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민족은 솔로몬 왕 시대 이후 내분으로 "남 유다" 와 "북 이스라엘" 둘로 갈라졌다.
그리고 예언자들의 계속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문란한 생활 끝에 남북 모두 이민족에게 점령 당했는데,
남 유다는 바빌로니아한테 멸망해 지식층을 포함 지도층 대부분이 바빌론으로 끌려 갔는데 그들은 "느브갓 네살" 왕 치하에서 극심한 핍박을 당하게 되자 비로소 회개하고 야훼 하느님을 더욱 더 찾아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했다고. ~지독한 고난이 정신적으로 재건하는 계기가 된 것.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Nabucco)는 이 “느부갓 넷살” 의 이태리 식 이름으로 그가 외세에 점령당한 조국을 생각하며 작곡 한 것인데 (나폴레옹과 오스트리아가 주변 약소국 나눠먹기를 하면서 이탈리아 북부는 오스트리아 지배 하에 들어갔고 베르디는 이 지역 출신)
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노예들의 합창”(Va Pensiero) 부르며 통일을 간절히 기원했다.
이탈리아 “북부 동맹”(LEGA NORD ~갈리아, 고트, 랑고르바트 족의 후예들로 포 강 유역의 서민 대표로 자처하는 우파 당)
당가도 이 합창곡.
~~~~~~~
~첨부된 너튜브 "Va Pensiero INNO LEGA NORD Umberto Bossi a Pedero" 합창 참조
~~~~~~~
이스라엘 유다 지파는 인질로 지내던 시기에 구약성서의 많은 부분을 집필했는데, "보니 M"의 "바빌론 강가에서"(Rivers of Babillon)도 그 때 지었던 "시편"을 가사로 인용한 것. (등 따시고 배부르면 나오기 힘든 신앙고백)
그러던 어느 날 그들에게 “로또”같은 엄청난 행운이 찾아왔다. 즉, 페르시아의 “고레스”(키루스 2세) 왕이 “짠”하고 나타나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뒤 그들 모두 고향으로 돌려 보내주고 종교와 자치도 허용했다. 그 덕분에 "남 유다" 인들은 유배 간 지 약 50년 만에 15만 여 명 중 1차로 4만여 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그 동안 본국에 남아있던 여전히 자만심만 강하고 "경제적으로는 가난했던" 동족들과 또
"사마리아인" ("남 유다"가 망하기 이전에 "앗시리아"는 "북 이스라엘"을 정복하고 혼족 정책을 펴서 약 200여 년 동안 다른 나라에서 잡은 포로를 북 이스라엘 지역에 심고 북 이스라엘 인은 타국에 정주시켜 여러 민족의 피를 강제로 섞어 버려 그들은 종족도 종교도 모두 mix 되었는데 이름하여 "사마리탄")들은 신앙심도 별로 없어 돈이 많이 드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도 방해, 유다인은 그들을 사람 취급도, 상종도 하지 않았다.
바빌론에 끌려가서도 주일을 지키고 혈통을 보존했던 그들만이 진정한 주님의 종이라고 생각 해(선민 의식) 계약을 깨트린 죄 때문에 그렇게 죽을 고생을 했다는 뉘우침으로 귀국 한 뒤로는 민족 쇄신 운동을 벌렸는데,,,
즉 타 민족 출신 아내, 사위, 며느리 등을 모두 강제로 이혼시키고 유다 지파만으로 이스라엘 종족을 보존했다.
~그들 자녀의 신앙 교육은 어머니 몫이라 며느리가 유대인이면 그 자녀도 동족으로 인정했지만 이방인 며느리라면 인정하지 않았다.
(요즘 우리나라에 수 많은 외국 여자들이 한국 남자와 결혼해 살고 있는데 갑자기 전부 쫓아낸 셈)
요셉이 이집트에 가서 국난을 극복한 유능한 재상으로 인정 받은 덕에 후손들은 잘 지내다가 약발이 떨어져 노예가 되었고 모세를 따라 탈출해 방랑하다 그들보다 우월한 농경문화권인 가나안 지역에 들어가서 잘 안 하던 농사를 짓다 보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동안 그 동네 토속 신앙인 “바알” 신을 믿었는데,
나중에 바빌론까지 끌려가 죽을 번 하고 나서야 오리지날 유일신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다시 다진 것.
~고난은 심신을 힘들게 하지만 이겨내면 더 정신적으로는 강인해 지는 듯.
고레스 왕 뒤에 다리우스(다레이우스) 왕의 전면적인 지원을 받아
(BC 520년 경) 유대인들의 2차 귀환이 있었는데 각 나라에 뿔뿔이 흩어졌던 동족을 이스라엘로 불려 오기 위해 모금을 하기도 했다.
고향으로 돌아 간 그들은 본국에 남아있던 동족들과 주도권 다툼을 했는데 (대한민국도 해방 후 미국에서 독립운동 좀 했다는 사람들은 전부 박사, 중국에서 온 사람은 전부 장군?이라 폐해도 많았는데) 결국 그들이 주체 세력이 되어 바빌로니아, 페르시아에서 접했던 선진 문명을 자기네 신앙에 접속시켰다.
예를 들어 “천지창조”에 바빌론의
1주일 개념을 보태 주일에는 쉬는 것을 지키고 땅도 7년 째는 쉬게 했다. ~소도 나귀도, 종도 같이 쉬었다. 바빌로니아의 신전 지그라트를 보고 바벨 탑을 상상하고, 정복자들의 높은 문명을 배웠다고 (노예생활 하면서?) 고향에 돌아가서는 원래 있던 동족들을 한 수 아래로 우습게 본 경향도 있었다.
~~~~~
유다인들은 페르시아가 자기들을 해방시켜 주었고, 신전 재건축에 재정 지원도 종교적 자유도 주었기에 메시아로 생각했다.
그래서 페르시아가 믿던 종교
“조로아스터(Zoroaster)교”
~이는 그리스 식 이름이고 고대 페르시아어(아베스타어)로는 "짜라투스트라"(Zarathustra)~에 관심을 갖고 유대교 교리에 일부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교리에 “조로아스터 교”의 내세 신앙을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유대인 중 현세 지향적이었던 귀족 출신 위주의 "사두가이"는 그런 새로운 사상에도 흔들림 없이 계속 내세가 "없다고" 믿었지만 (먹물 좀 들은 사람들의 특징 ~자기가 쌓아온 신념은 좀처럼 바꾸지 않는),
반면에 이 내세 개념을 받아들인 평민 출신들인 "바리사이" 들과 교리 차이가 이렇게 해서 생긴 건 아닐까? (~이건 제 혼자 생각.)
~~~~~~~
짜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Also sprach Zarathustra) 에서 “모든 신들은 죽었다. 이제 우리들은 초인으로 살기를 원한다”고 했는데 "리히트 슈트라우스"는 그의 철학시를 읽고 감명을 받아 당시에 누구도 상상 못했던 ‘철학의 음악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작곡 했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 피리"의
“자라투스트로”는 지혜의 세계를 지배하는 마법사, 현인으로 어둠을 지배하는 밤의 여왕을 몰아낸다.
또 “라파엘로”가 그린 "아테네 학당"에 나오는 54명의 현인, 철학자 들 중에도 그가 포함되어 있을 정도로 조로아스터는 서양 아니, 인도까지 신앙적인 뿌리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메시아가 3천년 뒤에 나타난다고 언급 했다는데 조로아스터는 약 B.C 660년 정도 인물로 추정하는데 (또는 BC 1,200~ 1,500년 전으로 보기도)
~그럼 재림 시기는 대략 서기 2400년 정도? (혹은 서기 1500~1800 년 경으로 이미 지나갔을 수도)
어쨌거나 유대인들은 아직 메시아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고.
~~~~~~~
PS
조로아스터는 구원을 위한 다른 어떤 조건도 언급하지 않았고 기득권층을 따로 대우 하지도, 그 특권을 인정하지도 않았다.
그는 페르시아인들의 오랜 관습을 개혁하는 데 성공했는데 현재까지도 이란인의 사상과 문화에 그 개혁의 영향이 남아 있다고.
그래서 페르시아의 종교와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그를 인류 역사상 위대한 개혁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는다.
이 종교는 유일신과 선악이원론을 특징으로 하는, 지구상에서 오래된 종교 중 하나로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바빌론 유대인 포로들에게 천사, 사탄, 부활, 낙원, 지옥 개념을 세우는데 일조했다고.
첨부:
이태리 북부 동맹(LEGA NORD)
의 당가 "노예들의 합창"
https://m.youtube.com/watch?v=7J_Kt5qP6t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