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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순 사회공헌위원회 위원장이 아프리카 남수단에 봉사활동을 하러 갔을 때였다. 25시간의 긴 비행 탓에 속이 울렁거려 도착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못한 김 위원장은 숙소에 와서 빈속으로 잠자리에 누웠다고 했다.
그런데 너무 허기가 져서 잠도 안 오고 어지럽기까지 했는데 가방을 아무리 뒤져도 먹을 것은 나오지 않았다. 다음날 목적지 남수단 ‘보루’까지 가려면 경비행기를 타야 하니 모든 짐을 공항에서 트럭으로 실어 보냈기 때문에 당장 먹을 식량이 없었다는 것이다. 한참 동안 배낭을 뒤져보니 지난번 등산 때 남은 사탕 한 개가 나와서 사탕을 먹고 물을 마시니 잠시나마 허기를 달랠 수 있어 잠을 청할 수 있었다.
이때 김귀순 위원장은 굶주릴 때는 사탕 하나도 큰 도움이 된다는 걸 절실히 느끼면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마치 원효대사가 잠결에 해골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했던 것과 같은 큰 깨달음이였던 것이다.
세무사신문 인터뷰를 통해 김 위원장은 “사탕 하나로 어려운 사람에게는 작은 나눔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다”며 “나눔은 사는 동안 주변에서 받은 혜택을 다시 사회로 돌려주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 보릿고개에 곳간 문을 활짝 열어 곡식 나눠주던 조부모님 통해 ‘나눔의 가치’ 배워
김귀순 위원장은 조부모님께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서 태산보다 넘기 힘들다는 보릿고개 시기가 되면 곳간을 활짝 열어 이웃들에게 곡식을 나눠주셨고, 아이를 낳은 집이 있으면 미역, 쌀, 고기를 사다 주며 내 일처럼 축하해주고 봇짐 장사들에게는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하셨어요”
이후 1981년 종로 YMCA를 통해 고아원에 있는 보모들이 일요일 교회를 가는 시간마다 고아들을 돌봐주는 봉사활동을 하며 마음속 깊이 ‘나눔의 불씨’가 피어올랐다고 한다.
이러한 봉사 경험은 김귀순 위원장을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게 이끌었다. 김 위원장은 “사회복지학 석사 과정 중에 무료 양로원이나 고아원을 운영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어요. 그런데 공부를 마치고 보니 우리나라의 경제 수준이 올라가 양로원은 수익사업이 되어버렸고 고아원은 거의 다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시설을 운영하는 분들을 도와주기로 마음먹고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경기남부 후원회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 서울구치소 교화위원, 하나여성회 공동대표 맡아 저소득층 및 북한이탈 주민 자립 지원
줄줄 읊어 내려가는 그녀의 봉사활동 이력과 후원단체에서 맡은 직함들을 들어보니 정말 한 사람이 다 해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여성세무사회장 시절 임원들과 함께 펴낸 「여성세무사들의 세금이야기」와 「여성세무사들과 함께하는 세금가이드」의 판매 수익금 전액을 저소득층 및 중증장애아들을 위해 기부했고 서울구치소 교화위원으로 활동하며 제소자들의 정서적 안정을 위해 구치소 안에 그림을 걸어주고, 모범수들의 가족 만남 집에 가구 등 물품을 기부했습니다”
또 안양검찰청에서는 범죄피해자보호위원으로 범죄 피해를 입은 저소득층을 도와주고 상담하는 일을 했다. 남부법원과 안양법원에서는 조정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여성재단에서 감사로 활동하며 저소득층 여성들의 사회활동을 돕기도 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여성세무사회 회원들과 자식들을 잃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곰탕과 순두부찌개 등을 제공하고 주변 환경정화 활동에 힘썼다. 또 장마 기간 수재민이 된 독거노인들을 찾아 도배와 집안 정리를 해주고 겨울을 대비한 방한용품을 기부했다.
북한이탈 주민들의 남한 사회 적응을 돕기도 했다. 사단법인 ‘하나여성회’의 공동대표를 하면서 북한이탈 주민들이 남한 사회의 당당한 일원이 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지난해 9월, 한국세무사회 제33대 임원 및 임직원들과 함께 다녀온 한사랑 마을의 봉사활동도 기억에 남는 사회공헌활동으로 꼽았다.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한사랑마을’은 본인 의지로 식사도 할 수 없고 휠체어로 이동할 수 없는 뇌병변 환아 등 중증장애우들이 거주하는 시설이다.
김귀순 위원장은 “당시 점심식사 봉사로 짜장면을 먹여주니 장애우들의 표정이 밝아지고 햇볕산책을 할 때 너무 좋아하던 모습이 선합니다. ‘한사랑마을’ 건물이 보이면 혹시 산책을 마치고 들어갈까봐 휠체어를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들어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했습니다”
◆ 지진 피해 네팔과 세계 최빈국 남수단에 직접 찾아가 구호활동
국제사회에 온정의 손길을 내미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난 2015년 네팔 지진 이후 NGO 단체와 함께 네팔 ‘땅딩’이라는 산골 오지마을의 학교를 찾아 컴퓨터와 학용품, 생활용품 등을 직접 이고 지고 날랐다고 했다. 네팔 정부 고위층의 부정부패가 심해 정부에 기부금을 전달하면 지진 피해복구에 사용하지 않고 빼돌리는 문제가 있어서다.
“네팔은 산악지대가 많아 머리 위로 석청이 떨어지는 절벽 길에서 줄을 타고 물을 건너 직접 구호물품들을 전달하러 갔었어요. 그때는 몰랐는데 보기만 해도 아찔한 길을 지프차로 해발 2,300미터 산악지대까지 올라간 거였어요. 매우 힘들었었는데 나중에는 아름다운 히말라야산맥의 풍경으로 잠시 위로받기도 했었습니다”
또한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활동하며 세계 최빈국인 아프리카 남수단을 찾아 현지 어린이들에게 자전거 2,000대와 학용품을 전달하고 집을 지어주는 구호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고 이태석 신부의 활동 지역으로 유명한 남수단은 39년간 내전을 겪어 주요시설들이 거의 파괴된 상태였다고 했다. “남수단 수도 ‘주바’에 도착했다가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 수원쯤에 해당하는 지역 ‘보루’로 이동했는데 사람들이 누더기 옷만 겨우 걸친 신석기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 세법 전문가 세무사로서의 강점 살려 세금 지식 부족한 서민들을 위해 봉사해야
회원들에게 당부하는 한마디로 “세무사로서의 강점을 살려서 사회공헌활동에 적극 나설 것”을 조언했다.
김귀순 위원장은 “세무사를 하다 보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예전에 양도세가 너무 많이 나와서 본인이 죽으면 세금이 없어질 것이니 가족들을 위해 목숨을 끊겠다며 3일 내내 굶은 분이 지인의 등에 업혀 온 적이 있었어요. 그분의 사연을 듣고 보니 실제 양도가 이뤄진 게 아니라 법적으로 양도 처리된 것이었어요. 이를 어렵게 증명하여 결국 양도세를 감면받게 해주어 생을 마감하겠다는 분도 살려냈습니다. 세법이 어렵고 자주 바뀌니 법의 도움을 받기 어려운 서민들을 위해 도움을 줘야 합니다”
돈이나 물품만 기부하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힘을 쓰는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더 큰 의미를 찾을 것도 권유했다.
“한국유엔봉사단에서 활동할 때 매년 연말마다 언덕배기 달동네를 찾아 연탄과 쌀을 제공했었는데, 물품을 기부한 다음날 다시 그 동네에 가보니 어제 기부했던 쌀 포대가 동네 슈퍼마켓에 그대로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놀라서 물어보니 달동네 사람 대부분이 쌀을 가져와서 술로 바꾸어 갔답니다. 그 이후로는 물품만 기부하는 것보다 직접 몸으로 하는 봉사활동에 참여해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저 역시 함께 성장하는 소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제33대 한국세무사회에서 ‘한사랑마을’의 장애아들을 만나 봉사활동을 했던 것처럼 물품 기부와 직접 하는 봉사활동, 두 가지 모두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봉사활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허지혜(대외홍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