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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승원 눈물 에세이】
나를 울린 원로 문인 이정웅 선생님
― 주제수필 ‘소리’ 한 대목을 낭송하다가 울컥한 사연
윤승원 수필가
모처럼 반가운 전화. 원로 수필가 이정웅 선생님이었다. 한평생 교단에서 학생들을 지도해 오신 전직 고등학교 국어 선생님.
“윤 선생님, 너무 이른 시간에 전화 드렸지요?”
아침 7시 34분. 이른 시간이 아니다. 새벽 5시에 기상(起床)하는 사람으로서는 이른 시간이 아니다. 한참 일을 하는 시간이다.
깍듯이 예를 지키면서 반듯하게 살아오신 원로 문인. 이렇게 연치가 아래인 사람에게도 세심하게 살피고 배려하는 인사말부터 건넨다.
원로 문인은 우선 용건부터 말씀하셨다.
“윤 선생님 책상에 최근에 발행된 《수필예술 47호》 책이 놓여있지요? 110쪽을 펴보시겠어요?”
▲ 최근에 발행된 《수필예술 47호》 주제수필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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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더럭 겁이 났다. 혹여 나의 글에서 오류라도 발견하신 것일까? 아니면 남에게 불편을 주는 표현이라도 발견하신 것일까?
하지만 순간적인 나의 걱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위에서 15 째 줄, 아래에서 10 째 줄, 윤 선생님이 쓰신 수필 한 대목을 낭송해 주세요. 작가의 육성을 넣어 ‘수필 작품 영상’을 제작하는 데 필요해서요.”
깜짝 놀랐다.
나의 글에서 오류를 발견하신 게 아니라 인상 깊은 대목을 발견하셨다는데 우선 안도했다.
“아니, 저의 목소리로 낭송을 해요? 이 핸드폰으로 낭송을 해요?”
난감했다. 글을 낭송할 정도의 좋은 목소리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원로 문인은 그게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했다.
책을 들여다보니 익숙한 문장이다. 내가 쓴 글이니, 단박에 외울 정도의 낯익은 대목이다.
목소리를 굳이 가다듬지 않았다. 어떤 감정도 넣지 않았다.
평소 밥상머리에서 두 아들에게 글을 자주 읽어주었던 식으로 편안하게 읽었다.
▲ 뜻하지 않게 원로 문인의 요청으로 필자의 수필 한 대목을 낭송(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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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前略== 원거리 통학하는 자식을 따라 나오시며 어머니는 어린 자식의 책가방을 들어주셨다. 어머니는 시골 논둑길을 앞서 걸으셨다. 이슬 맺힌 풀숲을 먼저 지나가셨다. 앞서가시면서 풀잎 이슬을 터는 어머니의 치맛자락에서는 신비스러운 소리가 났다. 서걱서걱, 사륵사륵. “엄니, 그만 들어가셔요.” 고갯마루까지 따라 나오시던 어머니는 그제야 손을 흔들면서 발걸음을 돌리셨다. ==後略== 』 |
▲ 이른 새벽, 자식 통학길에 어머니가 따라 나오셨다. 풀숲 이슬을 털어주고 가셨다. 어머니의 치마는 온통 이슬에 젖었다. (삽화=AI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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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낭송 도중에 갑자기 울컥했다. ‘어머니의 치맛자락 소리’가 생생하게 들렸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 글의 행간에서 어머니의 치맛자락 소리가 들려온다는 것. 그것은 분명히 ‘어머니의 환생’이었다.
▲ 책 속에서 환생하신 어머니(사진= 필자의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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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 전 어머니가 눈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갑자기 목이 메었다. 짧은 문장이라 다행히 감정을 곧바로 수습할 수 있었다.
그렇다. 내 어머니는 자식 칠 남매 낳아 지극 정성을 다해 키워 주셨다.
어머니는 새벽밥 전문가이셨다. 원거리 통학하는 자식을 위해 어머니는 한세월 새벽밥을 지으셨다.
막내아들 통학 길은 또 달랐다. 새벽밥을 지어주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식의 책가방을 들고 논둑길을 앞서 걸으셨다. 풀숲 아침 이슬을 치맛자락으로 털고 가셨다.
자식의 운동화가 젖지 않도록, 자식의 교복 바짓가랑이가 젖지 않도록 어머니는 치맛자락으로 이슬을 털면서 먼저 지나가셨다.
아, 갑자기 왜 눈물이 흐를까?
“아, 이정웅 선생님. 존경하는 원로 문인께서는 어찌하여 저의 글 중에서 요 대목을 족집게처럼 가려내셨는지요?”
명문 고등학교 교단에서 작문을 가르치신 국어 선생님. 핵심 문장을 족집게처럼 가려내어 주제를 명쾌하게 풀어주신 자상하고 따뜻한 국어 선생님.
오늘은 뜻하지 않게 마음 여린 필자의 눈물샘을 자극하셨습니다. ♣
2026. 7. 7. 아침
윤승원, 이정웅 원로 문인의 전화를 받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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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의 소감(《수필예술》 단톡방에서) : 이제까지 시도한 적이 없는 이정웅 선생님의 독창적인 발상에 의한 특별 기획 영상입니다. 그 많은 작품에서 가려 뽑는 문장 선별 작업도 직접 하셨고, 작가의 육성 녹취작업도 직접하셨습니다. 다양한 구도의 심미안적 이미지 편집도 손수 하셨습니다. 마치 방송국 특집 프로그램 PD 역할에서 음성 편집 엔지니어 역할에 이르기까지 이정웅 선생님의 숨은 공력이 느껴지는 영상입니다. ♧ 저는 이정웅 선생님의 뜻하지 않은 반가운 전화를 받던 날, 후기 형식의 소감을 써서 블로그와 카페에 올렸습니다. 최종 완결편까지 감상하고 나니, 그 옛날 제가 등단한 KBS1라디오 《시와 수필과 음악과》(1990~1991) 방송 프로그램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전파를 탄 성우 음성의 시와 수필(21편) 방송 프로그램을 지금도 저는 가보처럼 보관하고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카세트 녹음 테이프는 낡아 CD로 제작해 두었고,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CD 역시 재생 도구가 흔치 않아 디지털 파일로 변환했습니다. '기록 문화'란 이처럼 한 시대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활자 매체와 영상 매체 파일은 대대손손 이어지는 한 가장의 생애 소중한 가족사 자료가 될 것입니다. 많은 글을 남긴 옛 선비들도 그러했듯이 어떤 일이 있고 난 뒤에는《餘錄》도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뒷이야기'라고나 할까요. ♧《수필예술》카페 <회원 동정>란에 올린 후기 형식의 졸고 에세이를 공유하는 것으로 저의 소감을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윤승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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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감상평
윤승원 수필가의 「나를 울린 원로 문인 이정웅 선생님」은 단순히 ‘감동적인 일화’를 기록한 글이 아니라,
한 문장이 잠들어 있던 기억을 깨우고, 그 기억이 다시 어머니를 불러내는 과정을 담은 메타 에세이라는 점에서 인상적입니다.
이 작품은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이 쓴 글’에 의해 다시 울게 되는 드문 경험을 진솔하게 보여 줍니다.
특히 다음과 같은 문학적 특징이 돋보입니다.
1. '전화 한 통'에서 시작되는 자연스러운 극적 구성
작품은 평범한 아침 전화로 시작됩니다.
“110쪽을 펴보시겠어요?”
이 한마디는 독자에게도 긴장감을 만듭니다.
‘혹시 잘못된 표현을 지적하시려는가?’
주인공과 독자가 같은 마음으로 다음 문장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상은 따뜻하게 뒤집힙니다.
원로 문인은 흠을 찾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찾아낸 독자였습니다.
이 반전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꾸어 놓습니다.
2. 주인공은 ‘윤승원’이 아니라 ‘어머니’
표면적으로는 원로 문인과의 통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실제 주인공은 한 번도 직접 등장하지 않는 어머니입니다.
“서걱서걱, 사륵사륵.”
이 의성어 두 개만으로
논둑길,
새벽 공기,
풀잎의 이슬,
치맛자락,
어머니의 걸음걸이가 모두 살아납니다.
소설처럼 긴 설명이 없어도
독자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좋은 수필이 가진 힘입니다.
3. ‘소리’라는 주제가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다
이 작품은 이전에 발표한 주제수필 「소리」의 뒷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작품에서도 여전히 ‘소리’가 중심축이라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전화벨 소리,
원로 문인의 목소리,
낭송하는 자신의 목소리가 등장합니다.
그러다가 결국
가장 오래된 소리,
가장 그리운 소리,
어머니 치맛자락 소리가 되살아납니다.
그래서 이 글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현재의 소리’가
‘과거의 소리’를 깨우는 구조를 갖습니다.
주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이어집니다.
4. 가장 뛰어난 문장은 ‘어머니의 환생’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표현은 다음 대목입니다.
“그것은 분명히 ‘어머니의 환생’이었다.”
실제로 환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기억 속 어머니가 너무도 생생하게 되살아난 체험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비유입니다.
수필은 사실을 쓰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문학입니다.
이 문장은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5. 눈물을 설명하지 않는다
좋은 수필은 “나는 너무 슬펐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갑자기 목이 메었다.”라고 씁니다.
이 작품도 그렇습니다. 눈물을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목이 메었다는 사실 하나, 감정을 수습했다는 사실 하나만 적습니다.
오히려 절제되어 있기에 독자의 눈시울이 더 뜨거워집니다.
6. 원로 문인을 향한 존경이 작품의 품격을 높인다
이 작품은 감사의 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나친 찬사로 흐르지 않습니다.
전직 국어교사,
평생 교육자,
원로 문인의 세심한 안목을 자연스럽게 그려냅니다.
특히 마지막의 질문,
“어찌하여 저의 글 중에서 요 대목을 족집게처럼 가려내셨는지요?”에는 놀라움, 존경, 감사가 모두 담겨 있습니다.
덕분에 작품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문학적 교감을 보여 주는 기록이 됩니다.
◆ 문학적 의미
이 작품이 말하는 것은 결국 이것입니다. 좋은 문장은 독자를 울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그 문장을 쓴 작가 자신도 다시 울린다.
그리고 그 울음은 슬픔이 아니라 사랑을 다시 만나는 순간의 눈물입니다.
원로 문인의 한 통의 전화는 윤승원 수필가에게는 단순한 낭송 요청이 아니라, 60년 전 새벽 논둑길에서 자신보다 앞서 걸으며 치맛자락으로 이슬을 털어 주시던 어머니를 다시 만나게 한 문학적 선물이었습니다.
◆ 종합 감상
이 작품은 ‘원로 문인의 안목’을 이야기하는 글인 동시에, '어머니의 사랑은 세월이 흘러도 한 문장의 울림으로 되살아난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작품입니다.
일상의 한 통의 전화에서 시작해 어린 시절의 새벽 논둑길과 어머니의 헌신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구성이 안정적이며,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무엇보다 "서걱서걱, 사륵사륵"이라는 치맛자락의 소리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으로 기능하여, 독자 각자에게도 잊고 지냈던 부모의 발걸음과 사랑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래서 이 에세이는 개인의 추억을 넘어,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모성의 기억을 아름답게 환기하는 따뜻한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 덧붙이는 말
이 작품을 읽으면서 특히 마음에 남은 것은 ‘울려고 쓴 글이 아니라, 읽다가 울게 된 글’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작가가 독자의 눈물을 의도적으로 끌어내려 하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담담한 서술 속에서 감정이 자연스럽게 차오릅니다.
문학에서는 이런 절제가 오래가는 감동을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학평론가의 시각에서 한 가지를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윤승원 수필가의 최근 작품들을 보면 하나의 특징이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숲에서 만난 두꺼비, 어린이, 산새, 꽃, 고무신, 손자 이야기까지 모두 평범한 일상에서 출발하지만, 마지막에는 '사람의 정'으로 귀결됩니다.
이번 작품도 겉으로는 원로 문인의 전화 한 통에 관한 이야기지만, 결국 독자의 마음에 남는 것은 어머니의 치맛자락입니다.
특히 저는 이 문장이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어머니의 환생’이었다.”
이 표현은 단순히 어머니를 떠올렸다는 의미를 넘어, 문학이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는 힘을 상징합니다.
육십 년이라는 세월도 한 문장의 낭송 앞에서는 무너지고, 작가는 다시 어린 소년이 됩니다.
그 순간 독자 역시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됩니다. 이것이 좋은 수필이 지닌 가장 큰 힘입니다.
또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작품 속에서 이정웅 선생님이 단순한 ‘등장인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한 편의 수필 속에서 숨은 보석 같은 문장을 발견해 주는 첫 번째 독자이자, 작가의 감정을 다시 깨워 준 문학의 동반자로 그려집니다.
생활 속에서 좋은 스승이란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사람만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해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이 작품은 조용히 전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 작품이 수필집에 실린다면, 저는 마지막에 다음과 같은 짧은 평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나를 울린 원로 문인 이정웅 선생님」은 한 통의 전화가 한 사람의 기억을 깨우고, 한 문장이 한 어머니를 다시 세상으로 불러낸 아름다운 눈물의 기록이다.
문학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잊힌 사랑을 다시 들려주는 예술임을 이 작품은 조용하고도 깊은 울림으로 증명하고 있다.
이 작품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낡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사랑, 스승의 안목, 문학의 힘이라는 세 가지 가치가 서로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윤승원 수필가의 작품 가운데 독자들의 기억에 오래 남는 대표적인 ‘어머니 수필’로 사랑받을 가능성이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 (雲峰, 윤승원 수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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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배병철 목사님 답글
목사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입이 식물의 맛을 변별함같이 귀가 말을 분별하나니.’라는 성경 말씀이 과분하면서도 영광입니다. 이번 원로 문인과 뜻하지 않은 반가운 전화 통화를 통해 존경하는 문단의 어르신과 문학적 교류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 다시 깨달았습니다. 저는 다만 어머니의 사랑을 그대로 적었을 뿐인데, 그 마음을 따뜻하게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