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들의 노래 [제4편]
서정시의 질료적 본질은 나 자신의 노래, 나 자신의 숨결이다. 시인은 낮과 밤을 살며, 형태와 색깔과 향기와 소리, 만물이 내는 기척들에 예민하게 반응해야 한다. 시인은 사물과 세계를 향한 시각과 청각과 촉각을 열어두고 사방을 살펴야 한다. 모든 시작과 끝을, 탄생과 죽음들을 눈여겨봐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으로 증명하며, 가장 좋은 것들을 드러내야 하고, 그것을 가장 나쁜 것에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월트 휘트먼의 시집 『풀잎』을 밤새 읽는데, 이 시의 성자는 자신을 “미국인, 불량자들 중 하나, 하나의 우주”라고 적었다. 그 시집에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는 나 자신을 찬양한다.”라고 쓴 구절을 찾아냈다. 그것은 정말 하나도 어렵지 않았다. 그게 그 시집의 시작, 바로 첫 구절이기 때문이다. 나는 『풀잎』을 읽으며 시가 ‘나 자신을 위한 노래’이고, 주체를 스쳐 지나간 색깔과 향기와 소리들을 거기서 얻은 기쁨과 평화를 세계에 되돌려주는 일이란 걸 알았다.
나 자신의 숨결.
메아리, 잔물결, 웅웅거리는 속삭임…… 미나리, 명주실, 갈래와 덩굴,
나의 호흡과 영감…… 내 심장의 박동…… 내 허파를 통과하는 피와 공기,
초록 잎사귀들과 메마른 잎들, 해안과 어두운 바다 바위와 헛간 속 건초의 냄새를 맡는 것,
내 목소리가 분출한 어휘들의 소리…… 바람의 소용돌이들로 흩어지는 말들,
몇 번의 가벼운 입맞춤…… 몇 번의 포옹……. 감싸 안는 팔들,
나긋나긋한 가지들이 흔들릴 때 나무에서 노니는 빛과 그림자,
혼자만의, 혹은 부산한 거리에서의 들판이나 언덕빼기에서의 즐거움,
건강의 느낌…… 한낮의 떨림…… 침대에서 일어나 태양을 만날 때의 나의 노래.
- 월트 휘트먼, 「나 자신의 노래」 부분
시는 숨결, 메아리, 잔물결, 속삭임, 호흡과 영감, 심장 박동, 피와 공기, 잎들, 해안, 건초 냄새, 어휘들의 소리, 흩어지는 말들, 입맞춤, 포옹, 감싸 안는 팔들, 빛과 그림자, 즐거움, 느낌, 떨림들이다. 이 모든 것들이 언어를 입고 화음으로 화육되어 노래로 떠돈다. 시는 어렵지 않다. 시는 언제나 쉽고 즐겁다. 월트 휘트먼은 한 아이가 풀잎을 따와서, 이것이 뭐예요?라고 물었을 때, "내 기분의 깃발, 희망찬 초록 뭉치들로 직조된 깃발"이라고 말한다. 이 멋진 은유들이라니! 시는 은유들의 보석상자다. 자, 무의식에서 뻗쳐 나온 손가락이 쓴 시 한 편을 더 읽어보자.
바닥은 벽은 죽음의 뒷모습일 텐데 그림자들은 등이 얼마나아플까를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껑충껑충 뛰어오를 때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림자들의 힘줄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한 사내가 또는 한 아이가 난간에서 몸을 던질 때 미처 뛰어오르지 못한 그림자의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몸은 허공 너머로 사라졌는데 아직 지상에 남은 그림자는 그순간 무슨 생각을 할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니
- 이원, 「그림자들」 전문
그림자들이란 무엇인가? 「그림자들」은 리듬을 타고 나아가는 말의 물결이다. 시인은 몸과 분리된 채 따로 노는 “그림자들의 힘줄”, “그림자의 심정”을 짐작이나 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림자들은 실체의 허상, 피와 땀으로 얼룩진 현실의 덧없음이 빚어낸 환상이다. 그것은 실상에서 뻗어 나왔으되 실상은 아닌 이상야릇한 부재이자 잉여다. 실상과 그림자의 관계는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시킨다. 장자가 낮잠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신의 꿈을 꾸는지 분별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 무분별의 세계에서 실상과 허상에는 경계가 없다. 시인은 그 허상이나 환상에게 피와 숨결을 주고, 힘줄과 심정을 덧붙여준다. 무용수들이 허공으로 도약할 때, 사내나 아이가 난간에서 몸을 던질 때, 몸은 허공 너머로 사라지지만 그림자는 그러지를 못한다. 그림자는 실상과 분리되어 “홀로 남겨지는 고독으로 오그라드는” 그 무엇이다. 우리는 실체의 삶을 살려고 하나 많은 경우 그림자의 삶을 살다 간다.
망량(罔兩, 엷은 그림자)이 영(景, 본 그림자)에게 물었다. ‘당신이 조금 전에는 걸어가더니 지금은 멈추었고, 조금 전에는 앉았더니 지금은 일어섰으니, 왜 그렇게 줏대가 없소?’
그림자가 대답했다. ‘내가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겠소? 내가 의존하는 그것 또한 딴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오? 나는 뱀의 비늘이나 매미의 날개에 의존하는 것 아니겠소? 왜 그런지를 내가 어찌 알 수 있겠소? 왜 안 그런지 내 어찌 알 수 있겠소?’
-『장자』, 「제물론(齊物論)」중 ‘엷은 그림자와 본 그림자’
망량(罔兩)은 엷은 그림자요, 영(景)은 본 그림자다. 실체가 움직이면 그림자는 그에 따라 움직인다. 엷은 그림자가 그림자의 본체에게 ‘당신은 왜 그리도 줏대가 없소?’라고 따지며 비웃는다. 그림자들은 제가 그림자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저 2천 5백 년 전 동양 철학자는 그림자들이 제 행태는 접어둔 채 다른 그림자들의 흉내내기를 흉보는 덜떨어진 수작을 꼬집는다. 그림자는 일찍이 만해 한용운이 「알 수 없어요」에서 노래한 ‘수직의 파문을 내며 떨어지는 오동잎’이고, ‘무서운 구름이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이 아니던가! 그림자는 만상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이면이고 그 세계에서 흘러나오는 뒷말이자, 궁극[님]의 파편이고 흔적이다. 그것은 아버지의 망령, 부재의 징후. 또 다른 자아의 실재를 암시한다. 우리는 그림자들의 세상에서 저마다 유한한 생을 꾸리는 또 다른 그림자들이다. 그럴진대 시가 그림자들의 노래, 그림자들의 신음, 그림자들의 방언이 아니라고 누가 감히 말할 것인가?
장석주 「은유의 힘」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