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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제27회 Steinbeck Festival 이 8월 2-5일까지 사리나스에서 있었읍니다. 오늘이 마지막날이라 지금 막 다녀와서 사진을 올리는 중입니다. 사리나스는 스타인벡이 살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게 없는것 같읍니다. 밭에는 딸기가 한창이었읍니다. 사리나스 딸기는 크기로 유명합니다. 어떤것은 주먹만큼 큰 딸기도 있읍니다.
국립스타인벡문학관은 생각보다 잘 꾸려저 있었읍니다. 죤 스타인벡은 스덴포드대학에 입학해서 공부보다는 글읽기와 쓰기에만 치중하다가 중퇴했읍니다. 1930년 대공황이 닥첬을때 사리나스일대의 농장을 배경으로 파업을 조직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묘사한 '승산없는 싸움', 농업기계화에 밀려 서부로 향하는 조드일가의 빈곤한 삶의 투쟁을 그린 '분노의 포도' 등 사회주의적 사상이 강한 작품을 출간했읍니다. 그로인하여 미국사회에서 금서운동내지는 그의 책을 다 불사르는 소동까지 일으켰었읍니다. 오늘도 안내인은 스타인벡의 사상을 옹호하느라고 진땀을 빼는 모습을 볼수가있었읍니다. '항간에서는 그가 공산주의자이다, 뭐다, 말들이 있지만 아무 근거가 없는 이야기들이다. 그의 첫번째 부인 캐롤은 공산당에 가입한 사실이 있다. 그러나 죤은 가입한 일이 없고 오히려 그의 서류에는 민주당에 가입한 기록만 있을뿐이다. 군에서 그의 뒷조사를 해 보았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다 물어 보았으나 이상한 징후는 없었다 다만 그의 작품이 이상할 뿐이다.' 하지만 그가 군에 지원했다가 거부당한 일이라던가, 여권을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일들은 그의 사상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읍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1930년 당시는 세계적으로 사회주의가 추앙받던 때 였었읍니다. 대공황으로 먹을게 없었던 미국도 예외가 아니였었읍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공산주의를 선망했었고 공산당을 결성해서 그 잔해가 불과 수년전 까지만해도 존재했었읍니다. 2-3년전에 LA 에 있던 공산당사무실이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는 뉴스가 보도된 일이있읍니다.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해 놓은 모습입니다.
죤 스타인벡은 세번 결혼했읍니다. 첫번째 부인 Carol Henning은 편집인 이었읍니다. 가난했던 결혼초부터 죤의 작품활동을 도와주고 타자를 처 주고 '분노의 포도'라고 하는 작품명도 그녀가 지었읍니다. 이혼하고도 많은 세월이 흐른후 스타인벡이 노벨상을 받았을때 그에게 축전을 보냈읍니다. '이러한 경사가 있으리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있었읍니다'
두번째 부인 Gwyndolyn Conger 은 스타인벡의 어릴적 친구였으면서 직업가수였읍니다. 스타인벡이 그녀를 보는 그날부터 사랑이 불붙기 시작해서 곧바로 전처와 이혼하고 새로 결혼을 했읍니다. 두 아들을 낳았고 5년만에 이혼하고 말았읍니다. 두아들은 지금 63세와 61세입니다.
세번째 부인 Elaine Scott 은 허리우드 스테이지 매네저로 성공한 인물이었읍니다. 두사람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고 돈독한 친구관계였읍니다. 그녀는 스타인벡이 죽은 후에 그의 문학작품 집행인이기도 했읍니다.
죤 스타인벡의 친필 서명이있는 편지입니다.
죤 스타인벡은 1940년 프릿저상을 받았고 1962년 노벨 문학상을 받았읍니다. 미국인으로서는 6번째 노벨 문학상이었읍니다. 1930년 Sinclair Lewis, 1936년 Eugene O'Neill, 1938년 Pearl S. Buck, 1949년 William Faulkner, 1954년 Ernest Hemingway, 1962년 John Steinbeck, 1976년 Saul Bellow, 1978년 Isaac Bashevis Singer, 1993년 Toni Morrison 죤은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었읍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연설하기를 실어했읍니다. 노벨상 수상식에서 한 연설이 그의 제일 훌륭한 연설이었읍니다.
110년이나 된 스타인벡의 생가입니다. 아름다운 빅토리안집은 상인이었던 J.Conner 이라는 사람이 1897년에 지었고 죤의 아버지가 1902년에 사서 이사한 집입니다. 1973년 까지 죤의 누이가 살았었읍니다. 1973년 소유권이 사리나스부인회로 넘어 왔고 지금은 이집을 식당과 기념품상을 하면서 집 유지비를 조달하고있읍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워 봉사자들입니다. 안내인이 가르키는 이층방이 죤의 방이었읍니다. 그방에서 첫단편을 썻읍니다. 바로 밑 일층방이 죤이 태어난 방입니다.
죤 스타인벡부모의 방이고 죤이 태어난 방입니다. 거울이 달린장은 그당시 가구입니다.
Fire place in Living room 입니다. 그당시에는 T.V. 도 없어서 저녁을 먹은 후에는 가족이 이곳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죤은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죤의 가정은 어머니가 선생출신 이었고 아버지는 시 재무관인 중산층 이었읍니다. 죤은 성장해서 서른살이 될때까지 온전한 벌이가 없었다고 합니다. 죤의 어머니가 책방에다 그의 책을 팔아 달라고 부탁하면 번번이 거절 당했다고 합니다. 밑바닥 서민들의 고초를 그리는 이야기는 팔리지 안는다는게 이유였읍니다.
스타인벡은 어머니쪽 가계가 뭍혀있는 사리나스공동묘지에 있읍니다. 외가쪽 Hamilton 이라는 가족묘지에 스타인벡의 부모도 있고 그와 그의부인 Elaine Scott 이 같이있읍니다.
에덴의 동쪽에 출연한 제임스 딘 입니다. 잘생기고 멋진 반항아 제임스 딘의 데뷰작입니다. 이영화 한편으로 세계 젊은이들의 우상이 되었던 딘은 영화 자이안트를 한편 더 찍고 교통사고로 죽었읍니다. 그의 나이 24세 였읍니다.
죤 스타인벡의 묘가 저쪽에 있다는 표지가있는 길입니다. 안내지에 의하면 이 길이 에덴의 동쪽에 나왔던 길이라고합니다.
맥주의 첫모금 보다 더 좋은 맛은 없다. 죤 스타인벡 들어줄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면 그들은 듣지 않으리라 죤 스타인벡 죤 스타인벡은 오늘 내게 말해주고 있읍니다. 한국의 젊은세대가 잘사는 현재만 보고 과거 어려웠던 시절을 잘 모르듯이 화려한 미국만 보고 살아온 나에게 미국도 가난하고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 |
첫댓글이 님도 가난한 시절이 있었다.
암묘
아니냐가 올린글들은 다 어디갔누
샤론온
스타인백의 작품들보다 더 재밋던데...
댓글에 오해의 소지가 다분히 있어서 자삭했습니다.
댓글 달 때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춰야... ㅜㅠㅜㅠ
인문학이 다시 주목 받는다고들 하는데...애써서 그 증거를 수집해보지 않아서 아직은 피부로 잘 느낄 수 없습니다..가난..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이 주제에 대해 "극복"하는 것이 미덕인지..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고 함께 공유하여 젖어사는 것이 정답인지...참 헷갈립니다..어찌됐든...글이라는 것은 그래도 "지독한 내핍" "악조건" 의 체험속에서 우러나야 맛깔이 나는 것 같은데요..얼마 전 국내의 한 글쓰는 젊은이가 굶어죽은 충격적인 사건에서 참 슬펐습니다..대체 우리는 무엇을 보러..무엇을 취하려 그토록 허겁지겁 달려가는 것인지..
저도 요즘 존 스타인백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제가 광복 66주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광복의 의미를 알까요? 현재 우리나라의 대학 입시에서 국사 과목이 사라졌다 하네요. 앞으로 우리나라의 역사를 모르면 어떻게 우리나라를 맡길 수 있을까요?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면 귀찮아서 그냥 내줄지 모르는 현실이 정말 암담합니다. 옛날 미국도 저렇듯 가난했었는데...