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혹지년의 수도입성)
나이 사십이 되자 안국역 근처의 본사로 발령이 났습니다.
인천의 삼원일식, 일식 거송, 수림공원, 송도갈비, 백악관 그리고 cafe temptation 등
발걸음이 뜸해지고, 낙원호프, 인사동 남원집, 미모사, 다락방 등 본사 주변 술집을
사귀기 시작 했습니다.
점심 일찍 먹은 날은 천병상 시인 사모님이 하시는 귀천에 들려 인세 붙이는 작업을
도와 드리기도 했습니다.
술집에서 화백 몇분, 문필가 두어분 사귀기도 하였습니다.
서울에 와서 제가 놀란 것은 평창동에 갔는데, 서울이 왜 이렇게 산골인지, 갈비집은
무얼 믿고 이렇게 큰 것인지, 카페는 별 것도 없이 애 분위기가 나는지, 요정 아가씨
복장은 어찌도 저리 절묘한지?
이 무렵 지하철 1호선종로3가역에서 인천행 막차가 23:06 이었으며 다음 차는 수원행,
그 이후는 구로행 이었습니다.
한잔 하다가 인천행을 겨우 타거나, 놓치고 수원행을 탔다가 잠이들어 계획에 없던 수
원 구경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맥주를 많이 마신 날은 인천행 막차를 탔어도, 중도에 내려 소변보고 택시타고 가기도
하였답니다.
정이 들만 하니까 본사가 잠실로 이전을 하였습니다.
한국관, 동신참치, 동경가라오께, 멜로디 등 방이동 주변 술집을 사귀게 되었습니다.
하남, 엄미리계곡까지 원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술을 마시고 지하철 2호선을 타고가다 일행이 중간에 내리고 저는 잠이들었다 깨어
보니 도로 잠실 부근(2호선은 순환선이므로 신도림에서 못 내리면 점점 멀어집니다.)
그래서 송파로 이사했다가, 하남에 안착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외발산동으로 발령, 집에서 사무실까지 48Km, 그래도 꿋꿋하게 청미일식,
제주어람, 경복궁, 은행나무집, 대추나무집 등 강서 일대 술집을 개척 해 나갔죠.
(6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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