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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 게시판. ── 스크랩 바이마르 공화국의 하이퍼인플레이션
크뎅뎅 추천 0 조회 74 09.06.06 23:5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바이마르 공화국의 하이퍼인플레이션  2008.8.1 하상주

 

바이마르 공화국(Weimar Republic)이란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부터 1932년 히틀러가 정권을 잡기 전까지 독일의 한 시기를 말한다. 이 시기가 특별히 문제가 되는 것은 물가가 너무 올라 돈의 가치가 사라져버려서 새로운 화폐를 만들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을 살펴보고, 나아가서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다시 화폐가 물가를 잡으면서 가치를 찾아갔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두 과제에 해답을 주는 책이나 자료는 찾기 어려웠다. 특히 이 시기는 1917년 소련에 공산주의(*또는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으며, 중동부 유럽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위협을 받고 있던 시기였다. 나아가서 바이마르 공화국을 나치정권이 뒤집고 일어선 시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교과서에서는 단순히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에 정부가 인쇄기를 돌려 화폐를 너무 많이 발행하는 바람에 물가가 엄청난 속도로 올랐고, 돈의 대외가치는 반대로 엄청난 속도로 하락했다는 수준에만 머물고 있다.

 

필자는 이 글에서 다음 두 가지를 기본 질문으로 삼고자 한다. 하나는 일반적인 전시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하여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변해 갔는가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하이퍼인플레이션이 어떻게 안정을 되찾았는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미 위에서 말한 것처럼 아직은 충분한 자료를 모으지 못한 상태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쓰는 것은 이렇게라도 정리를 해두면 나중에 모자란 것을 쉽게 보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1. 전시 인플레이션에서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일반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는 중에는 물자가 부족하여 물가가 올라가기 쉽다. 그래서 정부가 생필품을 배급하거나 가격을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전쟁이 끝나고 이런 통제가 풀리면 그 동안 억눌렸던 수요가 살아나면서 물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생긴다. 특히 전쟁에서 패한 나라는 수요를 메우기가 어려워 물가가 올라갈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또한 독일은 전쟁 직후 체결된 베르사이유 조약에서 승전국 각국에게 전쟁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의무를 지게 되었다. 이 청구액은 약 1320억 마르크(전쟁 전 화폐가치 기준)였는데 이는 당시 독일 국가재산의 약 3배였을 정도로 부담이 컸다고 한다.

 

이 당시의 투기세력들은 앞으로 독일의 화폐가치가 크게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독일에서 돈을 빌려 그 돈으로 강세예상 통화(*예를 들면 미국 달러)를 미리 사두었다. 그렇게 하여 나중에 독일의 돈 값이 크게 떨어지면 달러를 팔고 대신 독일 통화를 사서 빌린 독일 돈을 갚고, 그 차이는 자신의 이익으로 챙겼다. 이런 국제 금융세력들의 투기로 독일의 화폐 가치는 더욱 크게 떨어졌다.

 

그런데 독일 제국은행(중앙은행)왜 이토록 많은 화폐를 발행했는지 그 배경은 분명하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배경으로는 재정의 적자때문이다. 이 재정적자의 많은 부분은 당연히 전쟁배상금의 지불이었다. 정부는 단기채권을 발행하여 중앙은행에 넘겨준 후 중앙은행이 화폐를 발행하도록 했다. 그러나 화폐의 초과발행의 원인을 모두 전쟁배상금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그러면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다른 모든 요인이 사라져버린다.

 

화폐의 발행양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그리고 물가가 얼마나 높이 올라갔는지를 알려주는 어이없는 예는 수업이 많다. 예를 들면 그 이전 20년 동안 부은 연금을 만기가 되어 손에 넣으니 그것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겨우 빵 한 조각뿐이었다고 했다. 또는 돈의 가치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떨어졌는지 하루에 두 번씩 월급을 받았다고 한다. 이를 달러의 입장에서 보면 1달러를 내고 코스 요리를 다 먹고 일어서려고 하니 웨이터가 다가와서 마르크의 값이 떨어져 다시 같은 요리를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도 정부는 왜 계속 엄청난 재정적자를 그냥 내버려 두었을까? 이들은 말한다. 그 당시는 정치적 상황이 매우 위협했다. 계속해서 공산주의자들을 비롯한 다양한 집단들의 저항이 있었기 때문에 통화를 늘려서라도 경제를 활성화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가 거두어 들인 세금의 95%는 노동자들에게서 왔다. 정부는 고소득자에게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과연 초인플레이션은 모두에게 손해를 주는가? 아니다. 부채를 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이 지나면서 화폐의 가치가 계속 감소하므로 그 만큼 이익이다. 그럼 누가 부채을 지고 있었을까? 대기업가나 금융계나 정치계의 거물들이었다. 이들은 계속해서 돈을 빌렸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사들였다. 인플레이션 시기에 독일에는 거대 기업그룹들이 탄생했다. 이들은 통화량이 여전히 모자란다면서 계속 통화량의 발행을 요구했다. 이들과 이해관계를 동반하고 있는 정치가가 경제이론가들도 거들었다.

 

나아가서 제국은행은 부족한 화폐량을 공급한다면서 상업은행이나 신용이 있는 대기업이 발행한 상업어음을 받고 자금을 대출해 주기로 했다. 이는 오늘날 미국 중앙은행이 자금 지원 대상을 넓히고, 담보로 잡는 자산의 범위를 넓히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독일의 경우가 더 심했던 것은 제국은행이 상업채권을 할인해 주는 금리는 5%였으나 일반 은행의 대출금리는 50%였다.

이런 금융정책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 가지 가능한 설명이 있다면 이는 이 당시의 정치적인 배경에 의한 것일 것이다. 또한 이는 정치적인 소요가 계속 일어날 수 밖에 없고, 사회의 기초질서는 완전히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런 사태는 1923년 말에 최고조에 이르렀다.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는 굳이 숫자를 살펴볼 필요도 없다. 제국 화폐는 화폐로서 기능을 거의 상실했다. 마르크의 대외가치 마찬가지였다. 한 미국인 관광객이 팁으로 주고 간 1달러 지표를 손에 든 종업원이 모든 가족을 모아놓고 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회의를 했다. 그리고는 그 1달러를 은행에 맡겨서 펀드로 운영하기로 했다. 은행은 이 펀드를 관리해 주었다.

 

더 이상 사태의 악화를 막기 위해서 정부는 렌덴마르크라는 새로운 화폐를 임시로 발행하고, 약 일 년 뒤에 다시 마르크라는 새로운 화폐를 발행하여 구 마르크를 모두 바꾸었다. 신기하게도 물가가 잡히고, 생산량이 늘어나는 등 독일 경제는 1930년까지 호황을 기록했다. 아마도 화폐발행량을 줄이고, 각 산업분야에서 공장의 가동율이 올라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1930년에 미국에 찾아온 대공황에 독일 경제는 다시 휘청거렸다. 그 동안에도 정치적인 소요는 계속되었다. 공산당의 집권을 두려워한 독일인들은 그 대안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로 등장한 힛틀러를 선택했다. 그는 1933에 정권을 잡았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그가 집권한 이후 독일의 화폐가치는 안정을 찾았고, 높은 성장을 했다. 언젠가 이 주제를 한번 다루어 보려고 한다. 그리고 화폐개혁이후 독일의 경제가 안정된 상태로 들어간 과정이 그리 분명하지 않다. 자료를 찾으면 추가할 예정이다.

 

수정 2008/08/03 재미있고도 유익한 얘기들이 펼쳐질거 같네요. 감사합니다.

 

수 2008/08/04 '인플레로 돈번 사람들' 이라는 책이 있는데....저도 막연하게만 알고 있다가 이 책을 읽고 좀 이해가 되었습니다. 책 중에 한 에피소드- 스위스로 여행간 노부인이 다리를 다쳐서 한 2년간 요양하다 돌아와보니 출발전에 여생을 보낼만한 저축이 우표한장 값으로 폭락해 있었다는- 원제는 Penniless Millionair 인데 오래전에 나온책이라 서점에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예, 그 책을 두번 이상 읽었습니다. 지금 몸이 좋지 않아 쉬고 있는 중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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