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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1세의 리더십
수년전 뉴욕 타임지는 지난 천년동안 최고 리더를 엘리자베스 1세로 선정한바 있다 이 사실은 경탄할 만한 사실 이다 남존 여비 사상이 강했던 16세기 인물이기 때문이다 예전 이나 지금이나 국가나 사회의 리더는 대개 남자였다 역사적으로도 여자는 리더가 아니고 추종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엘리자베스 1세는 모든 뛰어난 남성 리더를 제치고 리더의 최고봉에 우뚝 서게 되었으니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 ? 엘은 1533년 9월 7일 영국의 그리니치 궁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부모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영국왕 헨리 8세 로서 결혼을 무려 6번 이나 했다 첫번째 부인이 아들을 못낳자 이혼하려 하였다 그러나 교황청이 이혼을 허락하지 않자 그는 카돌릭을 무시하고 앤과 결혼 하여 엘이 태어난 것이다 헨리 8세는 아들이 아닌 딸을 낳은 앤을 간음과 반역죄로 몰아 처형 하였다 만약 엘이 사내 아이 였다면 어머니는 처형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기구한 운명속에 태어난 엘이 여왕이 되었다는 것은 신의 특별한 은총 이라고 표현할수 밖에 없다 왕실에서 중요한 것은 아들이지 딸이 아니었다 아들은 왕에 오를수 있지만 딸은 기껏 왕비가 될수 있을 뿐이었다 우여곡절 속에 엘이 여왕이 되어 대관식을 치르고 나오는데 어느 국민이 그를 보고 " 맙소사 ! 우리의 왕이 여자라니 ! ' 라고 소리를 첬다 한다 이말속에는 여자가 과연 한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수 있을까 하는 우려 스러운 심정이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남자는 흔히 " 여자가 뭘 - - - " 이라고 말한다 우리나라 에서도 여자에 관한 비하의 말들이 있다 " 암닭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 " 여자와 북어는 두들겨 펠수록 맛이 난다 ' 등의 말이다 현모양처 라는 말도 남자가 여자를 구속하기 위하여 지어낸 말이라 한다 남자들은 여자들을 경멸해 왔지만 여자들도 다른 여자들을 경멸한다 그런데 후자가 더 나쁘다고 생각된다 엘 1세를 연구 하면서 남자나 여자 모두 여자에 대한 선입관 이나 열등감을 불식 시켰으면 한다 여자도 올바른 방식으로 리더십 훈련을 하면 남자 못지 않게 리더의 역할을 감당할수 있다 엘리자베스 1세는 25세에 여왕으로 등극하여 45년간 영국을 통치 하며 당시 촤고로 부유하고 강한 나라를 만들었다 여왕은 즉위하자 마자 네치에 힘썼다 개혁에 착수해서 신구교 간의 종교적 갈등을 해결하였다 이는 메리 1세때 대립한 카돌릭과 프로테스 탄트 대립 이었는데 엘은 어느편에 치우치지 않고 슬기롭게 지혜를 발휘하여 자연 스럽게 주교 선거를 피하면서 프로테스탄트 쪽에서 주교가 되면서 엘 1세 에게 교회 수장직을 제의 해왔으나 거절하고 대신 수석 관리자 를 맡겠다며 교회 논란에서 피할수 있었다 당시 양 교파를 의식하여 " 이 세상에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 한분 뿐이며 그외 것들은 모두 하찮은 것에 대한 부질 없는 논쟁 이다 " 는 말과 서로 주장하는 종파의 말에 " 나는 인간의 영혼을 들여다 보기 위해 창문을 열지는 않겠습니다 " 라고 말했다
의회와 타협하여 왕권을 안정 시킨뒤 화폐 개혁으로 인플레이션을 잡아 국민의 생활을 안정 시켰다 추밀원 중심의 정치를
해서 행정부의 권한을 되찿고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등용 시켜 중앙 행정과 지방 행정을 잘 관장 할수 있도록 하였으며 각종 공업 분야를 보호, 유성 하였고 해외 무역도 장려 하였다 빈민 구제법을 만들어 농민들을 보호 했다 이러한 괴정에서 의회의 거센 반대 발언을 하는 의원에게 " 나는 당신의 머리 만큼 당신의 키를 줄여 줄수도 있습니다 " 라는 말로 기를 꺾기도 했다 그는 외치에도 힘을 써서 영국을 위협하던 스페인 함대를 향하여 " 내가 연약하고 가냘픈 여자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국왕의 심장 말입니다 " 라는 말과 프랑스 왕과 관련된 로맨스 중임을 내세워 20살 차이나는 나이가 무색하게 약혼까지 하겠다는 엄포로 맞섰다 결과적 으로 스페인 위협은 사라졌다 또한 동인도 회사를 설립하여 인도에 진출 기지를 확보하고 북미의 버지니아 식민지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그는 문학과 예술의 발전에도 많은 지원을 하여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하였다 자신이 문학에 뛰어난 재능이 있었으며 많은 공부로 7개 외국어를 구사 할줄 알았으며 훌륭한 문장과 시를 읊기도 했다
님은 떠나는데 ( 엘리자베스 1세 )
나는 애통해 하지만 감히 불평을 들어 내지는 못합니다
나는 사랑 하지만 아직도 미워 하는 척 하려고 합니다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속으로 부터는 끝없이 재잘 거립니다
나는 나면서도 아니고 얼어 붙었으면서도 아직 불타 오르고 있습니다
내 자신 으로부터 또 다른 자신 에게로 돌아서기 때문 입니다
세계적인 극작가 세익스 피어가 이 시대에 배출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의 오랜 치세 기간에 영국은 전성기를 이루었으므로 당시 국민들로 부터 "' 훌륭한 여왕, 베스 ' 라고 찬사 받는 경애의 대상이 되었다 엘 1세 시대의 사람들은 여성들이 지적 으로나 기잘적으로 리더심에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도덕적 으로도 수준이 낮다고 여겼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새 여왕은 신중함과 대담성 그라고 뛰어난 지혜를 갖츤 리더십을 아낌없이 발휘 했던 것이다 위대한 리더는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깆추어야 한다 너무 강하기만 하면 부러지기 쉽고 너무 부드러우면 일이 추진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함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갖춘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여왕은 이 두거지를 함께 소유한 인물 이었다 그는 유아 시절과 소녀 시절을 평탄치 않게 보냈다 그의 어머니가 간통과 반역죄로 참수된뒤 궁정의 복잡한 세력 다툼 와중에서 왕위 계승권이 박탈되었다 또한 이복 언니 메리 1세의 카돌릭 복귀 정책에 반대 한다는 혐의를 받아 런던탑에 유폐 되는등 생명의 위협을 여러번 당했다 그가 유년기에 겪었던 이와 같은 위험과, 이에대한 절제심은 그에게 리더로서 필요한 인내심을 기르게 하였다 그는 나라를 다스릴때 필요하 경우, 단호하고 과단성 있는 태도를 취하였다 음모를 꾸민 절대 세력을 가차 없이 처단했다 순진하던 여인이 냉혈한 으로 변신한 이유는 정치적 으로 생존 할수 있는 길이란 자신의 권위를 세우는 길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의회에서 이렇게 공표 하기도 하였다 " 나는 여성의 몸이지만 내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내 지위에 걸맞는 용기를 지니고 있소 ! 나는 여러분의 신성한 여왕이오 " 그는 정적에게 결코 굴하지 않을 것임을 확고히 하였다 한번 강압에 굴복하면 그만큼 권위를 잃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몇번 그런일을 반복하면 기반 자체가 송두리째 뽑힐것 이다 그는 늘 활기가 넘첬으며 춤과 사냥을 줄겼고 뛰어난 활력과 건강으로 강한 인상을 나타냈다 그는 아무리 어려운 상테에 처했어도 눕지 않으려 했고 나이가 들어서도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하였다 그가 그렇게 한것은 힘센 남성들이 언제라도 그녀가 약한 기색을 보이기를 호시 탐탐 노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인내심과 끈기를 길렀으며 결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가벼운 병을 과장 하지도 않았다 리더는 힘과 자신감을 추종자 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게다가 부드러운 이미지도 구축 하였다 그는 백성들이 자신을 동정녀 마리아로 인식 하려 하였고 조신들과 시인들이 자신을 " 처녀 여왕 " 이라고 부를수 있도록 허락 했다 그는 대화를 하거나 정치적 타협을 할때도 여성이 지닌 부드러운 이미지를 최대한 활용하였다 리더는 문제를 잘 해결 해야 한다 특히 난세에는 더욱더 지헤를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 해야한다 그렇지 못하면 안정과 발전을 도모하지 못한다 위인에 대한 평가는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엘 1 세 여왕은 당대 최대 문제인 신,구교 갈등의 해결 이었다 종교적 신념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절대적 가치 이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양보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종교적 사회 에서는 친구 아니면 적 이라는 아분법 사고가 지배 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극단으로 치닫게 되어 대량적인 살육도 불사하는 결과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그는 국교 이외의 종교에 대해 상당히 관용적인 여왕 이었다 그는 전대 왕 이었던 매리 1세 처럼 수백명의 신교도 들을 화형 시키지도 않았고 카트린드 베디시스 처럼 수천명의 위그노 들을 학살 하려 들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는 영국을 분열로 몰아 넣을수 있는 종교 분쟁 만큼은 확실히 종식 시켜야 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는 청교도 들과 카돌릭 교도들을 잘 도닥 거렸다 당대의 다른 지배들과는 달리 그는 중용과 타협의 정신으로 모든 국사를 처리 하였다 그는 아버지 헨리 8세 와는 대조적으로 신학적 논쟁을 의식적으로 피했던 것이다 그는 종교적 합의는 분명히 밝히고 신학의 미세한 논점에 대한 논쟁은 일체 하지 않았다 그는 종교 문제에서 국가 정체성을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 통일된 종교가 있어여 함을 믿었지만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개인적 신앙의 자유를 억압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많은 역사가 들은 엘 1세 시대에 영국이 전반적인 국가 번영과 경제성장 , 문화창달을 이룩할수 있었던것은 여왕이 양심의 자유를 보장 해 주었기 때문 이라고 말한다 고대 로마 황제들 이나 징기스칸이 대제국을 다스릴수 있었던 한가지 비결은 그들이 각 민족의 종교에 대해서는 관용을 배풀었기 때문이다 리더는 아랫사람 정책과 작업에 관한 지침에 대해서는 복종을 요구 할수 있지만 개인의 정신과 종교까지 통제 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엘 1세는 25세에 여왕이 되어 45년간 통치하다 70세에 사망 하였다 독신으로 생을 마치긴 했지만 소꿉 친구 로버트 더들러 와의 풋사랑, 프랑수아 와의 약혼을 내세운 정략적 발설, 염문, 위기시 돌보아 주었던 여섯번째 새엄마의 남펀 의 끈질긴 유혹 속에서 여왕 재직시 한말은 " 결혼한 여왕으로 사느니 차라리 독신인 거지로 살겠다 " 였다 종합해 정리하면 1, 그는 어린 시절에 정치적인 이유로 몇번씩 이나 죽을 뻔한 일을 체험했다 이 경험을 통해서 그는 위기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터득 하였다 2, 그는 백성들에 대해서 누구 보다도 잘 알았다 그들의 요구와 기대를 최대로 충족시켜 주도록 노력 했다 따라서 백성들은 그를 사랑했고 존경했다 3, 항상 원칙과 도덕을 중시하는 원칙 주의자로서 한편 으로는 고도의 타협과 술수도 능했던 마키아 밸리형 군주였다 이것이 난세를 다스려 나가는데 있어서 효과가 있었다 4, 균형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중용을 매우 중시 했으며 업무에 있어서나 인사에 있어서 양 극단의 어딘가 에서 적정선을 찿을줄 아는 사람 이었다 5, 자기 관리를 철저히 했다 건강뿐 아니라 시간 관리도 철저했다 6, 신앙심이 돈독했다 그는 하느님의 은총을 벋은자 라는것을 확신 했고 하느님과 늘 교제 했으며 종교적 신념을 정치에 활용 하였다 7, 비젼 감각과 현실 감각을 아울러 갖췄다 앞을 내다보는 선구안이 뛰어 났을 뿐만 아니라 일의 추진력도 탁월하였다 8,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 나는 영국과 결혼 했다 " 라고 말하면서 온 기력을 국가 민족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 헌신 하였다 그가 만일 결혼 했더라면 그 시대 상황 에서는 오랜 치세(통치)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9, 여왕에 즉위 하자마자 실시한 개혁이 성공 하였고 댜내,외적 으로 번영을 도모하여 국민들의 신임을 얻었다 그것은 그가 총체적인 리더십 소유자 라는것을 증명한다 10, 항상 새로워 지려고 노력 하였다 특히 어려서 부터 학문을 좋아해 소녀 시절에 그리스 와 라틴의 고전을 배웠고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외국어와 역사, 음악, 신화에 능통 하였다 탁월한 대화술과 웅변술을 소유하도록 훈련하였다
리더가 자아 혁신을 하지 못하면 존재 할수 없다 왜냐 하면 추종자들이 구태의연한 것을 참지 못하기 대문이다 오늘 날에도 여성들은 많은 제역과 불 이익을 당하고 있다 이것을 극복 하는 길은 첫째 고정 관념을 벗어나 자신감을 회복하는 일이며 둘째, 자아 개발 이다 남자들 보다 두배 이상 노력하지 않으면 여성들은 리더의 위치를 확보하기 힘들 것이다
흔히 말하는 평볌과 비범 사이에는 시간 관리의 능력에서 가름된다 리더는 다른 사람보다 일을 많이 해야 하고 질적으로 뛰어난 일을 하기 위해서, 다양한 일들을 골고루 처리해야 하고 문제를 분명히 파악 해서 해결해야 하는것 등으로 수면 시간이 부족하여 건강에 영향을 줄수있다 또한 추종자 개개인의 필요 욕구를 충족 시켜주어야 야 하며 자기 고유 업무도 수행 하면서 자기 발전과 단체 발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직무 외애도 가정을 돌봐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한다 따라서 주어진 시간 관리를 효율적 으로 하여 삶의 균형을 유지하며 삶의 총체적 본을 보여야 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이러기 위해서는 나쁜 습관을 버라고 좋은 습관이 필요하다 습관은 처음에는 방문 이요 다음에는 단골 이요 나중에는 주인이 된다 여기서 시간의 현실적 의미를 생각해 보자 첫째. 시간은 가치가 무궁 무진한 자원이 된다 그래서 돈이라고 말할수 있다 시간은 생명이 될수도 있다 값으로 환산할수 없는 資原 이다 경험, 정보 등을 활용할수 있는 매개로서 이보다 귀한 것은 없다 그래서 시간을 낭비 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사람 이라한다 둘째, 시간만이 갖고 있는 특질이 많다 시간은 제한 되어 있고 계속 흐르고 있으며 정해진 시간은 짧다 한번 흘라가면 다신 오지 않으며 저축할수도 없다 쓰지 않아도 없어지고 모든것을 변화 시킨다 시간은 약이 될수도 있으며 시간은 결산이며 심판을 하기도 한다 이러한 시간에 대하여 자신의 시간 관리 능력을 점검 해보자
1, 내가 시간을 관리 하는게 아니고 시간이 나를 관리 하는 것처럼 매사에 쫗기지는 않는지 ? 2, 바뿔땐 너무 바쁘고 한가할때는 너무 한가 하지는 않는지 ? 3 뚜렷한 목표나 계획표가 앖이 일을 추진 하지는 않는지 ? 4, 직장 또는 내 주변 사람의 주요 목표를 인식하며 일하고 있지는 않는지 ? 5, 일을 시작 했지만 우선 순위가 자주 바뀌어서 좀처럼 완성되는 일아 없지는 않는지 ? 6, 다반사인 사소한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는 않는지 ? 7, 가장 좋은 시간에 가장 중요한 과제를 처리 하고 있는지 ? 8, 출퇴근 시간, 이동시간 여행시간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 하고 있는지 ? 9, 필요하고 중요한 정보 보다는 많은 정보를 모으고 있지는 않는지 ? 10 항상 새로운 방식으로 일을 수행하려고 노력하는지 ? 11 매사에 준비성이 있어서 미리 계획 하고 차근 차근 준비 하고 있는지 ? 12 시간을 크케 소비하는 것 ( T V 바둑 음주 도박 등) 에 중독되어 있지는 않은지 ? 13 환경이 바뀌면 새로운 현실에 잘 적응 하는지 ? 14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염려, 그리고 현재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자신이 없기 때문에 현실에 제대로 집중 못하는지 ? 15 소통하는 기술이 뛰어나지 않은지 " 16 여가 시간을 잘 활용 하지 못히는 것은 아닌지 ? 17 늘 피곤 하지는 않은지 ? 18 직장 생활과 가정 생활을 균형 있게 하고 있는지 ?
19 과거에 이룬 일도 없고 미래의 꿈도 별로 없지는 않는지 ? 20 자기 발전을 위한 시간을 거의 기질수 없고 대부분 경험에 의해서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