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산칼럼 하촌 류재호
청주 무심천(無心川) 벚꽃 10리 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에 대교천이라는 명칭으로 발견되었다고 하는데
이 명칭이 무심천이라는 이름이 붙기까지의 최초의 공식 명칭이라 할 수 있다.
무심천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무성(武城)뚝 안으로 흐르는 심천(沁川)' 이라는 의미의 '무심천
(武沁川)'이 변한 것이라는 설과 불교용어 '무심(無心)'에서 왔다는 설등 아주 다양했다.
하지만 불교용어 '무심'에서 왔다는 설이 무게를 두고 있으며, 이 설은 무심천(無心川)
하류(지금의 운천동 지역)에 사찰이 많았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는 듯 보인다.
문헌에 보면 이 지역은 한때 불교와 깊은 인연이 있었던 곳이라 했다.
청주 가덕면 내암리에 위치한 하천의 발원지에서 물이 흘러 내리는 '무심천(無心川)'은 청주를
동과 서로 가르며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하천이며, 월운천, 영운천, 명암천, 율량천, 발산천 등의
작은 내를 거느리고 있다.
무심천은 동쪽에 우뚝 선 '우암산(牛岩山, 338M)'과 함께 청주를 대표하는 자연물이며, 무심천에는
이 지명외에도 '대교천(大橋川)', '심수(沁水)', '심천(沁川)' 등의 여러 명칭이 결부되어 있었다.
청주시민의 젖줄인 무심천에는 매년 4월 초순이면 꽃비 가 내린다.
10리 뚝방길은 하얀 벚꽃이 뭉게뭉게 피어나 노란 개나리와 어울려 마치 꿈길과도 같다.
무심천변을 하얀 눈꽃으로 환히 밝히고 있는 무심천은 봄의 정취를 만끽할수 있는곳으로 청주 시민의
휴식 공간으로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곳이다.
가족들과 연인들이 손잡고 느긋하게 걸으며 바람에 휘날려 분분히 떨어지는 꽃비를 맞으며 낙화된
꽃 길을 걷는것은 이 좋은 봄날 소소한 행복이 아닐수 없다.
길어야 일주일 볼수있는 이 꽃길은 심술궂게 비바람이 한차례 내리면 우수수 무더기로 낙화되어
많이 아쉽다.
사람이 사는 도시는 세대가 바뀌고 유행이 달라지면 쉼 없이 무언가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하지만 자연은 계절에 따라 모습을 바꾸면서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꽃길> 이행(李荇, 1478~1534)
무수유화수분개(無數幽花隨分開)
등산소경고반회(登山小逕故盤廻)
잔향막향동풍소(殘香莫向東風掃)
당유한인재주래(當有閑人載酒來)
그윽한 꽃 수도 없이 인연 따라 피어나
산 오르는 오솔길을 일부러 돌아가네.
봄바람아 남은 향기 쓸어가지 말려무나
한가한 이 혹 있다면 술을 싣고 올 터이니.
벚꽃의 원산지는 한국 (제주도 한라산)이다.
벚꽃의 내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아직도 벚꽃에서 일본냄새가 난다고 한다.
벚꽃의 정확한 이름은 왕벚꽃, 학명은 '푸르누스 에도엔 시스 마쓰무라' 이 학명이 일본의 꽃으로
오해를 사게 한다. 푸르누스는 벚나무의 속명이고 에도는 동경의 옛이름, 마쓰우라는 최초의 학명을
붙인 일본학자의 이름이다.
왕벚꽃이 최초로 학계에 등장한 것은 1901년 동경대학 松村任三 교수가 동경에서만 자라는 나무라 하여 이
같은 학명을 붙였다.
벚꽃이 일제히 활짝 피었다가 말끔히 낙화하는 모양이 마치 일본의 무사정신이나 국민성을 상징하고 그들의
기질에 맞는다하여 이때부터 제2의 국화로 삼았다. 황실의 꽃으로 국화를 정한데 이어 왕벚꽃 (사쿠라)를
백성들의 꽃으로 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무렵 1908년 남제주 성당에서 근무하던 프랑스인 에밀 타케신부가 한라산 북쪽 관음사 뒷산
해발 6백M 지점에서 왕벚 꽃나무를 채집했다.
당시 세계적인 권위자 독일의 베를린 대학 괴네교수에게 이를 보내 제주도가 왕벚꽃의 자생지로 확인 발표해
동경의 벚꽃이라는 주장이 무색하게 됐다.
이때부터 왕벚꽃의 족보를 놓고 세계학자들 간에 논쟁이 일기 시작했으나 일본에서는 한군데서도 자생지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각종 문헌에서도 일본 벚꽃은 제주산 임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는 현재 왕벚꽃나무 2백년생이 군락을 이루고있다.
첫댓글 무심천의 유래와 전설 벗의 진풍경 너무나도 생동감 있는 상식
아주 좋아유
회장님 1박 2일 잘 다녀오셨지요. 산에한번 가야하는데 자리가 없군요.
다음에 가겠습니다.
오세요, 자리가 없으면 제자리라도 드리겠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