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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뜻 1 - 항상 기뻐하라(살전 5:16-18)
할렐루야!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무엇보다도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특별히 하나님의 뜻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해 놓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요한복음 6:4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거룩함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말했습니다.
셋째,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인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을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행동의 제재를 받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생각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면서도, 참 기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기쁨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우울한 일들, 답답한 일들만 가득한 세상 같습니다. 뉴스를 보면, 기뻐할 일보다는 가슴이 먹먹한 일들만 들려옵니다.
사업이 잘 되고, 승진하고, 시험에 합격하고, 일이 잘 풀리면, 누구나 기뻐합니다.
그러나 실패하고, 일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고, 큰 마음 먹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가지고, 투자했는데 손해 보고, 전혀 예기치 않는 사고가 나고, 감당할 수 없는 고난이 다가올 때, 기뻐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일이 잘 풀릴 때, 기뻐하는 것, 그 누가 못하겠습니까?
빌 웨버라고 하는 사람이 쓴 “기쁨을 생산하는 책”을 보면, 우리 인생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열 가지 요소가 나옵니다.
“거부감, 분노, 원한, 스트레스, 열등 의식, 좌절, 비젼이 적음, 비젼 없음, 낙담, 외로움”
이 열 가지 요소가 우리의 삶에서 기쁨을 빼앗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우리의 마음에 두어서는 아니됩니다.
우리의 기쁨을 그러한 것에 빼앗겨서는 아니됩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불안, 두려움, 분노, 미움, 질투, 욕망, 이기심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의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화가 나고, 어떤 사람이 너무 밉고, 혹은 불안하고, 두렵고, 어렵고, 사는 것이 많이 힘든 데, 마음 속에 이런 감정들이 가득 차 있을 때, 참으로 기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겉으로는 기뻐하면서 사는 척, 할 수는 있지만, 속 마음은 울고 있을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할 수 있지만, 속으로는 분노로 부글부글 끓어오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즐거워할 수 있지만, 속으로는 외롭고, 힘들 수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열심히 살고 있지만, 실제로는 삶의 의욕이 적을 수 있고, 사는 재미가 하나도 없을 수 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절대로, 기뻐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을 하나님 앞에 모두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회복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이 무엇일까요?
데살로니가 전서 5:16-18절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우리의 가슴을 깊숙이 파고드는, 심금을 울려주는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과 삶이 기쁠 때 기뻐하고, 편안히 기도할 수 있을 때 기도하고, 감사한 일이 넘칠 때 감사하는 일! 그 누가 못하겠습니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항상 기뻐한다고 하는 것은 환경이 좋으면 기뻐하고, 어려우면 슬퍼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분 내키면 기도하고, 기분이 안 좋으면 기도를 쉬는 것이 아닙니다.
감사할만하면 감사하고, 도무지 이해가 안 되고 용납이 안 되면 불평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일지라도,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사람이 항상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어떤 분은 “이 세 가지, 기쁨, 기도, 감사는 믿음의 동산에서만 피어나는 아름다운 세 송이의 장미꽃입니다. 이 세 가지는 믿음의 니무에서만 열리는 세 가지 열매입니다. 이 세 가지는 믿음의 광산에서만 캘 수 있는 아름다운 세 종류의 보석입니다. 이 세 가지는 믿음의 바다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세 개의 값진 진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내 뜻을 모두 다 내려놓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오늘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 가운데, “항상 기뻐하라”에 집중하고자 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아멘.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당시,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적어도 두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기독교에 대한 박해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인 어려움이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 사도를 비롯한 열두 사도 대부분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네로 황제 시대에, 순교를 당하였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수많은 성도들이 카타콤이라고 하는 지하 동굴에 숨어 살았습니다.
지하 동굴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지하 동굴에서 살다가, 죽은 성도들도 있었습니다.
지하 동굴에 숨어 있다가도, 잡히면,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짐승의 밥이 되고, 화형을 당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있었던 또 하나의 어려움은 경제적 빈곤이었습니다.
성도들 중에는 부유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만 절대 다수는 가난한 성도들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핍박과 경제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핍박을 받아도 기뻐해야 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어도, 기뻐해야 합니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낙심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원하는 일이 성취되었을 때, 기뻐하는 것처럼, 어렵거나 힘든 일에도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히려, 장래에 대해서 소망을 가지고, 기뻐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라고 말했습니다.
초대 교회 당시, 복음을 전하시던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본 사람들도 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제자들에 의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으면서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면서도 믿었습니다.
그들은 핍박과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을 누리면서,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누군가의 전도를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그리고, 기쁨으로 신앙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을 가만히 생각만 해도, 마음이 기뻐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더욱더 기쁨이 넘쳐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시니, 기쁘지 않습니까?
버림받아도 마땅한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에게 은혜를 주시니, 기쁘지 않습니까?
성령님이 나를 위로해 주시니, 아주 많이 기쁘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의 나라입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기쁨의 나라입니다. 염려나 슬픔이 있는 곳이 아닙니다.
다윗은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시 16:11)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다윗의 고백처럼, 주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님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는 곳입니다.
슬픔과 고통과 괴로움을 당할 때, 우리는 어디를 찾아 가야 됩니까?
주님을 찾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계신 교회를 찾아야 합니다.
열심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사도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고 말했습니다.
원망할 수 있고, 불평할 수 있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오히려 기뻐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형편이 좋을 때에만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편이 좋지 않을 때에도 기뻐해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가리켜,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형편을 보면, 근심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지만,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항상 기뻐하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형편에 따라, 기뻐해도 되도,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편에 있든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기쁨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기쁨이 주어져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사 35:10)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면, 희락을 띄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마음에서 사라집니다.
슬픔과 탄식은 약을 먹어도 사라지지 않는데, 하나님 앞에서 희락과 기쁨을 얻으면, 저절로 슬픔과 탄식은 사라집니다.
잠언 17:22절을 보면,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했습니다.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고 했습니다. 즐거운 마음은 병을 낫게 합니다.
그러나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한다고 했습니다. 근심하는 마음은 뼈를 마르게 합니다.
여러분! 왜, 사람들은 기뻐하지 못할까요? 살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렵고 힘든 시기에 기뻐할 수 없는 이유는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앞이 캄캄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아질 것이라고 하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기뻐하지 못합니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어두운 터널이기에, 도저히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소망의 하나님이십니다.
로마서 15:13절을 보면,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소망의 원천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5:3-4절을 보면,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기쁨의 반대는 슬픔이 아닙니다. 기쁨의 반대는 절망입니다.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지금 살아가는 삶이 힘들고 어려워도, 내일의 소망이 있으면 절망하지 않습니다. 웃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형편이 아무리 좋아도, 내일의 소망이 없으면 절망하게 됩니다. 웃을 수가 없게 됩니다.
여러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가운데, 두 번째가 희락입니다. 기쁨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고 말했습니다.
기쁨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경제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열심히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3:52절을 보면,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 제자들은 많은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항상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은 곧 기쁨 충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저절로 기쁨도 충만해집니다.
염려와 근심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 충만한 사람이 아닙니다.
늘 주 안에서 기뻐하는 사람이 바로 성령 충만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것”이 무엇일까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
이것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요 16:22)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쁨은 영원한 기쁨입니다. 변치 않는 기쁨입니다.
때로는 우리의 형편이 나빠져도, 때로는 고통이 찾아와도, 빼앗기지 않는 기쁨입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쁨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기쁨을 빼앗을 자가 누구입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아무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을 누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감옥 안에 쇠사슬에 메어 있습니다. 햇빛도 들지 않는 축축한 곳에 갇혀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는 기뻐하였습니다.
우리도 찬양 중에, 기도 중에, 말씀 읽는 중에, 말씀을 듣는 중에,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시편 37:4절을 보면,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고 말했습니다.
시편 4:7절을 보면,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 마음 속에 기쁨을 주십니다.
우리 마음 속에는 주님이 주신 기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면, 기쁨이 있습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기쁨이 샘솟습니다. 예배를 가까이 하면, 기쁨이 넘칩니다.
기도를 가까이 하면,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사마리아 수가성에 살던 여인은 웃음도, 기쁨도 없던, 불행하기 짝이 없던 여자였습니다. 그녀에게는 기쁨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이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나자, 너무 기뻐서,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여인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마을로 들어가 예수를 전했습니다.
사람들을 피해서, 낮에 물을 기르러 나오던 여자가 사람들을 만나러 마을로 뛰어갔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기쁨에 넘쳤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며, 기쁨이 넘칩니다.
여러분! 교회 나오는 것이 기쁘고 즐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기쁘고 즐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기뻐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를 부르시고, 우리를 택하여 이 자리에 있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여 주시고,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건져 주시고, 우리를 절망 가운데서 일으켜 세워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크고 놀라운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기에, 우리는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기쁨의 하나님이십니다. 혼란과 무질서, 불법과 불의, 탈법과 부조리, 부정과 부패, 이러한 것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라 기뻐할 것들이 별로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뒤틀어진 세상을 바로 잡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앞이 캄캄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시계는 지금도 돌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보면, 우리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을 보면서, 어떻게 기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 속에 기쁨을 두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기쁨이 있기에, 우리는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악한 세상을 바로 잡아 주실 것을 알기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악인이 형통한 것 같지만, 하나님은 선한 이들을 결코 버리지 않음을 알기에, 기뻐할 수 있습니다.
찬송가 325장입니다.
“예수가 함께 계시니 시험이오나 겁 없네.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를 위해 삽시다. 날마다 주를 섬기며 언제나 주를 기리고 그 사랑 안에 살면서 딴 길로 가지 맙시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이 찬송가의 가사처럼 우리는 기쁨의 근원 되시는 예수로 말미암아 늘 기쁨이 넘쳐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우리 주변의 환경을 바라보노라면, 기쁨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우리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진정 기뻐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명령 따라 살아감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뜻은 이 힘든 세상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기도합니다.
은혜의 주님!
주님을 바라보오니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원망과 불평은 사라지게 하시고,
오직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께서 늘 함께 하여 주시고.
붙들어 주시고,
은혜 주시고,
기쁨 주실 줄 믿사오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