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나루에서 막걸리 한 잔에 딱딱하게 응고된 덩어리가 허물허물 녹아내렸다. 마주 앉은 님의 장단도 흥겨웠고 토착 유지들의 포용력이 옹졸했던 자기도취를 부끄럽게 했다. 같은 성씨라는 이유로 문밖까지 나오며 손을 잡아주시는 칠순의 예천고시조협회장(?)님의 모습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어디로 갈까요? 동행인에게 물었더니 그냥 따르겠단다. 문화유산 보다는 절집 분위기를 좋아하는 님이기에 청룡사와 수정사를 떠올리며 방향을 잡았다. 예천읍내 직전 차가운 강바람이 부는 선몽대에서도 솔바람소리에 흠벅 젖는 님은 사춘기 소녀 모습이다. 문득 연암의 열하일기가 스쳐간다. 세상사 생각하기 나름인 것을...
비록 마음 달래기 위해 길위에 섰지만 그 길에 계시는 우리 옛님을 피해갈 수 있겠는가? 동행한 님도 싫어하지 않을 것으로 해석하고 지난 여름, 가을 다녀온 옛님을 다시 더듬는다.
선몽대
청룡사 탑
지난 여름
장대비 맞으면서 찾아든 객에게 우산을 받쳐주며 법당에 촛불 밝혀주셨던 예쁜 보살님은 아직 계셨다.
청룡사 석불
일배일배. 님은 무엇을 저렇게 정성스럽게 빌까?
내 숨소리마져 들릴 것 같은 적막함이 법당에 내려 앉은 듯 하다.
하루종일 적요.적막을 이야기 하시더니...
개심사지 오층탑
미스 고려도 변함없이 S라인을 뽐내면서 봄마중에 분주하다.
동본동 석불, 석탑.
-.저기 광배가 참 멋지죠?
-.광배를 아세요? (내가 님을 너무 몰랐구나.)
석불 뒷편 두 그루 목련이 광배로 보인다고 했다. 참으로 고운 시각이다.
탑리 오층탑을 아세요? ....
오층탑은 모르지만 여기가 탑리인가요?
음. 금년도 대구매일 신춘문예 소설부문 당선작이 '탑리에는 숨 쉬는 비아그라가 있다' 이거든요.
ㅎㅎ 흐물흐물 무식을 캄프라쥐 하면서 반전을 도모하며 석탑 앞에 모셨다.
엄청 좋아하신다. 갈길은 멀건만...
빙산사지 오층탑.
이상타.
영 반응이 없다. 가을에 오시면 좋아하실까?
"수정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신라 신문왕 때(681~691) 의상대사가‘수량암(修量庵)’이라는 이름으로 건립하였다고 하는 구전만 있을 뿐, 조선 중기까지 전하는 사적이 없어 상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수량사(修量寺)’라고 나와 있으나, 18세기의『가람고(伽藍考)』에서는‘지금은 수정사(水淨寺)라고 부른다.’고 나와 있다. 특히 조선 선조 25년(1592)의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 유정스님이 머물면서 금성산(金城山)에 진을 치고 왜적을 격퇴했다. 그러나 조선 헌종 1년(1835)에 큰 불이 나 대광전만 남기고 모두 전소되었다"...한국전통사찰정보
사화산인 금성산 기슭 수정사 대광전. 막돌 허튼층 기단이 퍽 인상적인 수정사의 금당이다. 단층 루각 월영루를 맞보고 있으며 전체적으로는 요사와 격외선원이 口자 형태의 전형적 산지가람이다.팔작지붕에 앞면 5칸, 옆면 3칸 이익공, 주심포이다.
대광전 어칸 창살, 불발기창을 보니 이제는 볼 수 없는 산청 율곡사가 떠오른다.
5칸 정면 좌우 대칭 협칸 창살이다. 공덕이 깃 든 띠살, 빗살, 꽃살창이다.
덤성덤성한 바자울이 멋진 선방. 시절을 잊고 아직도 동안거 중인가?
산령각도 아직 봄볕이 낯선가 보다.
곳간채
부지런한 스님 덕분에 겨울을 나고도 장작이 가득하다.
겨우내내 공양상에 올랐을 시래기도 아직 주렁주렁 달려있다.
요사 측면.
바로보이는 벽이 부억이다.
요사 쪽마루
마루끝에 불단을 모셨다. 조왕신인가? 왜 확인하지 않았을까?
저녁무렵 산사. 너무도 좋아라 하는 님의 얼굴에 덩달아 덜렁꾼이 되었다.
부엌 조왕신
작년 부여 답사(옛님의 숨결 조회요)시 민간집에 조왕신이 모셨다고 찾아 갔지만 만나지 못했는데 절집에서 만나다니. 민간신앙과 흡습된 산신각은 이제 절집 배치에서 빠질 수 없는 전각이지만 조왕은 유례가 없을 것 같다. 민간에서도 자취를 발견하기 어려운 조왕신이다. 다음에서 조왕신에 대해 가져 왔다.
"조왕신은 부엌을 수호하는 신이며, 그 기원은 불을 다루는 데서 유래한 것 같다. 이는 인류가 보편적으로 원시시대이래 불을 신성시하여 숭배한 것과도 통한다. 부엌은 불을 사용하여 음식을 만드는 곳이기도 하고, 음식을 만들 때 자연 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과 물을 동시에 사용하는 곳이다.
그래서 때로는 조왕신이 물로 상징되기도 한다. 그러나 조왕신은 원칙적으로 불을 모시는 신앙이다. 불씨를 신성시하며 이사를 갈 때 불을 꺼뜨리지 않고 가지고 가는 풍습이나, 이사간 집에 성냥을 가지고 가는 풍습은 모두 불을 숭배하던 신앙에서 유래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제법 하루해가 길어졌건만 산사에는 봄볕이 짧다. 하루종일 찾아 헤매어도 그리움의 원천은 잡히지 않는다. 그런 감정이 남아 있긴 하는지 모르겠다. 시낭송을 즐긴다는 님에게 수정사 종소리를 전해야겠다. 내귀에 돌아 들려올 고운 목소리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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