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회당
고향에 간 듯 평온한 느낌이 드는 곳이 무수동이다. 무수동은 ‘근심이 없는 동네’라는 뜻으로 임금이 내려준 지명이다. 천하의 명당으로 갖춰야할 여러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아무리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이 무거워도 무수동에 갔다오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진다.
내가 무수동에 가는 것은 유회당이 있기 때문이다. 권이진 선생의 호인 유회당(有懷堂)에는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긴 집’이라는 뜻이 담겨있다. 그분은 돌아가신 부모님을 위해서 유회당을 지었고, 부모님의 묘소를 관리할 수 있는 개인 사찰인 여경암도 함께 지었다.
여경암은 유회당의 부모님 묘소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가면 산 너머에 있다. 그곳에는 한 평 남짓한 산신각과 돌탑과 부처님의 형상도 있다. 또 자손들의 교육을 위해 지은 거업재도 있다. 답사를 하다보면 창틀이나 방문, 혹은 서까래 하나에서도 “후세에 누가 나의 마음을 헤아려 줄 것인가” 고민했던 그분의 지극한 정성을 찾아 볼 수 있다.
유회당에 가는 버스는 배차시간이 세 시간이다. 시골버스라 시간 맞추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나는 서대전네거리역 지하철 입구 앞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아침 아홉시 이십 분 경에 버스를 탄다. 유회당까지는 이십분쯤 걸린다. 집에 갈 때는 한 시나 네 시에 출발하는 버스를 탄다. 유등천 다리 앞에서 천하무수마을 이정표를 따라 왼쪽으로 꺽어지면 정월대보름날 깎아서 세운 장승들이 반겨준다.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유회당 앞에 있는 넓은 주차장까지 가면 된다. 좀 생뚱맞긴 해도 현대식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다. 유회당에 들어가기 전에 정자 앞에서 잠깐 걸음을 멈춰선다. 마치 흑룡이 꿈틀대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처럼 보이는 담장을 눈여겨본다. 과연 그러한지는 여러분들도 직접 확인해 보길 바란다.
유회당 앞에는 가파른 계단이 몇 개 있다. 계단에 올라가면 솟을삼문 위 충효문(忠孝門)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충이란 마음의 중심을 잡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효의 시작은 몸을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고, 효의 끝은 부모님의 이름을 드높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충효란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충효문을 드나들 때마다 반성한다. 몸 따로 마음 따로인 나를.
왼쪽 대문 안으로 들어가서 네모난 연못 위로 놓인 다리를 건너가면 계단이 이어진다. 계단 양쪽으로는 탱자나무와 화살나무와 목백일홍나무가 오랜 세월을 견디며 서 있다. 많은 나무 중에 왜 하필 이 나무들이 눈에 밟힐까. 귤이 되느냐 탱자가 되느냐, 환경의 중요성을 보여주기 위해 탱자나무를 심었을까. 한번 뱉은 말이 쏘아버린 화살과 같으니 말조심하라는 뜻으로 화살나무를 심진 않았을까. 목백일홍나무 앞에 서면 잠시 생각이 깊어진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백일 동안 피고 지길 반복하는 목백일홍나무의 꽃. 꽃이 지면 서리가 내리기 때문에 옛날의 농부들은 서둘러 추수를 했다. 공부도 목백일홍나무의 꽃과 같아서 어느 날 갑자기 눈이 침침해지고,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는 것이 힘들어질 때가 있다. 세월 앞에서 장사 없다고 하더니 내가 요즘 그렇다. 늦은 나이에 공부하면 재미는 있으나 자기의 뜻을 펼칠 시간이 별로 없어 안타깝다. 이런 저런 생각이 이어져서 선뜻 다음 계단으로 발걸음을 옮겨놓지 못한다.
유회당 건물 안에 들어서면 벽에 걸린 한문에 눈길이 머문다. “매사필구시 무락제이의”는 매사에 옳은 일을 먼저 생각하고, 차선책은 생각하지 말라는 뜻의 가훈이다. 그분은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익히 듣고 하루도 감히 잊지 아니하였고, 밤마다 반드시 심경 30번을 있었다고 유회당집에서 고백한다. 가훈 뿐만 아니라 외할아버지의 직(直) 사상, 스승의 무실(務實) 사상까지 종합하여 생활에서 실천한 그분이 나는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유회당의 들어열개문을 조심스레 걸쇠에 걸고 밖을 내다본다. 봄이면 앞산에 벚꽃과 진달래, 그리고 목련이 한데 어우러져 한 폭의 수채화를 그린다. 여름이면 앞뜰의 목백일홍 꽃이 환하게 핀 뒤로 초록의 벼들이 춤을 춘다.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빛나는 들판 위로 햇살이 오색빛으로 쏟아지고, 겨울이면 빈 들녘 한 켠에서 아이들이 신나게 얼음썰매를 탄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은 유회당에서 밖을 조망할 때만 느낄 수 있다. 나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종종 느끼는 행운을 얻는다.
유회당의 뒤뜰에는 기궁제와 장판각, 그리고 삼근정사가 있다. 삼근정사는 대전에 하나밖에 없는 시묘살이터이다. 부모님 묘소와 주변의 꽃과 계곡이 가깝다 하여 삼근정사라 이름 지었다. 관직에 있으면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시묘살이를 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분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삼근정사를 조그맣게 지어 놓고 아침 저녁으로 부모님 묘소를 다녀오고, 주변에 꽃을 심어 놓고 감상하며, 담장 옆으로 흘러가는 계곡물 소리에 귀 기울였으리라.
삼근정사라는 현판보다 “하거원”이라는 현판이 나는 더 맘에 든다. ‘어찌 이곳을 떠날 수 있으랴’라는 뜻의 하거원은 어쩌면 내 심정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훌륭한 유회당 선생이 살았던 무수동을 내가 어찌 떠날 수 있으랴. 세세연연 많은 사람들이 무수동에 찾아와서 온갖 시름을 떨쳐낼 수 있다면 좋겠다. 그곳에서 유회당 선생의 훌륭한 인품을 느끼고 닮아갈 수 있다면 더없이 좋으련만. 끝.
* 사진 중 일부는 황금옥 선생님, 임순정 선생님께서 찍은 것으로, 한밭문화마당 답사기에 올려진 사진을 가져왔습니다.
두 분 선생님께 너그러히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