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굼벵이의 봄날기행]
우린 이제 굼벵이가 되었다.
말과 행동 굼뜨고, 먹이사슬 뒤진다.
생산자의 대열에서 벗어난 백수다.
그래서 어떻게 사느냐면,
그냥 굼벵이처럼, 해뜰녘 느릿느릿 나무 오르는 한마리 굼뱅이처럼...
칠년 컴컴한 장막속 그 기다림
자신과의 다짐은,
험난 바깥 세상 알고서야
희망의 화살촉이 꺽였다.
이어가는 거친 세상, 모진 기다림...
해뜨기전 나무 오르는 목적은 하나,
썩은 나무속 유기물이나 수액에 있었다.
이 풍진(風塵)세상 살아 간다는건,
누구의 삶이듯 모두가 고귀함이더라.
부디 그 생명 다할때까지,
스스로 발광체되어
세상 빛 한줄기로 남길 기도해야겠다.
<창녕>
친구들과 추억여행을 떠났다. 우리가 첫번째 들러는 창녕은 어릴적엔 낯설없던 곳이지만 이후 추억이 많은 곳이다.
일반적으로 예전 어린시절엔 직장이나 공부를 위하여 사람들은 보다 큰도시로 옮겨갔다. 부산사람은 서울로 가고, 진주사람은 부산으로 옮겨가며, 우리가 태어났던 농촌지역 사람들은 도시민들이 떠난 공간, 그 도시를 채웠다. 생각해보니 그게 마치 먹이사슬인양 느껴졌다.
창녕은 나의 고향 관점에서 볼땐 부산이나 대구로 가는 길목이 아니어서 어릴땐 지리부도 책에서나 알았지 실제 발딛을 경험이 있을턱이 없었다.
내가 사회생활을 하며 부산에서 진주로 직장을 옮겨오고, 산악회 활동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면서부터 창녕과 화왕산을 알게 되었다.
2009년엔가 화왕산을 왔을때 억새를 태우는 행사끝에 갑자기 산불이 발생했고, 그불로 7명이 사망하고 80여명이 다쳤던 대형 참사가 있었다. 나는 그날 산을 일찍 내려와 산불은 직접 보지 못하였고, 티비 뉴스로만 보고 저곳에 내가 있었더라면 하는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이후에도 산악회원들과 그산을 올랐었고, 남지공원을 비롯, 혼자서도 찾아가 한두번 화왕산을 오른적이 있었다.
화왕산에 얽힌 또다른 추억은 등산을 하며 산딸기를 따먹던 일과 근처 관룡산을 오르다 멀리 건너편 산자락에 하얗게 복사꽃 핀 모습의 영화에서나 봄직한 무릉도원 같은 느낌 드는 곳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어느해 친구와 그 무릉도원의 개복숭아를 따서 액기스를 담겠다는 탐욕으로 그곳을 찾아 들었으나 산길은 커녕 험난한 지형으로 바위를 걸쳐 넘는, 마치 탐험을 하듯 하여 그곳을 찾아 들었음에도 기후 탓인지 바라던 것을 얻지 못했다. 실망하여 그곳을 빠져나오다 우리를 피해 황급히 토굴로 숨어들던 뱀만 나를 놀라게한 죄로 작대기에 수차례 화풀이 대상이 되어 두들겨 맞았다.
참! 우리가 창녕을 가는 까닭은 지난번 마산 천주산 등반때 셋이서 화왕산 계곡에서 고기(중태기?)를 잡아 친구(정사장)가 사는 삼천포로 가서 안주하여 술한잔 나누고, 바닷가를 탐험(?) 하자는 제안 때문이다.
집앞까지 차를 가져온 산친구의 차를 타고 창녕으로 향했다. 삼천포에서 출발한 친구와 마산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합류를 했다.
나는 셋이 창녕을 향해가며 몇년전 삼천포 친구가 창녕 남지에서 장사를 할때 하룻밤을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던 추억이 떠올랐다.
차를 몰아 관룡산 맞은 계곡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온통 하얀 벗꽃의 향연이다. 계곡엔 띄엄띄엄 진달래가 피었고, 나무들은 부지런히 새잎을 피우고 있었다.
비온 후라 그런지 계곡물도 조금 흐르는편이다. 계곡을 오르다 중간지점에 차를 세우고, 배낭을 꺼내 메었다. 꽃피고 새잎 피어난 산길을 걸으니 기분이 매우 상쾌했다.
햇살 따스한 물가 바위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의 터줏대감 중태기를 잡을 낙시준비를 했다. 오늘따라 기온이 내려가고, 아직은 찬기운 섞인 바람이 부니 고기들이 아예 대문을 걸어 잠그고 두문불출을 하지 않을런지를 모르겠다.
낚싯대를 던저놓고, 가져간 김밥에 막걸리, 맥주로 가볍게 음주를 가했다. 바위틈에 난 둥글레잎을 따서 함께 먹으니 향긋한 맛이나 먹을만 했다.
낚시는 어땠냐고? 그건 물어서 뭐하게? 수온이 낮아 기대하지 않았던 것과는 달리 고기들이 봄 벗꽃 구경을 나온듯 하였다가 호기심에 무더기로 걸려들었다.
셋이서 차를 타고 잘못 빠진 삼천포가 아닌 제대로의 길을 찾아 친구의 집으로 향했고, 사랑과 자비 베풀지 못하고 잡아온 많은 고기를 요리했다.
주인장의 경험하지 않은 새로운 요리법과 조리사 시험에 떨어졌던 나의 합작품인 중태기 매운탕의 맛이란 상당히 오묘하여 제3자가 평가하기를 조심스러워할 지경이었다.
그러나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하며 자신들을 내려놓은 참다운 노년의 우정, 여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시간 흐르다 뒤늦게 달려간 우리들의 시력 만큼이나 침침한 불빛의 노래방, 그럼에도 흘러간 옛노래들은 과거를 잊지 못했더라.
싫어하는 외박을 졸지에 갖게된 상황이다. 숙취에 코골이로 서로에게 부담될까 방을 나누어 잠든 해안도시 삼천포의 밤은 별빛마져 고요한 우리들의 마음의 고향 같았다.
<삼천포>
아침 눈을 뜨니 천정이 낯설었다. 삼천포였다. 사실 어제는 분위기만 그랬지 술은 많이 마시지 않았다.
'잘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라던 말이 있었다. 진주에 살던 우리들은 흘려 들었으나 삼천포 사람들은 그말을 듣기 싫어 했었다.
진주 살때 삼천포를 자주갔다. 차로 40분쯤, 드라이브 산책코스도 되고, 꾼들은 이런저런 명분을 붙여 이곳을 찾았다.
한때 인접한 신수도란 섬출신 선장과 고향두고 타지로간 지인을 알게되어 뱃시간 관계없이 섬을 드나들었고, 동아리 회원들과 지인의 고향집을 무료로 숙박하는 고마운 정까지 선사받았다.
여기서도 산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그리 높진 않지만 와룡산이 있다. 언젠가 직장에서 단체로 이 산자락에 수백명 풀고 단합대회를 열었다. 그중에는 진짜배기 산악회원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꼬비풀린 망아지처럼 산악마라톤 하듯 산을 달렸다. 그때 나의 활약이 두드러졌든지, 아부꾼이 나더러 산돼지란 닉네임을 붙였다. (덩치큰?) 내가 선두서서 휩쓸고 지나가니 없던 길이 생기더라는 말이었다.
삼천포, 통영과 더불어 우리들이 자주갔던 또 다른 마음의 고향이고 싶다. 그러니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진게 아니라, 우리가 삼천포로 빠져든 것이다.
아침밥을 먹고 그너머 어촌계 없는 한적한 바닷가를 찾고 싶었지만, 여의치 않아 늑도와 창선대교를 향해 나섰다. 차를 달리다 늑도입구 노란 유채꽃 단지에서 사진을 찍었고, 초양도 휴게소에서 햇살 따스한 바다를 바라보며 한동안 살아온 세월을 회상하며 생각에 잠겼다.
다시 지난주에 갔었던 천주산을 다시 가잔다. 향해 가는 길에 짜장면 전문집에서 곱배기로 배를 불렸다.
어제도 산, 오늘도 산이다. 산친구와 나는 언젠가 자연인에 도전 한답시고 여러곳을 탐방한 적이 있었다.
천주산엔 평일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올랐다. 어제도 산, 오늘도 산이다. 운전을 하는 친구와 나는 어느해 자연인의 자릿터를 본답시고 몇군데를 함께 다닌적이 있었다.
진달래 축제일은 11~12일인데, 이미 꽃은 절정을 넘긴듯해 보였다. 그래도 전망대 많은 사람들속에서 온통 분홍으로 물든 산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돌아오는길, 우리들의 가슴속엔 뭔가 허전함이 남았다. 그게 무엇일까? 세상이 우리들이 살아오며 염원해온 바람처럼 평화롭지 못하고, 전쟁과 경제난에 찌든 것이란 생각이 들었고, 우리들도 새로운 마음가짐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아닌가 싶다.
아무튼 수고와 배려를 아끼지 않은 친구들의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