 무엇 때문에 시험까지 치르게 하느냐 하는 반문에 봉착하게 되죠. 수능은 물론이고, 학교 내신 문제로도 내면 안 되지 않겠어요? 왜 아이들을 '점수로 줄 세우기' 하나요? 이렇게 줄 세우기 하면 인성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겠어요?
무슨 말을 해도 자기모순에 빠지죠? 이것이 바로 교과교육학 쪽 사람들의 자가당착입니다. 저는 우리 교과가 제대로 정착하려면 무엇보다 '학문성을 향상'시켜야 하고, 그리고 교과교육학 쪽 사람들의 허무맹랑한 주장을 더 이상 귀담아 들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우리가 '똑똑해져야' 합니다.
철학은 어렵습니다. 철학과 가장 가까운 윤사도 어렵습니다.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가르쳐야죠. 다만 좀 더 알찬 내용으로 구성해야 하고, 그리고 그렇게 어려운 내용을 어떻게 아이들한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교수방법을 연구해야 합니다. 어려우니 빼버리면 된다,는 태도는 우리 교과를 확인사살하겠다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내용'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를 담지하고 있는 법입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학문 융합' 주장이 매우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것을 놓고 말하자면 이게 바로 우리 교과가 예전에 주장했던 '학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과는 '학제'가 사실상 다 사라진 상태입니다. 학제가 아직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전혀 구현이 되고 있지 못하고요. 저는 '학제'에 반대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현'만 할 수 있다면 이 학제를 우리 교과 정체성의 보루로 삼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것을 구현할 수 있는 인력 확보가 급선무가 되겠죠.
그런데 지금 우리는, 우리 교과 내 기본 학문, 그러니까 '서양사상과 동양사상'간 융합조차도 구현할 수 있는 인력이 없습니다(교수들 중에는...서울대에는 있다고 봅니다. 그 외의 학교에는, 자신이 마치 동서양을 아우르는 사람인 것처럼 자부하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저는 그저 빙긋이 웃어줍니다.^^). '서양사상과 동양사상의 융합'을 구현할 수 있는 인력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하다못해 '서양사상 전체의 융합'을 구현할 수 있는 인력도 없죠
더 이상, 쓸데없는 곳에 우리 교과 역량이 소모되면 안 된다고 봅니다. 오직 '학문성'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과 내부는 물론, 다른 교과, 국민, 정부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지성교육, 교양교육'을 표방해야 합니다. 이런 교육을 통해서 '인성 향상'을 도모하겠다고 하면 충분히 국민과 정부를 설득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려면 우리 교과 내부의 학문적 역량이 강화되어야 합니다. 쉽지 않은 싸움이 되겠죠? 그래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가당착적이고,그래서 우리 교과를 사지(死地)로 몰고가는 소리는 정말 더 이상 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첫댓글 옳으신 말씀입니다...
말씀 중에 공감되는 내용이 있네요. 엄청난 내공도 느껴집니다. 절박함도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교과교육을 전공하시거나 현장에서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분들을 생각할 때 일부 내용은 따갑고 아프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해법도 제시해주시고 긴 글로 마음을 표해주심에 감사합니다.
중학교에만 근무해 본 저경력 교사로서 아직 부족한 저인지라 그저 많이 느끼고 갑니다.앞으로 저도 더 절실히 공부해야겠습니다..
저는 늘 우리 교과는 위기라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순진하게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재미있는 도덕, 윤리 수업을 한다면 그 속에 인성교육도, 이론적 충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의 글 여러 부분에서 공감합니다. 학계에 대한 실망도 크긴 하지만, 학계에 어차피 기대할게 없다면 우리 선생님들이 더 열심히 공부해서 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극히 개인적인 제 생각은 제가 수업을 통하여, 아이들 눈빛으로 느껴지는 인성의 변화, 지식의 전달, 소통이 이뤄지지 못할 때, 저 자신의 한심함을 봅니다. 기대할 수 있는 선생님을 통해서 교육이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같은 도덕 공동체 일원의 한사람으로써 선생님의 말씀에 공감하고 갑니다. 선생님께서도 우리 교과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더욱 힘을 보태주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저의 위치에서 더욱 분발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눈팅만 하다가 오랜만에 들어와서 이 글을 읽었습니다. 윤리 교사로서 공감도 가고, 따끔한 질책에 마음도 아픕니다. 현장에서 나름 애쓰고 있지만 갈수록 어렵기만 하네요. 그래도 아직은 열심히 들어주고 윤리 시간을 즐거워하는 학생들이 있어 용기 얻고 있습니다. 더 노력하겠습니다.
선생님의 의견...정말 우리 윤리과에서 깊이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선생님 같은 분이 계서서 든든합니다.
윤리교과의 생존은 정책적인 면이 현실적으로 중요하기도 하지만 교과교육의 당위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게 선생님 말씀처럼 학문성을 키우는 것이네요.
다행스러운 것은 사고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 중심으로 윤사 교과에 대한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윤리와 사상 교과는 일부학생들에게 중독성있는 과목이기기도 합니다.
문제는 성취동기가 낮은 학생들을 끌고 가는 게 힘든 현실이네요.
기간제로 중학교에 몸담고 있기는 하지만 선생님께서 해 주신 말씀이 구구절절하게 와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